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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 Aug 11. 2017

거짓의 구렁텅이에서 헤매는 당신을 위해

<최악의 하루>

작가는 거짓말로 먹고 산다. 있을법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며 캐릭터의 운명을 좌우한다. 그 운명의 방향은 작가가 캐릭터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배우도 거짓말로 먹고 산다. 다만 작가가 만든 기존의 이야기에서 캐릭터를 연기할 뿐이다. 허구의 이야기를 몸소 보여주지만 배우는 어느 순간 진심을 드러낸다.





<최악의 하루>는 남 여 관계를 작가와 배우의 관계로 치환한다.

남자는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만, 정작 그는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않는다. '정말 사랑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오직 자기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다. 그러면서도 건네는 로맨틱한 말들과 몸짓. 그가 원하는 건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소유인 걸까? 사랑이라고 믿기엔 너무 뻔뻔스럽고 이기적이다.

여자는 남자에 대한 의심과 실망으로 지친다. 타들어가는 자기 속도 모르면서 자꾸만 로맨스를 꿈꾸는 남자에게 남아있는 정도 다 떨어진다. 그렇다고 그녀가 결백한 것은 아니다. 그녀도 거짓말을 하고 가면을 쓴다. 하지만 그녀의 거짓말은 남자의 거짓말과 다른 모습이다. 거짓말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마음을 숨기않는 것. 적어도 그녀의 마음은 남자에게 열려 있었다.


영화는 이러한 남 여 관계의 파노라마를 흥미로운 형태로 보여준다.

시놉시스는 다음과 같다. 서촌에서 한국인 여배우와 일본인 남자 소설가가 우연히 만난다. 잠깐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지고 각자의 하루를 보낸다. 남자 소설가는 출판 기념회를, 여자 배우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최악의 하루는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 영화에서 커피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것이 항상 편안한 관계에서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커피는 만남을 지속시킬 명분을 만들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는 건 중요하지 않게 된다. 커피는 음료가 아니다. 영화의 대사처럼, 커피는 거짓으로 점철된 관계에서 정신을 차리기 위한 각성제일 뿐이다.


진하게. 진한 각성.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거든요. 당신들을 믿게 하기 위해선..



이 영화에서 남산 산책로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롭다. 누가 누구와 남산을 오르고 남산을 내려가는지 집중해서 보시라. 남산 산책로가 단순한 산책로의 역할만 맡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영화에서 집중한 것은 각각의 이야기를 어떻게 묶고 풀어내는가였다. 이야기의 인물들은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작가'와 ' 배우'라는 두 상징에 묶여버린다. 영화의 플롯은 작가와 배우 사이의 관계의 순간순간을 켭켭이 쌓아 올린다. <최악의 하루>는 그렇게 켭켭이 쌓아 올려 만든 달콤 씁쓸한 케이크 한 조각이었다. 진한 커피와 함께.


이것은 최소한의 관계 속에 많은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는 거짓말로 점철되어 있지만, 단순히 '네가 거짓말을 했느냐?'의 여부로 관계의 잘잘못을 가릴 수는 없다. 같은 거짓말에도, 그 거짓말의 마음과 욕망이 어떤 것인지에 따라 거짓말의 모습은 확연히 달라질 테니까. 영화에서 여배우는 어떤 관점에서 '썅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취급은 너무나도 편협하고 단정적이. ('썅년'이라는 말 자체가 폭력적이기도 하지만..)
관계에서 따져야 할 잘잘못은 무엇일까?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고는 있을까?



거짓의 구렁텅이에서 당신은 작가인가? 배우인가?
작가라면, 이 영화는 따끔한 질문을 던져줄 것이고,
배우라면, 이 영화는 따스한 위로를 건네줄 것이다.




진짜라는 게 뭘까요? 사실 다 솔직 했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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