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층적 연대의 모색

홀로서기보다는 다층적 연대로

by 백제웅


"미국과 우리는 세포 단위에서 결합이 이루어진 관계다. 변화한 미국이 불편하다고 해서 쉽게 거리를 두기는 어렵다. 동시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립된 자율성이 아니라, 국제 규범을 함께 세우는 '중견국 연대'를 모색하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게 우리 힘을 키워야 하겠다.

스스로 지키고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누구도 나서서 챙겨 보살펴 주지 않는다.

군사력을 키우고 경제적 힘도 키워야 한다.

위기와 예기치 못할 도전에 대응할 수 있도록 경보체계도 갖추고 어지간한 어려움에도 버텨낼 물적, 정신적 근육도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서로에 대한 신뢰도 높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함께 잘 살 수 있다는 믿음도 키우고 상생의 기반도 만들어야 하겠다.

그렇지만 우리끼리만 고립되어 살 수 없다는 변함없는 현실도 절실히 가슴에 새기고 있어야 한다.


세포 단위로 결합된 한미 관계와 전략적 자율성의 한계

일제 식민지배와 한국전쟁의 비극을 넘어서 그나마 우리가 잘 살게 된 바탕에는 미국이 있었다.

70년 넘는 동맹이 있었기에 한반도의 평화, 안정과 번영이 가능했던 것이다. 미국을 떠나서 다른 국가를 찾는다는 건 2026년을 사는 우리나라에게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없다.

물론 영원히 미국과 동맹으로 함께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경직되고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듣기에 따라서는 자존심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당분간 적어도 21세기 후반부에 들어설 때까지 미국과 같이 가는 건 상수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미국이 흔들려도 우리 안보와 경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독자적 힘을 키우는 게 어떨까 생각할 수 있다.

소위 '전략적 자율성(Strategic Autonomy)'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럴듯해 보인다.

그렇지만 눈에 띄게 달라지는 결과를 가져올 당장의 정책이 되기에는 우리가 미국을 빼고 혼자 살 길을 논할 처지에 놓여 있지 않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서로 너무 촘촘하게 얽혀 있다.

마치 접붙이기가 끝난 나무처럼 세포단위에서 결합이 이루어진 두 나라 관계를 고려하면 변화된 국제환경과 변화한 미국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그들로부터 거리를 두기가 어려워 보인다.


중국이라고 하는 우리의 중요한 이웃과 중국을 경계하는 작금의 미국 입장을 보면 섣불리 전략적 자율성을 드러내고 추구하다가는 안보차원의 중요한 동맹인 미국으로부터 큰 의구심을 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외교문제를 생각하는 데 있어 북한이라고 하는 요소도 결코 무시해서는 안된다.

당장은 북한이 미국과 대화를 위해 나설 것 같지 않지만 어찌 됐든 북한이 자신들 안보문제의 근간이 미국에 원인이 있는 것이며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한 우리는 미국과의 관계를 생각할 때 앞으로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북한과 미국과 본격 대화를 시작하고 관계를 만들어 나가는 장면을 항상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볼 때 전략적 자율성은 이름은 그럴 듯 하지만 실제 성사 가능성은 그다지 커 보이지도 않다.

게다가 앞으로 상당한 기간 동안, 적어도 30년 이상은 핵위협을 보유한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데 우리가 독자적 핵억제력을 갖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도 핵을 보유하거나 적어도 핵잠재력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그건 결코 답이 될 수 없다.

미국이 흔들린다고 우리가 미국의 적 또는 최소한 미국의 비우호국으로 돌아서면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뿐 아니라 국제사회 어느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선택이다.


미국이 거래하니까 우리도 거래하자는 주장도 나올 수 있다. '혈맹(Forged in Blood)'이니, '우리 간에 빛이 새어 나갈 틈조차 없다(No Daylight between Us)'느니 '같이 갑시다(We Go Together)'라느니 '핵심축(Linchpin)' 같은 얘기 다 쓸데없다는 거라 치부하자는 거다.

