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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Dec 01. 2023

보일러가 고장 났다!

어제저녁

아들이 샤워하러 들어간 뒤

소리치며 말했다.


"엄마, 차가워. 따뜻한 물이 안 나와."


조금만 기다려보라고 말하며 들어갔는데

물이 얼음장이었다.

느낌이 쎄~했다.


보일러 고장!


운동 학원을 다녀온 뒤라 땀범벅인 아들은

머리에 물을 묻혔다가 미처 씻지 못하고 뛰어나왔다.


보일러를 확인해 보니 에러 코드가 떠있었다.

얼른 관리사무소, 보일러 회사에 전화해

수리 예약을 잡았다.


제일 큰 냄비에 물을 끓이고 아들을 씻겼다.

아들과 우리 부부는 일단 이 상황에 순응하고

이 순간을 추억으로 만들기로 했다.


뜨거운 물을 들고 욕실로 온 나를 보고

아들이 말했다.


"이렇게 씻는 거야?"

"응. 이렇게 씻자! 엄마는 어릴 때 이렇게 많이 씻어봤어. 나름 재밌다고 ㅎㅎ"

"그래? 엄마도 이렇게 자주 씻었어?"

"그럼! 엄마는 주택에 살아서 겨울에 보일러 안 되면 이렇게 자주 씻었어."

"엄마, 우리 진짜 옛날 사람 같다."


따뜻한 물이 안 나오니 힘든 일이 많았다.

샤워뿐만 아니라 설거지도 힘들었다.

하필 저녁으로 고기를 구워 먹어,

기름이 가득한 프라이팬도 씻을 수가 없었다.


겨우 하룻밤이었는데

우리 가족은 따뜻한 물의 소중함을 느꼈다.

오늘 오후 우여곡절 끝에 보일러 수리를 끝내고, 아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아들은 마치 선물이라도 받은 듯이

소리를 지르며 행복하다고 했다.



당연하게 사용하던 것
당연한 줄 알았던 것
내가 찾으면 언제나 있던 것

없어져 봐야만 알게 되는 감사함

한동안은
따뜻한 물을 쓸 때마다
더없이 감사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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