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가 사라지는 사람이다

하루의 소중함

by 백담
새벽 4시 반 오늘도 불이 켜졌다.


김해에서 수서까지 오늘도 어김없이 왕복 6시간.

그 시간을 기차와 버스에 몸을 실어야 한다. 이동시간만 놓고 보면 하루의 절반인 셈이다.

처음엔 그저 그 6시간이 길다고 느껴졌었는데, 지금은 어느 순간부터 아무 생각이 없어지고 그냥.. 뭐 이 정도는 기본이지라는 생각이 바뀌게 됐다. 누구보다 더 이 생활을 끝내고 싶은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계속 내가 투덜 부리는지 모르겠다.


김해에서 1004번 버스를 타고 부산역에 내린다. 부산역이 거의 종점이다.

부산역에서 타야지 수서역까지 가는 SRT가 있어서 항상 버스 타고 이동한다. 만약 늦었다면 1-2번씩 택시를 타곤 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불구하고 역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다들 출근하거나 여행 가는 분위기였다. 우리랑 정반대로 분위기가 따뜻해 보였고, 행복으로 가득 차보였다.

이런 현실이 너무 싫지만, 아버지는 애써 대화를 돌려 "아들 배 안 고파? 커피랑 샌드위치 사줄까?"

이 와중에 아들 배고픔을 챙긴다.. (아버지나 좀 챙겨드세요..!)


KakaoTalk_20251228_223036416.png 긴장과 떨림의 기차

아버지와 나는 기차를 탈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았다. 아버지가 창가 쪽. 일부러 그렇게 앉았다. 딱히 이유를 찾아본다면 아름다운 풍경을 아버지께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게 이유다.


수서역에 내리면 S병원을 가려고 줄 서있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감사하게도 수서역에 내리면 병원 셔틀버스가 와 병원까지 태워준다. 병원에는 수많은 아픈 환자들이 많이 보인다. 병원 내 들어서면 마음이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변호표를 뽑고 교수님 진료 미팅을 기다리고 있다. 기다리는 도중 한 어머니와 아들의 영상통화.. 마음이 뭉클해진다. "엄마 보고 싶어.. 나 장난감 만들었어, 엄마도 같이 만들면 좋았을 건데"

왜 이 아픔이라는 병 때문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혼자 괴로워하고 견뎌야 하는지 참.. (세상에 소리친다)

얼른 또 다른 세상이 와서 아픔과 고통이 없는 그런 하루들이 선물 그리고 기적처럼 내려오길


진료 대기 시간이 길어질수록 아버지는 말수가 줄어들고, 손을 맞잡으셨다. 괜히 피곤해 보이고, 힘든 티 낼까 봐 말을 아끼는 것 같았다. "아들 물 좀 줄래?" 힘겹게 꺼낸 한마디.

말도 제대로 안 나오는 아버지가 힘겹게 나온 한마디. 얼마나 힘드셨으면, 그리고 긴장하셨으면 그럴까

물컵 하나 건네는 게 그날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진료받은 결과 목 깊숙한 곳에 혹이 심하게 자랐다고 하며, 항암치료랑 방사선 치료를 '또'받아야 한다고 했다. 사실 여기 수서에 오기 전 부산 하단 쪽에 위치한 병원에서 항암과 방사선을 계속 받았었다.

그것도 40회 넘도록 말이다. 그런데 호전이 안 되고, 계속 제자리걸음인 거 같아 친척들의 말과 각종 카페 및 블로그를 검색한 결과 큰 암 특히 말기환자는 서울 쪽에서 치료를 받는 게 좋다고 해서 결국 병원을 옮기게 된 것이다. 몸과 비용과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일단 좋은 기술과 인프라를 통해 살려야겠다는 생각 밖에 없었기에 결단을 내렸다. 항암이랑 방사선을 하면 머리가 점점 빠지며, 뇌 정신상태가 온전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나는 그걸 알기에 교수님의 진단결과에 쉽게 수긍하지 못했다.. 아니 안 하고 싶었다.

그냥 빨리 수술을 통해 그 혹만 잘라내고 상처 부위를 꿰매면 안 되는 것인가? 다 절차가 있는 거 같았다..


정말 하루가 살 떨리는 기분이고, 또 생각이 많아지는 그런 날들이다. 병원에 가는 날이면 하루가 그냥 사라진다. 뭘 했는지 기억이 잘 안 나고 분명 정신없이 바쁘게 지나갔지만 진정 뭘 했는지 정신이 혼미해진다.

병원에 오면 아픈 사람도 많지만, 기다리는 사람이 훨씬 많았다. 그저 그냥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진료받는데 10-15분 정도 걸린 거 같다. 진료받는데 이 정도 시간 밖에 안 드는데 병원 가는 시간과 기다리는 시간..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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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이랑 처방받고 다시 수서역으로 향하며 기차에 몸을 실어본다. 오늘도 내려올 때 똑같이 아버지는 창가자리, 아침과 저녁의 그 풍경은 아버지의 눈에는 더욱 달리 느껴질 것이다.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쫓는 사람들, 그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는 우리

오직 아픔과 그 아픔을 지켜보는 가족들이야 말로 그 간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으며, 진정 '행복'이라는 게 뭔지 알 수가 있을 것만 같았다.

그날도 그렇게 하루가 사라지며, 아무도 아픔을 알아주지 않은 채로 하루가 저물어갔다.

오늘도 어김없이 내 휴대폰은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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