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 2>
당신은 어떤 버전의 스파이더맨을 좋아하는가? 앤드류 가필드와 엠마 스톤이 나온 어메이징 시리즈가 있고, 이번에 마블 유니버스에 합류한 새로운 '홈커밍'이 있다. 그러나 나의 마음 속에는, 아니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가 있을 것이다.
아직도 스파이더맨 하면 어리숙하면서도 고뇌에 가득찬 토비 맥과이어가 떠오른다.
작품성만으로도 많은 찬사를 받는 시리즈가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맨 시리즈이다. (3편은 논외로..)
히어로를 단순히 완벽한 사람으로 낭만화하지 않고, 오히려 평범한 청년으로 비춤으로써 히어로를 수행하는 어느 인간의 고뇌를 표현해낸다. 특히 시리즈 2편에서는, 영웅이 되어 정의를 구현하지만 학업, 직장, 사랑 등의 보편적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딜레마를 가질 수밖에 없는 피터 파커의 고독과 고뇌를 보여준다. 솔직히 '홈커밍'은 굉장한 오락성을 보여주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스파이더맨 2를 역대 스파이더맨 영화들 중에서 최고로 꼽는다.
이 시리즈의 메인 테마도 굉장하다. 뚜렷한 기승전결을 지닌 이 음악은 영화에서 가슴 벅차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특히 시리즈 2 오프닝 크레딧에서 스파이더맨 1의 전체 줄거리를 메인 테마와 함께 보여주는데, 짧은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영화가 시작한 지 고작 3분이 지났음에도 벌써 명작의 냄새가 난다!)
(클래식 <스파이더맨 1>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스파이더맨 2에서 소개하고 싶은 음악은 이 음악이 아니다.
<스파이더맨 2> 사운드트랙 앨범에는 당시 청년들이 향유했던 음악 장르가 많이 포함된 것 같다. 내가 알기론 2010년대 전까지 미국에서 이모(Emo)라는 장르가 유행했다고 하는데, 당시 유명했던 여러 이모 밴드들이 사운드트랙 수록곡 명단에 나온다. (이모 밴드는 아니지만 마룬5도 스파이더맨 2의 사운드트랙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스파이더맨2>의 사운드트랙은 락 음악으로 가득 차있다.)
EMO - 쉽게 말해 감성적인 하드코어 펑크 록을 말한다. 자기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는 것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모코어가 남성 편향적이고, 오직 '외로운 소년의 미학'에 몰두한다고 비판된다. (물론 이모코어는 감정의 황폐함을 잘 표현해낸다는 점에서 남성 여성 모두에게 영향력을 끼친 문화였다.) 또한 오늘날 미국에서는 emo의 패션이 게이의 패션과 비슷하다고 하여 emo gay라는 혐오표현으로 emo 패션을 한 사람들을 놀리기도 한다고 한다.
사실 이모 음악이 이 영화의 분위기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책임이 뒤따르는 힘을 가진 가난한 청년의 고독을 감정적이면서 격정적인 사운드로 풀어내지 않던가?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노래이다. Dashboard Confessional이라는 이모코어 밴드가 부른 노래인데, 거친 사운드를 내지만 서정적인 멜로디와 가사는 스파이더맨 2의 여운을 더 깊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개인적으로 클래식한 음악들로 영화를 이끌고 가다가, 뜬금없이 엔딩 크레딧에서 이모코어 음악이 나와서 당황스럽긴 했다. 영어음악을 들을 줄 몰랐던 탓도 있었고..)
피터의 생활고, 외로움이 이 음악으로 더 절절하게 느껴진다. 가사도 피터의 이야기와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옛날에 클래식 <스파이더맨 2>를 봤던 사람이라면, 이 음악을 들으며 같이 향수에 빠져보는 건 어떨까?
희망은 줄에 메달린 채 위태롭지
마치 느리게 회전하는 구원처럼
안쪽으로 돌고, 바깥쪽으로 돌고
그 반짝임은 나의 눈을 사로잡았어
그리고 나를 끌어들여
넋이 나갈 것 같아 너무 매혹적이야
나는 매료되었어
난 결백해
난 이기적이야
내가 틀렸어
내가 옳았어
맹세컨데 내가 옳았어
맹세컨데 난 지금까지 모든 걸 알고 있었어
그리고 난 완전하지 않아
하지만 나는 이 결점들을 잘 씻어내고 있잖아
네가 봤다고 한 것을 이제 나도 볼 수 있게 되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