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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하연 Feb 25. 2021

이런 말은 배워야지, 심쿵했던 세종의 진심 고백

제발 내 곁에 있어달라는 세종의 절절한 진심 고백 

세종실록을 읽다 보면, 황희에 대한 언급이 적어도 몇 백 번이 나온다. 현안을 의논할 때는 "황희의 생각은 어떠한가", 결정할 때는 "황희 말 대로 하라.", "황희, 맹사성 등과 의논하였다." 등등. 어렸을 때 세자교육을 받지 못했고, 왕이 처음이던 세종에게 그는 먼저 정치의 길을 가고 있던 선배이자, 든든한 조력자, 파트너 그 이상이었다.


세종 재위 17년, 

황희가 사직을 청하는 순간을 상상하며 실록을 가져와본다. 




<간단한 해석>

영의정부사 황희가, 사직서를 냈다. 그 이유는


1. 저는 성질이 좋지 않습니다. 학술도 부족합니다. 

그런데 태종의 등용으로 여러 훌륭한 사람들과 같이 정계에 진출했으나, 당신에게 도움될 일을 한 게 적습니다.

2. 열심히 일하려는 마음이 간절했으나, 당신에게 받은 복이 많아 재앙이 생겼으니 

그 결과 일이 어질러지고 죄가 생겼지만, 그럼에도 목숨을 보전했습니다. 

3. 벌써 제 나이가 70이 되었고, 귀가 먹고 눈이 어두워서 듣고 살피기 어렵고, 다리도 아파옵니다.

4. 이제 사직을 허락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런 뜻이다. 

간절한 사직 요청에 허락을 할 수도 있건만, 세종은 만만한 사람이 아닌 즉 답신을 이렇게 내린다. 

<간단한 해석>


어려움을 극복한 임금은 어진 도움이 힘입는 법이라, 기구(나이 많은 친구)를 선택하여 임용했으니 어떻게 태도를 쉽게 하겠는가.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 - 당신은 덕이 많고, 식견과 재능이 많으며, 크고 작은 일들을 잘 결단하고 헌장(준칙)에 밝다. 때마침 좋은 시기를 만나 일찍부터 신임을 받았고, 일찍이 승지(관직)에 임명되었다가, 바로 의정부로 오니, 국가의 빛이 되어 신하들을 협력하여 도왔으며, 크게 재능을 발휘하여 다스려왔다.


"내각 미약한 몸으로 큰 기업을 이어받아 깊은 연못에 가고, 봄 얼음을 밟는 듯 자나 깨나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으로 신하들에게 일을 맡겨 예전의 업을 한층 더 빛내려고 하였는데, 그 많던 인재들은 점차 새벽별처럼 사라지게 이르렀으나, 오직 당당한 그대가 우뚝이 산악처럼 서있으니, 여러 사람이 우러러보는 명망을 헤아려보건대,

그 누구이겠는가(당신이다!) 


.. 이제 그 공을 울려서 기준으로 삼은 것인데, 당신에게 기대는 정이 깊은데 갑자기 사직을 청한단 말인가. 그러지 말라. 만약 아프면 치료하면 되고, 나이도 괜찮다. 물러나려고 하지 말고 나오시오. 




황희 정승은 관직 기간 동안 부모님의 상, 자신의 모자람, 나이 듦,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사직을 청하지만 그때마다 세종은 거절, 또 거절이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렇다. 이를 두고 세종을 최악의 상사라고 얘기하는 분들도 있지만, 그 당시 관료들의 인원(공무원) 숫자가 지금처럼 많지도 않고, 그 인원을 등용하는 과거제도도 자주 있는 것도 아니니, 더구나 수많은 일을 해낸 관료라면 얼마나 쓸모있는 인재였던 것일까. 나는 그 인재를 대하는 마음이 아름답게 보였다. 


세종의 고백 방식은 보통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OO야, 안녕. 그동안 ~했어. 

앞으로도 잘 지내고 좋은 일이 있기를."


실은 마무리가 이렇게 되면 정말 다행이다. 보통은 싸우고 끝나거나,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상처를 주거나 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이렇다라고 표현하기에도 용기가 많이 필요하지 않는가. 그런데 세종은 구체적으로 그걸 표현한다. 그것도 멋스럽게.


1. 당신을 어떻게 만났고

2. 당신은 나에게 어떤 존재였으며

3. 우리는 무엇을 위해 무슨 일을 해왔고

4. 마치 당신은 - 이것과 같으니(비유법)

5. 나의 마음은 이렇다.


라고 마무리.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는 역시 진심은 기본, 스토리텔링과 의미는 그 맛을 한층 더해준다.




사직을 청하는 것도 황희에게는 어려운 일이었겠지만, 자신을 생각하는 세종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황희의 마음은 어땠을까. 감사함과 벅참이 공존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과 함께, 다시 현안을 처리해야하는 압박과 부담감도 있었겠지. 하지만 일단 저 비답은 심쿵인 것 같다. 


나에게는 어떤 사람이 중요한 사람들일까.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나는 그 사람에게 황희와 같은 두터운 신뢰를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의논하며, 생각을 존중하며, 표현하는 데 망설임이 없고, 무엇보다 같은 방향을 바라보는 사람들.



저 글을 읽다가 회사에 적용할 게 무엇일까 고민했고, 그 결과 나온 것은 <내인생백일장>을 완료하신 분들, 혹은 중간에 다양한 이유로 잠시 멈추는 분들에 대한 감사 메일이었다.  세종이 했던 방식을 활용하여 <내인생백일장> 고객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면 되겠다.  새로운 분들에 대한 환영도 중요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마무리되는 것에도 우리는 계속 소중한 인연이 아니던가. 저 메일을 읽고, 실록을 보면 한없이 부족하게 느껴지지만 진심은 전해지길 바라며.


이 실록의 대화 내용을 보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많은 분들의 아이디어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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