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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Sep 20. 2017

'좋았던 그 시절', 정말로 좋았을까?

<우리들>

누구나 한 번쯤은, 어릴 적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복잡하고 치열한 지금이 아닌, 단순하고 순진했던 그 시절로 말이다. 같은 반이라는 이유만으로도 멋진 단짝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그때 그 시절.


그런데 그 시절을 살았던 '어린이'를 비추는 시선은 어떤 포장지로 싸여 있는 것만 같다. '멋모르고 지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그때가 참 편했지.'라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애가 뭘 알아?', '고작 어린 애일뿐이야.' 따위의 말들로 '속 편한' 어린이는 어른들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어른이 되기 위한 미완성 되어 버린다.

하지만, 어린이와 어른을 가르는 경계는 모호하다. 어른도 끊임없이 성장하는 미완의 존재이고, 어린이도 어른 못지않게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존재라면, 우리의 추억이 온전히 좋기만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윤가은 감독의 첫 장편, '우리들'은 초등학교 4학년을 재학 중인 이선과 한지아의 갈등을 그리는 영화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왕따로 지내고 있는 이선은 여름 방학식이 끝나고 이사 온 지아를 만나게 된다. 그들은 방학 동안 막역한 관계가 된다. 하지만 방학이 끝나자 그들의 관계는 이전과는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우리들'은 철저히 어린이의 관점에서 전개된다. 대부분의 영화들에서는 어른들이 주인공이 되어 갈등을 풀어나간다. 종종 등장하는 어린이는 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 혹은 민폐 캐릭터, 아니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담당하는 캐릭터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어떤 역할도 담당하지 않는다. 그저 11년 인생을 살아온 어떤 한 사람일 뿐이다. 어른들의 대화는 어린이의 시선에서 올려다보게 된다. 어린이를 지나치는 어른의 모습은 하반신만 보이게 된다. 어른들이 중심에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그들은 대체로 주변부로 밀려나 소음으로 존재한다.


'우리들'은 그때 그 시절을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때 있었던 미묘한 긴장, 불안, 우울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분투하고 괴로워하면서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부딪힌다. 비논리적으로 보이는 그들의 말에는 솔직한 그들의 감정이 묻어있고, 가끔은 어른들이 놓쳤던 뼈 있는 격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주체적인 과정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보지 않은 어른들의 소음 속에서 묻힌다.





영화에서 주목해 볼만한 부분은 두 가지 갈등의 차이이다. 영화는 주로 지아와 선의 갈등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두 사람의 갈등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르게 느껴진다. 어떤 공통점이 있고,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보면서 영화를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우리들'은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걸까?

이 영화는 '좋았던 그 시절' 속에 숨겨진 관계의 불안을 그린다. 경쟁에 대한 강박, 왕따에 대한 두려움, 친구에 대한 배신감, 소외받아 생기는 우울감.

그때에도 교묘한 권력관계와 상처받는 개인이 있었다. 사춘기라고 치부된 아이들에게는 상처가 있었고, 싸우면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흉터가 남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우리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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