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아이들이 하교한 후 내 자리가 폭탄 맞았다. 아이들이 하교하면 문을 닫고 마스크부터 잠시 벗고 쉰다. 그리고 연수를 틀어둔다. 겨울 책에 베트남 논 모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마분지 조각이 교탁 근처에 널브러져 있다. 계속 앉아만 있을 수 없어서 박스에 종이를 차곡차곡 넣어 버려야 했다. 아이들 책상을 살짝 들어가며 밀대로 닦았다. 오늘은 교실을 왔다 갔다 하며 몸을 움직이니 오히려 기분도 좋아졌다.
청소를 끝내고 나니 부재중 전화가 들어와 있었다. 몇 주 전부터 독서논술지도사 과정을 수강하는 학부모 전화였다. 오전에 독서논술지도사 과정 수료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오늘부터는 아이를 1시까지 교실에 머물게 하지 않아도 되나 보다. 아이도 오늘 빨리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몇 주간 금요일마다 어머니가 수업 마치고, 집에 오는 시간에 맞추어 아이를 하교시켰다. 전화를 걸어보니 어머니는 그동안 아이를 잘 봐주었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선생님이 독서지도사 배웠냐고 물어보셔서 용기를 냈습니다. 선생님 아니었다면 공부하려고 생각 못했을 거예요. 선생님이 추천한 나를 지키며 사는 법 책에도 큰 위로받았습니다. 마음 먹기 그림책도 추천해주시고 책도 보내주셔서 제가 독서지도사 과제 발표에 활용했습니다. 그림책 큐레이터에도 관심 가지게 되었어요."
어머니와 통화할 때마다 책 이야기로 채울 수 있었다. 동네 언니 동생처럼 편하게 책수다를 나누었다. 오늘은 그림책 오픈 채팅방과 카페를 소개드렸다. 이현아 선생님과 김연옥 선생님도 소개해드렸다.
"어머니! 독서논술지도사 과정으로 거실에서 공부방해보세요. 한두 명 받아서 몰빵 하세요. 10만 원 회비 받고 100만 원 치 주세요. 어머니 편으로 만드세요. 그리고 블로그 꼭 하세요. 교육지원청 개인과외교습자 신고하시고요. 어머니 잘하실 겁니다. 이미 큰아들 작은 아들 지도해보신 경험 충분하신데 자격증도 따셨으니까요. 수학 과목에 독서논술 포함하면 주변 경쟁되는 공부방 없을 겁니다."
(전화로 말하다 보니 사부님 말씀 그대로 흉내 냈다. ㅎㅎㅎㅎㅎㅎㅎ)
어머니와 통화하면서 내가 신났다. 어머니는 다음에 큐레이터 등 자격 따시면 전화 주신다고 했다. 나는 어머니를 응원하지만 어머니는 날 응원해주신다.
선생님 같은 분 없다고.
짧은 문장이지만 학년말에 힘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의지가 불끈 생긴다. 독서지도사 배우셨냐는 말 한마디가 학부모를 배움의 길로 가게 할지는 몰랐다. 어머니가 방학 일기를 정성껏 지도한 흔적에 감탄해서 나온 말이었다. 학부모와 담임 간에 덕담과 격려를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알게 되었다.
1학기에는 선생님 때문에 우리 애 등교 못 시키겠다는 말을 들었다. 2학기에는 선생님 덕분에 자격증도 따고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는 말도 들었다. 1학기에도 2학기에도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덕이 되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다. 깨달았다. 내가 하던 대로 말하기로. 해주고 싶은 말을 진심으로 해주기로.
감사한 일은 부모의 반응에 관계없이 아이들은 모두 예쁘다는 것이다. 나의 감정을 내려놓고 아이들에게 관심 가지고 공평하게 칭찬과 꾸중을 아끼지 않는다. 신규 2년 차에도 18년 경력에도 여전히 열정을 유지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들과 종업식을 맞이하는 날을 세어본다. 22일만 만나면 종업식이다. 코로나 영향 없이 매일 등교할 때의 남은 날짜다. 지난주에는 학급 학예회 영상 편집을 하며 기뻤다. 영상으로 추억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종업식을 세면서 아이들에게 시집을 만들어주려고 편집 진행 중이다. 아이들에게 아이들만의 책을 남겨주고자 한다. 매년 학급운영을 개선해나간다. 학예회 영상과 시집 만들기는 처음 한다. 독서 중심 학급에 특색을 조금씩 추가한다.
학부모와의 대화 덕분에 종업식을 아쉬워하면서도 기쁘게 맞이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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