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내 삶 최고야!)
글을 쓰면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일상의 경험과 감정을 관찰하여 글로 기억할 수 있습니다. 있었던 일만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오늘은 나에게 어떤 하루였는지 의미 부여한 내용을 덧붙이면 다른 사람이 읽었을 때 공감, 위로, 감사, 용기 등의 마음도 줄 수 있습니다.
초등 1학년 부장입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며칠 전부터 샌드아트 공연이 있는데 1학년도 함께 볼 건지 물었습니다. 당연히 좋다고 했습니다. 8시 50분 공연 시작이라 아침 활동은 생략하고 세 개 반이 서둘러 공연을 보러 강당에 갔습니다. 유치원 선생님이 처음 제게 제안했을 때는 저에게 학생 의자를 준비해서 깔면 1학년 모두가 편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1학년을 데리고 의자 60개를 까는 건 무리란 생각에 강당 바닥에 앉히겠다고 했습니다. 제 이야기를 듣고는 별말씀이 없었는데요, 오늘 강당에 갔더니 일인용 엉덩이 깔개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폭신한 자리에서 공연을 볼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용을 구매한 것을 1학년에게 양보한 후 유치원은 큰 담요를 깔았을 것이라고 예상이 되었습니다. 아이들 공연을 보도록 기회를 준 것도 감사한데 1학년 아이들을 위해 깔개까지 마음을 쓴 담당자를 보면서 섬세하다고 느꼈습니다. 1학년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살았던 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연을 보기 전 강당 입구에 있었던 물건을 관찰한 순간 저의 생각도 글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쓴 덕분이지요.
샌드 아트 공연을 본 우리 반 21명의 학생들에겐 어떻게 하루를 소중히 여기도록 도왔을까요. 교실로 돌아와 2교시엔 짧게라도 글을 써보자고 했습니다. 1학년과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맞춤법은 강조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소리 나는 대로 틀리게 써도 오늘은 넘어갔습니다. 일일이 글자를 바르게 고쳐주다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까지도 까먹게 될 것이라는 게 저의 판단이었습니다.
오늘 공연 어땠는지 물었더니 한결같이 부러웠어요라는 대답이 나왔습니다. 공연 내용은 <팥죽할멈과 호랑이> 책 내용이었습니다. 샌드아트 1부 공연이 끝난 후 아티스트는 퀴즈 세 개를 낸 후 맞힌 어린이에게 오레오 과자를 하나씩 줬습니다. 아이들은 대부분 우리 반에 OO 이가 오레오 받은 게 부러웠던 겁니다. 제사보다는 떡밥에 관심이 있었나 봅니다. 공연 장면을 기억해 보자고 했고 무엇이 기억나는지 물었습니다. 모래로 그린 그림이 신기했고 모래도 만지고 싶었다는 내용이 이어졌습니다.
일대일로 지도할 차례입니다. 빈 A4용지에 재미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면 무슨 장면에서 재미있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대답을 듣고 메모해서 보여주었고요, 제 메모를 보고 다시 글씨를 써오게 시켰습니다. 초등 1학년의 샌드 아트 공연 관람 글쓰기는 어려운 작업이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넉넉하게 투자하여 학생마다 생애 첫 시를 한 편씩 썼고 결과물도 남았습니다. 저는 저대로 지도 과정에 대한 경험을 다시 글로 옮길 것이며, 학생들도 처음 시 쓴 경험에 대해 또 기록할 수도 있겠지요. 오늘은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날이었습니다.