미국이 비즈니스 하자고 하니 우리도 비즈니스 하자고 하는 거다.

그러나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정서적으로 잘 울림이 없다.

누군가는 광화문 네거리에서 성조기와 태극기를 (때로는 다윗의 깃발까지) 흔들면서 미국 하자는 대로 하라고 떠들고 ‘우리가 미국한테 그러면 안 된다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질 것 같다.

‘우리가 남이가 ‘ 하면서 말이다.

다른 쪽에서는 미국 떠나라는 소리가 드높아지고 종국에는 국론분열이니 우리가 이래선 안된다느니 하는 핵심에서 벗어난 논쟁이 차분한 고민을 덮어 버릴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최근에는 미국이 너무하다는 목소리가 미국만을 중시하던 보수적인 언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들리기 시작한다.

미국이 관세를 무기로 터무니없이 한국에 투자를 강요하거나, 이민자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무고한 우리 국민을 대거 구금하는 상황도 발생하니 더 이상은 미국을 곱게만 볼 수 없다.

드러내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용암처럼 땅 밑에서 부글거리는 게 느껴질 때도 있다.

앞으로 미국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많아지고 강해질 수도 있겠다.

그래도 지금 당장 냉정하게만 미국과의 관계를 끌어나갈 수는 없다.

미국은 여전히 우리한테 너무나 중요하다.


다양한 연대의 필요성

비슷한 처지의 국가들끼리 힘을 모아 보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그린란드를 두고 협박을 받은 유럽국가들은 정신이 번쩍 든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제 1,2차 세계대전의 트라우마에서 빠져나와서 (미국 없이) 독자적으로 전쟁을 할 능력을 갖춘 국가가 되자는 소리도 들렸다.

미국으로부터 조롱받으며 굽신거리기만 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우리도 힘을 보태겠다고 하면 많은 나라들이 환영할 것 같긴 하다.



지난 1월 다보스 포럼에서 Mark Carney 캐나다 총리는 길게는 2차 대전 이후 짫게는 1990년대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된 이후 세계 질서를 형성하는 데 강대국이 수행해 온 역할과 그러면서도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법과 규칙을 어기면서 보여준 위선 문제를 냉철하고 설득력 있게 지적했다.

더불어 강대국들이 보여준 위압과 협박에 대해 쉽게 굴복하며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 안주하려는 국가들의 모습을 아프게 지적한다.


카니 총리는 그러한 현실 지적에 그치지 않고 이제 중견 국가들은 달라진 국제현실, 역치를 넘어선 강대국들의 압박과 그들만의 논리를 넘어서서 국제 규범을 다시 수립하고, 모두를 위한 질서를 회복하며 다자간 협력을 통해 공동선을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다.

캐나다가 그런 노력을 선도하고 있다고 한다.


무척 매력적으로 들리는 연설이었다.

우리나라 국력이 세계 6위라는 얘기도 있던데 명실상부한 중견국으로서 새겨들을만한 주장이었다.

미국을 외면하고 다른 나라를 찾을 수 없지만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데 다른 나라와 좀 더 얘기를 많이 나누고 함께 답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우리가 앞서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깃발을 들고 나설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는 분야도 많다.

AI 규범을 만드는 걸 선도하고 첨단 기술 분야 협력도 앞서 나가고자 한다.

핵심광물공급망 논의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고 공급망 안정과 경제안보를 위한 협력도 주도한다.

미국의 무차별적인 관세부과에 맞서 우리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Comprehensive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Pacific Partnership)' 가입을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다.

옳은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전문가 분은 '동맹을 강화하고 동시에 힘을 키우며 그걸 토대로 다층적 연대망을 구축'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좋은 말이다.

만병통치약 처럼 필요한게 다 들어가 있다.

동맹도, 자강도, 다변화도 모두 말이다.

외교는 결국 그런 거다. 뭐든 다 잘해야 한다. [6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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