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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하연 Oct 10. 2021

여기는 안전하다, 세종의 심리적 안전감 조성법


 실록을 읽다보면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신하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기의 의견을 씩씩하게 말하는 것을 볼 때다. 가장 높은 상사인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목숨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용기 있는 의견을 낼 수 있었을까?

재위 20년 4월, 세종은 “대간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물게 되어 격려하는 뜻도 없고, 언로(言路)가 막히게 되어 정직한 진언자가 적을 것이라’라는 말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를 냈다. 하위지가 답하기를 ‘대간은 임금에게 직언하는 임무가 막중한데, 흥천사라는 절의 보수공사를 보니 불교 건물을 수리하면서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 대간들은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는 것인가? 자리를 지키기 급급해서 임무를 잊은 것 같다.’ 라고 했다. 세종이 지시한 흥천사의 불탑 수리 과정에서, 승도 천 여 명 동원, 막대한 자재 소비, 대가(大家)와 거상(巨商)들의 속임수에 따른 폐단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또한, 그는 대간의 역할을 언급하면서 베테랑 인사들의 잘못된 점을 말했다. 왕의 잘못된 결정에 대하여 반대하지 않고 자리 지키기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에 대해서다. 이 답안지에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던 황희 정승은 장원 급제 도장을 찍었으나, 사간원의 관원들은 전체 사표를 내며 항의했다. 현직에 있는 신하들이 한낱 신진 인사에게 제대로 당한 것이니, 어찌 지켜볼 수만 있겠는가.




놀랍게도, 세종은 사간원이 아닌 하위지의 손을 들어준다. ‘과거를 설시하여 선비에게 대책을 묻는 것은 장차 바른말을 은휘(隱諱:꺼리어 감추거나 숨김)하지 않는 선비를 구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니, 비록 과인(寡人)의 과실을 극구 평론했다 하더라도, 그 말이 만약 적당한 것이라면 마땅히 상렬에 놓아야 할 것이다. (세종 20/4/14)’ 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간원은 동의하지 않고 되려 도장을 찍은 황희 정승을 탄핵했다. 흥천사 불탑 수리에 그때는 반대하지 않았으면서, 알고도 묵인한 것이 아니냐는 이유에서였다. 황희는 탄핵을 받은 후 사직을 청했지만 세종은 황희의 마음을 헤아리며 사직서를 철회했고, 도리어 자신을 성찰하지 않고 항의했던 대간들을 파직시켰다. 만약 세종이 하위지의 답안을 보고 불이익을 주었다면, 대간들의 언로(言路;신하들이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는 어떻게 되었을까.


세종은 대간들의 언로를 막지 않고, 의견을 경청하는 데 집중하는 군주였다. 신하들의 말문을 트게 해야 하는 자리인 만큼 ‘심리적 안전감’을 조성하기 위해 애썼음을 엿볼 수 있다. 심리적 안전감이란 구성원들이 어떤 의견을 개진함에 있어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을 뜻하는데, 심리적 안정(stable)이 아닌 안전(safety)이 핵심이다.




세종은 이를 위해 몇 가지 방법을 이용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의 목적을 명확히 밝혔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과거의 목적은 ‘바른 말을 꺼리어 감추거나 숨기지 않는 선비를 구하려는 것’이라고 말하여 지금 상황을 설명했다. 두 번째,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흥천사 불탑 수리 과정에서 나온 부작용을 이야기하며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세 번째, 공통된 이야기가 있었다. 과거시험 답안으로부터 나온 대간의 역할과 이슈를 언급함으로써 같은 주제의 대화를 하고 있다는 공감을 조성했다. 또한, 의견에 대해 반대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그는 감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원인과 결과, 상황을 정리하며 그 사람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했다. 이러한 세종의 대처는 신하들에게 ‘여기에서는 이야기해도 괜찮다. 안전하다’라는 마음을 들게 했고, 그가 만든 심리적 안전감은 신하들이 왕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밝힐 수 있었던 초석으로 작용했다.

위의 사례를 보며, 나는 어떻게 상대방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주고 있는가를 성찰해보게 되었다. 혹여 같은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고 착각하며 일을 진행하지는 않았나, 나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 강한 점만 부각시켜 상대방이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닌가,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는가. 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며 심리적인 안전감을 조성하여 의견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도왔는가? 나는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전감을 만들어주고 있는지, 스스로 되묻고 또 되묻는 날이다.




이 글은, 세종리더십연구소 리더십에세이에 실린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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