오늘 경험은 오늘만 남기는 것은 아니겠지요. 제가 작가가 되고 두 권의 개인 저서를 출간하면서 저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첫 번째 개인 저서 <조금 다른 인생을 위한 프로젝트>에서는 교직 경력 18년 동안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진행했던 내용 와 16년 세 자매 독서육아 과정을 담았습니다. 책을 쓰기 전에는 교사로서의 삶이 승진 중심이 아니었기에 이룬 게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부족하지만 첫 책을 쓰고 나니 교사로서의 제 삶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쓴 덕분에 그동안 잘 살았다고 저를 인정했지요. 과거의 제 삶에도 소중했다는 점을 쓰는 삶을 만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개인 저서 <여자, 매력적인 엄마 되는 법>에서는 육아 휴직 없이 세 자매를 키우면서 경험했던 에피소드와 읽고 쓰며 강의하는 엄마로서 살아낸 과정에 대해 썼습니다. 특히, 두 번째 책을 읽은 독자들이 술술 잘 읽힌다는 말씀을 해주었고 나도 내 이야기 써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했습니다. 2024년 2월에 출간한 두 번째 책 덕분에 저와 평생 글 친구가 된 분도 두 명이나 있을 정도입니다. 이렇게 과거 삶을 글과 책에 담아서 과거의 순간도 소중하다고 느꼈을 때 제 글을 읽은 독자들도 용기를 가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글 쓰는 삶을 만난 덕분에 지나 온 삶에서 버릴 조각이 하나도 없습니다. 상세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갑갑한 장면은 있어도 지울 장면은 없다는 점, 작가가 된 후 달라진 부분입니다. 저에게 쓰는 삶을 알려준 은사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 수 있는지 방법 세 가지를 제안해 보겠습니다.
첫째, 메모합니다. 혹자는 스마트폰이 시간을 빼앗는 물건이라고들 말하는데요, 저는 스마트폰을 메모지로 사용합니다. 네이버 메모, 캘린더, 인스타그램, 사진첩 모든 게 저의 메모 공간이자 도구입니다. 오늘은 아침에 포스팅 한 편 발행하고 싶었는데 시간 여유가 없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바로 쓰지 못해 갑갑했습니다. 대신 캘린더 오늘 날짜에 '내년 1월? 왜요? 지금부터 공부해야 쓸 줄 알지요'라고 메모했습니다. 이는 라이팅 코치로서 설득하고자 하는 포스팅을 올릴 때 필요한 문구입니다. 오후 버스 타고 치과 가는 길에 스마트폰으로 글을 발행했습니다. 그 과정조차도 작가로서 메모했다가 언제 어디든 글을 쓰는 저를 관찰했고요. 잘했다는 마음도 들었습니다. 순간마다 의미 부여는 계속 이어지는 것이지요.
둘째, 미소 짓습니다. 오늘 하루에 저 역시 화낼 일도 있었고 이해 안 되는 부분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억지로라도 웃으니 마음이 진정되더라고요. 욕하는 학생, 때리는 학생, 놀리는 학생이 있어서 생활지도 겸 목소리를 높였다가 순간 멈추었습니다. 욕의 뜻도 모르고 욕하는구나 싶어서입니다. 그러고는 처음보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하게 설명했습니다. 욕의 뜻을 1학년에 맞게 쉽게 풀어줬더니 본인은 욕한 적 없다고 다시 주장하네요. 웃고 넘겨야겠지요. 때리는 학생과 놀리는 학생은 같은 사건입니다. 그래서 놀리는 말에 화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화내면 놀린 사실을 받아들이는 꼴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미소 지은 결과 술술 할 말은 나오네요. 어느 정도 알아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늘보다 덜 싸울 거라고 믿습니다. 아이들과 마주하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자 노력한 하루였습니다.
셋째, 사색합니다. 이 부분은 요즘 계단 오르기를 하는 동안 느끼는 부분입니다. 저의 경우 하루를 새벽 1,2시에 마무리하는데요, 대신 자정이 되기 전에 아파트 계단을 오릅니다. 나름의 운동시간 확보입니다. 2층에 살고 있는 제가 15층까지 올라가는 5분 동안 오늘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생각하는 시간 덕분에 쓸 거리를 발견합니다. 하루를 잘 살았다는 뿌듯함도 생기고요. 사색하는 과정에서 저를 칭찬하기도 하고 내일 할 거리도 머릿속에 정리합니다. 짧은 운동 시간이었지만 열흘 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사색 시간은 앞으로도 확보되리라 예상합니다.
메모하기, 미소 짓기, 사색하기 세 가지 덕분에 매 순간 소중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글 쓰는 삶을 만나지 않았다면 가질 수 없는 습관입니다. 4년간 쓴 덕분에 저는 단단해졌습니다. 오늘을 잘 살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