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병원과 집 사이에서 멈춘 시간

멈춘 청춘의 시간

by 백담
"오늘도 올라갈 수 있어?"

늘 같은 말로 나를 불렀다.

아버지는 구강암 3기 말기판정을 받은 암환자시다.


부산역으로 향하는 발걸음


새벽 4시 반, 나는 비몽사몽인 눈을 뜬 채로 모자만 툭 걸친 채 첫차를 타고 기차에 몸을 실어본다.

부산역에서 수서역까지 약 3시간이 걸리는 길.. 매번 갈 때마다 피곤함 보다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맴도는 기차 안이었다.


그해 가을, 기차 안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아들아 얼른 회복해서 엄마랑 같이 여행 가자" 아버지가 침묵을 깬 한 문장을 건네본다.

생각해 보니 여행도 거의 못 가봤고, 우리 가족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나는 서러운 마음이 복받쳤는지 아버지에게 대화를 끊임없이 건네본다.

"아버지 몸 괜찮아지면 좋은 곳 바람 쐬러 가요 그리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낚시하고 등산 같이 하러 가요

그러니까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 가족은 기다릴 수 있어요!.. 아니 기다릴 거예요! 그러니까 절대 포기만 하지 마세요"


스물여섯, 이 나이면 이제 졸업도 해야 하고 취업 준비에 몰두하는 시기다.

그리고 아름다운 청춘을 보내고, 누구는 SNS에 연애 이야기 그리고 여행 가는 걸 올리는 행복한 페이지를 담아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소리치며 기도만 할 수밖에 없다. 나도 남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었는데

평범이 그게 제일 어려운 단어였다.


스터디카페에서 공부를 해본다

김해에서 수서까지 왕복 6시간을 오가며, 병원, 스터디카페, 집 하루의 동선이 딱 세 가지였다.

아버지와 동행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점점 말이 안 나오기 시작하며 소통조차 불가한 상황이었다.

간호사와 얘기할 때 목소리가 안 나와 종이로 문장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들인 내가 옆에서 번역가처럼 대답을 건넬 수밖에 없었다.

주 3회 이상은 같이 수서로 올라가는 것 같은데 아버지께 말 못 한 사정이 있었기도 하다. 면접이 잡혔는데도 못 가는 상황도 많아 남들보다 안정적인 취업이 늦어졌다.

(근데 있잖아.. 취업은 언제든지 할 수 있어도 아버지는 언제든지 못 볼 수도 있잖아...? 우선순위가 있어)


아버지 진료가 더 중요하며 다음에 면접 보면 돼..라고 속으로 생각하지만 그 '다음'은 생각보다 오지 않았다. 기회도 마음의 여유도 말이다.


그때는 그냥 버티는 게 전부였지만 지나고 보니 나는 청춘 대부분을 '해야 하는 일'과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냥 하는 일' 그 사이에서 계속 나 자신과 타협하며 살아온 거 같다.

가족들도 각자 자리를 지키며 힘들고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을 건데.. 난 졸업 후 취준생인 신분에서 내가 당연히 시간이 많아 아버지 옆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돼줘야 한다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시간이 1년 그리고 2년이 지날수록 내 삶이 멈춰 있는 느낌이 더 커졌다.

이걸 누구에게 말해도.. "그래도 가족이잖아..!"라는 말로 나 자신을 억눌렀다.


20대의 후반의 시작점 나는 언제까지 20대의 청춘을 흘러 보내며, 아버지의 말기라는 그 타이틀 언제 끊어낼 수 있을지...

오늘도 새벽 4시 반 기차에 몸을 실어본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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