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경력만 쌓일 뿐 내세울 만한 실적이 없었습니다. 제 삶에서 승진을 지우고 나니 교사로서의 존재감도 사라진 기분이 들었습니다. 교실 안에서 노력하는 것 같은데 한 해를 마무리하면 남아있는 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허무했습니다. 충전을 위해 육아휴직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했어요. 저는 생계형 교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이 더 들수록 교사로서의 의미 부여를 하기 위해 애썼던 것 같아요. 스스로 작아지지 않기 위해 애쓴 것이지요. 아이들마다 내가 필요한 존재이고 싶었습니다.
공부도, 교우관계도 돕는 게 우선 목표가 되었습니다. 남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책상 자리 배치부터 과제를 제시하는 요일까지 학생들이 나를 볼 때 공정한 사람이고 싶었던 거지요.
똘똘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발표력도 뛰어나고 과제도 잘 해왔습니다. 친구들을 이끄는 걸 좋아했습니다. 똑똑한 머리로 만들어낸 말들은 친구들 사이에 갈등을 만들었지요. 본인은 그럴 의도가 아닌데 친구가 오해했다는 식으로 표현하곤 했습니다. 비슷한 유형으로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친구 간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정에 저를 향한 언어전달이었어요.
"엄마, 나는 쓸모없는 존재야?"
"왜 그런 말을 해?"
"우리 선생님이 쓸모없다고 했어."
학부모는 제게 바로 전화를 했습니다. 선생님이 우리 애한테 쓸모없다고 했냐고요. 친구들한테 친절하게 말하지 않으면 친구들과 멀어질 수 있다고 말해둔 것을 그렇게 전달한 것입니다.
학부모와 학생 사이에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18년 경력이 무색했습니다. 저는 땅굴을 파기 시작했습니다. 인정은커녕 없는 말까지 전해 들으면서 민원을 받으니 출근하는 것도 어렵다고 느껴졌습니다. 2주간의 병가나 연가를 신청하고 쉬고 싶었습니다. 그때 저를 학교에서 버티게 해준 일은 두 가지였습니다.
해당 학생이 코로나에 걸려서 등교 중지가 된 부분이었고요, 또 다른 하나는 독서교육 컨설팅 강의가 잡힌 기간이었기에 학교에 와야 했습니다.
독서교육 관련해서 내세울 실적은 없습니다. 아이들이 독서상을 받아온 것도 아니고 그저 매일 책 읽어주고, 제 책을 학교에 가져다 둔 게 대부분이었습니다. 독서교육 컨설팅 강의를 받은 이상 가만히 있을 순 없지요. 교실에 다시 독서 전 중 후 활동을 적용해 보고 학생들 소감을 모았습니다. 사례 위주로 강의할 생각을 하니 강의할 내용이 점점 쌓이기 시작했습니다.
학교생활에서 이룬 것 없다고 생각했고 학부모 민원 등으로 마음이 가라앉았을 때 해당 학생은 며칠 학교에 오지 못했고 저는 강의까지 잘 마쳤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교직 안에서도 표면적으로 증서 형식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지만 아이들에게 책을 심어주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첫 책 집필을 시작했지요. 그리고 5개월 조금 넘어 출간했습니다. 책 쓰기는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았습니다. 자이언트 북 컨설팅 강의 덕분에 순조로웠습니다.
동료의 능력과 나의 성과를 비교하려는 마음이 글 쓰다 보니 해결되었습니다. 더 나아가 출간 작가가 되면서 승진보다는 작가라는 저 만의 생각이 뚜렷해졌지요. 승진해 봤자 책임질 부분이 더 많아져서 업무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출간 이후 저는 더 당당한 교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이들의 출간도 돕는 코치가 되었거든요. 작가로 살다 보니 생각의 확장이 일어난다는 점도 경험합니다.
승진을 목표로 달려서 실적을 모으는 교사도 없진 않지만, 반대로 평소 아이들을 챙기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런저런 도전을 해보며 아이들에게 참여 기회를 주었더니 자연스럽게 승진 점수도 쌓인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요.
저의 마음이 커가는 걸 느낍니다. 교사로서도 마음이 넓어졌고요, 작가로서 품어야 할 저의 독자를 생각하는 수준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면서 제 일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 긍정적이고 포용하는 마음으로 동료를 바라보는 점도 달라진 부분입니다.
모두에게 저의 글 쓰는 삶을 전하고 싶습니다. 특히, 아이들 가르치는 교사가 글을 쓰기를 바라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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