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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by 백작

교사입니다. 1학년 부장 담임이지요. 집과 근무지가 걸어서 5분 거리입니다. 셋째도 데리고 다닐 겸 8시 30분에 집에서 나섭니다.

셋째를 먼저 계단으로 올려보낸 후 우리 교실로 향합니다. 마음을 가다듬습니다. 밝은 목소리로 인사하며 들어가고자 계획합니다. 교실에 들어오면 21명의 학생들은 책을 보고 있습니다. 나로 인해 독서 시간의 집중력이 깨진 느낌이 들지만 인사는 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아침에 나보다 조금 일찍 와서 에어컨을 켜두었습니다. 시원합니다. 창문을 열고 공청기도 켭니다.

컴퓨터를 켜는 게 긴장됩니다. 얼마나 많은 업무 메시지가 있을까요? 오늘은 세 개뿐이네요.

추경 예산, 운동장 라인 그리는 문제, 학업성적 위원회 협조 결재 건입니다. 학생들과 활동할 수 있는 도안을 인쇄 눌러두고 교실 한 바퀴를 돕니다. 바닥이 지저분하네요. 아이들과 정리 정돈할 겨를 없었습니다. 밀대와 밀대 청소포를 챙겨서 교실 바닥을 닦습니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라도 움직이면 제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어제 결재 완료된 문서를 확인한 후 먼저 프로그램에 접속합니다. 한글 해득 검사인데요, 우선 제가 우리 반 학생 한 명과 해봐야 다른 반에도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한글 또박또박 사이트에 접속한 후 임의로 한 명을 불렀습니다. 제 옆에 서서 단어를 읽었는데요, 서 있게 하려니 미안했지만 금방 끝날 것이니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직접 적용해 보면서 한글 또박또박 매뉴얼도 익혔습니다.

교사는 교재 연구, 학생들 생활지도, 급식 지도 등 관심 가지고 할 일이 많습니다. 연구실에 A4용지 없는 문제도 바로 해결하는 게 서로에게 낫답니다. 동 학년 안에서 먼저 챙기는 문화가 되어 있으니 저로서는 감사한 일입니다. 업무가 매번 잘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팀으로 움직이는 선생님들 계시니 든든합니다. 덕분에 오늘도 힘냅니다.

제가 하고 있는 일과 글 잘 쓰는 방법을 연결 지어 보았습니다.

첫째,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학생들을 교육할 때 특히, 학생들의 일과에 집중해야 되지요. 화장실 오갈 때도, 학생들 쉬는 시간의 대화 내용도 저에겐 관심 대상입니다. 교사로서 관심이 작가로서 글감으로 전화되는 기분이 듭니다. 쓸 거리가 없다고 흔히 말합니다. 어제와 오늘 있었던 일을 메모하다 보면 글감을 찾을 수 있습니다. 관심 가지고 쓰기만 하면 됩니다.

둘째, 매일 공부해야 합니다. 학생들 가르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저처럼 3년 만에 저학년을 맡는 경우에는 학생 성향 분석도 공부거리입니다. 수업 내용에 맞게 활동지를 인쇄하는 일도 공부가 우선 되어야 가능합니다. 선후배 교사들이 먼저 연구해서 올려둔 자료도 교사인 제가 공부가 되어 있지 않으면 찾을 생각도 못 하는 거지요.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독서해야 하고 쓰는 법 공부해야 어제보다 오늘 나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셋째, 사랑해야 합니다. 1년 동안 맡은 어린이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분명 어린이들도 선생님의 찬바람을 느낄 겁니다. 사랑하기로 마음먹고 학생들을 챙겨야 하는 거지요. 가끔 화날 때도 있지만 화까지도 어린이들을 향한 기대치 때문이란 걸 알아차리게 되네요. 어느 학년을 맡더라도 그럴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보완하는 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학생도 챙기고 글도 써봅니다. 사랑한다면 자주 내 글과 만나고 싶을 거예요.

넷째, 하기 싫어도 해야 합니다. 자주 느끼는 감정은 아니지만 학기 초가 되니 쉬고 싶다는 마음도 올라옵니다. 개학 후 일주일을 보내면서 피곤하고 잠도 많이 자게 되었습니다. 방학기간 자기 계발을 위해 잠을 줄여도 피곤하지 않았는데요, 개학 후 업무 중심의 스케줄이 생기니 몸이 힘듭니다. 그래도 출근해야 합니다. 작가도 쓰기 싫을 때 있습니다. 그러면 쓰기 싫었던 마음까지도 글에 녹여서 써보면 좋습니다. 쓰기 싫어도 출근하는 마음으로 쓰는 사람이 작가입니다. 꾸역꾸역 쓰다 보면 글도 쌓이고 작가로서의 직업의식도 견고해지리라 생각합니다.

다섯째, 연차가 쌓일수록 일속도가 붙습니다. 저도 저 경력 교사일 때는 일이 몰릴 때 들었습니다. 오늘은 수업 중 코피가 난 친구가 있었고 코피 지혈을 하면서 수업도 이어갔습니다. 한 손으로 학생 코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작품 활동에 대한 설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바닥에 흘린 코피도 닦았고요. 보건교사와 통화도 했습니다. 동시다발적인 일을 착착 해내는 교사가 되었습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초고를 쓸 때 한 편을 쓰기 위해 종일 의자에 앉았던 기억이 납니다. 4년간 읽고 쓰면서 템플릿 활용도 하고 메모한 글감도 찾아보는 등 쓰는 힘이 생긴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제 이야기를 세상에 공개하는 데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더 속도가 붙는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직업/업무를 떠올려보면 각자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일하는 노하우를 메모해 보면 결국 글 쓰는 방법과 이어집니다. 누구든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글쓰기 실천을 위해 먼저 챙길 일은 나도 작가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일하면서 쌓인 경력은 작가로서 출발의 기회입니다. 용기 내십시오. 독자는 당신의 글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작가가 되었더니 작가의 눈으로 오늘 업무를 바라봅니다. 글감을 안겨준 어린이들이 고맙기도 하고요, 수시로 변하는 제 감정에 대해서도 알아줘야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1학년이 배우는 <하루> 교과서 덕분에 저도 오늘을 충실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가져봅니다. 이 글도 그런 의미에서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남은 오후 쓰면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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