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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다림 Jan 27. 2024

농갈라 묵다

농가르다

대학원 생활을 시작하고선

나에겐 두 분의 지도교수님이 계셨다.

한 분의 교수님은 쉰이 채 되지도 않은 8년 전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다.

많이 편찮으셨는데 돌아가시지 얼마 전까지도 그렇게 힘드신지 몰랐다.

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알리지 않으신 것뿐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하셨기 때문에 그 정도로 편찮으실 거란 생각을 꿈에도 해 본 적 없었다.

학생과 학과, 학교를 진심으로 아끼셨던 분이라

부고 소식을 들었을 땐 모두가 침통했었다.

돌아가시기 4개월 전

병원에 입원하신 교수님을 찾아뵀고

다른 학교에 입사한 나의 소식을 핑계로

통화도 여러 번 했다.

숨이 가빠지셔서 말씀을 못하실 땐

마음이 무너져 내릴 것 같았었다.


8년이 지났고 이제는 안 울어야지!

마음을 다지며 남편과 함께 교수님을 뵈러 갔다.

교수님의 모습을 목소리를 잊지는 않았지만

사진 속 교수님을 뵙자니 왈칵 눈물이 났다.

한참을 인사드리고 남편과 손을 잡고 나왔다.

남편과 나의 결혼을 누구보다 응원해 주셨던 교수님께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었다.

 

눈물 흘리는 나를 본 남편은

"이럴 땐 붕어빵을 먹어야 되는데."

라고 했다.


난 붕어빵을 좋아해서 연애할 때부터 싸우다가도 붕어빵만 쥐어주면 기분이 풀어졌기 때문이다.

참 단순한 사람이다.


마침, 근처에는 찐빵 가게가 많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찐빵 1인분을 샀다.


"한 개로 농갈라묵자."


라며 찐빵 하나를 반으로 나눠 먹자는 남편.

갑자기 찐하게 사투리를 쓰면서 찐빵으로 달래주는 남편 덕분에 슬픈 그리움도 달래졌다.

농가르는 행위 자체도 따수운데
남편의 마음은 더 따수웠다.

응원해 주신 교수님 덕분에 우린 콩 한 알도

농갈라 먹는 사이좋은 부부로 살고 있다.

늘 그리운 교수님.



농갈라묵자
'나눠 먹자'의 경상도 사투리

농가르다
'나누다'의 경상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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