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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
Sep 02. 2023
오두막 편지
《 오두막 편지 》
- 법정 스님 -
새벽에 비 내리는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다. 머리맡에 소근소근 다가서는
저 부드러운 발자국 소리. 개울물 소리에 실려 조용히
내리는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으면
살아 있는 우주의 맥박을 느낄 수 있다. 새벽에 내리는
빗소리에서 나는 우주의 호흡이 내 자신의
숨결과 서로 이어지고 있음을 감지한다.
그 무엇에도 방해받지 않는 자연의 소리는,
늘 들어도 시끄럽거나 무료하지 않고
우리 마음을 그윽하게 한다.
- 본문 중에서
여기저기서 꽃이 피고 잎이 열린다. 한동안 잊고
지내던 귀에 익은 새소리들도 꽃처럼 새롭게
피어난다. 자연의 질서, 순환의 흐름은 이렇듯
어김없다. 누가 피어나라고 재촉한 것도 아니지만
때가 되니 스스로 살아 있는 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다 생명의 신비이다.
대지에 뿌리를 내린 나무들은 흙을 의지해 서서
햇볕을 받아들이고 바람을 받아들이고 물기를
받아들인다. 말하자면,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은덕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나무만의
일이 아니다. 사람도 이 '지, 수, 화, 풍' 없이는
한시도 살아갈 수 없다. 흙과 물과 햇볕과 공기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의 원천이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하늘, 그 하늘빛이 너무
고왔다. 어둠이 내리기 직전, 석양의 투명한 빛이
산지락과 능선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했다.
부드럽고 유연한 그 산의 능선이 마치 우주의
유장한 율동처럼 느껴졌다. 능선 위에 펼쳐진
하늘 빛은 고요와 평화로 물들어 있었다.
자연은 이토록 아름답다.
자연은 실로 신비롭다.
아름다움과 신비, 고요와 평화.
명상은 고요와 평화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우리들이 어떤 간절한 소원 때문에 하는 기도라는
것도 그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곧 명상의 세계에
도달하지 않을 수 없다. 명상은 한마디로 말해서
지켜보는 일이다. 지켜보되 지켜보는 주체가
사라진 커다란 침묵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명상은 어떤 지식의 열쇠로도
열리지 않는다. 오직 활짝 열린 가슴으로만
명상에 이를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개인
하늘처럼 가슴이 활짝 열려 있을 때 명상은
은연중에 찾아든다.
소욕지족少欲知足. 작은 것과 적은 것으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누리는 행복은 크고 많은
것에서보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있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면 그 욕망을 채울 길이 없다.
작은 것과 적은 것 속에 삶의 향기인 아름다움과
고마움이 스며 있다.
시작이 있는 것은 반드시 그 끝이 있다. 오늘의
어려움을 재충전의 뜻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우리가 지닌 무한한 잠재력을 일깨울 수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반드시 내리막이 있는 법이고,
낡은 문이 닫히면 새 문이 열리게 마련이다.
얼어붙은 대지에 봄이 움트듯이 좌절하지 말고
희망의 씨를 뿌리자.
진정한 배움은 이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몸소
겪는 체험을 거쳐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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