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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작책쓰기 Sep 19. 2024

혜택을 주는 사람

오늘 한 일 메모부터 해보고 글을 시작하려고 한다.


-행복한 학급 독서 참가자 명단 자료 집계 제출

-강사 범죄 경력 조회 내부 기안 결재

-강사에게 지도 계획 양식, 계약서 내용 제공

-보건 교사 수업 일정 의논

-현장 체험학습 답사 날짜 의논

-무슨 외부강사가 근무를 시작했는데 인사했음 (복도에 계신 선생님)

-5교시 수업 운영

-급식 지도

-학생들 한글 해득 검사 진행 중

-그림책 읽어주기

-교외체험학습 통화로 안내


연휴 끝, 출근하는 날! 단식과 소식 덕분인지 다른 날보다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났다. 다른 날보다 몸이 가벼운 것 같았다. 컨디션이 좋아서 다행이다. 

웃으며 시작하려고 했다. 다른 날보다 10분 일찍 출근했는데 교실문은 열려 있었다. 장기간 연휴라 문을 잠그고 간 게 마음 쓰여서 일찍 갔더니 나보다 더 일찍 온 학생들이 문을 연 모양이다. 개인적으로 일찍 등교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보호해 주는 어른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다. 먼저 와서 문을 연 것까지는 그나마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아이들끼리 말다툼을 하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다. 특수교사가 아침에 우리 반에 들어온다. 학생을 챙기기 위해서다. 특수교사가 우리 반 생활지도까지 하기엔 무리다. 

싸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일찍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출근시간을 당긴다는 건, 함께 등교하는 막내도 일찍 나서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방법은 찾아야 한다. 어쨌든 내가 없는 교실에서 아침부터 싸우고 있어서 신경이 쓰였다.

아침은 아침이고 1교시부터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한글 해득 검사가 밀려 있다. 수업도 해야 하고 틈틈이 한 명씩 글자를 잘 읽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국어와 수학 시간엔 진행하기엔 무리였다. 통합교과 <하루> 시간에 앞 부분 설명을 한 후 만들기 도안을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이 만들 동안 한 명씩 부를 생각이었다. 

계획대로 쉽지 않았다. 만들기가 문제였다. 색깔로 마음을 나타내는 수업이었다. 아이스크림 모양에 자신의 감정을 쓰고, 그 이유를 적게 한다. 그리고 모양을 잘라서 아이스크림이 담긴 컵을 꾸민다.

아이들은 감정을 쓰는 것보다 아이스크림 자체를 꾸미는 일이 우선이 되었다. 교과서에서 먼저 오늘 감정을 색깔로 표현하기를 먼저 해보았지만 인쇄한 도안에는 이유도 쓰게 되어 있어서 심화라고 볼 수 있다. 나의 설명대로 잘 하고 있는 학생 것을 칠판에 보이게 띄운 후 다시 설명했다. 

내 말이 어려운가? 원래대로 아이스크림만 꾸미고 있는 게 보인다. 인원이 적어 한 명씩 말해두곤 했는데도 잘되지 않았다. 어쩌면 1학년에게 김정, 기분, 마음을 표현하도록 하는 수업 자체가 어려운 내용이란 생각도 들었다. 

어른인 나도 내 기분을 정확히 바라보는 게 쉽지 않은데 1학년은 오죽할까. '기뻤어요, 재미있었어요, 행복해요, 짜증 나요, 화나요' 이 정도 표현을 했다. 

겨우 10분이 남았다. 한 명씩 불러서 한글 해득 검사도 진행했다. 세 명 정도 읽기, 유창성 검사를 한 것 같다. 활동에 시간이 더 필요한 친구는 다음에 부르기로 하고 순발력 있는 친구들 먼저 불렀다. 이왕 일해야 하는 거 한 명씩 챙긴다고 생각하려고 한다. 전체를 두고 많이 웃지 않았다면 한 명에게는 웃어줘야겠다고 다짐한다. 

교사는 수업만 하는 직업 아니다. 서류 업무도 있다. 동료와 협업도 해야 한다. 아이들도 챙겨야 하고 아이들의 부모까지 소통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글 해득 검사도, 강사 관련 업무도 모든 일이 아이들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고 넓게 생각하자. 강사 관련 업무도 결국은 아이들에게 놀이 수업 혜택을 주고자 하는 거니까.

나는 혜택을 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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