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의 계산기, 방위비 협상의 교훈

미국 우선주의'는 변하지 않는다.

by 백제웅

"바뀐 것은 대통령뿐이요, 미국의 국익은 달라진 것이 없다. 세상에 돈 더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2021년의 협정은 바이든 정부에서 체결되었지만, 그 내용은 트럼프 정부에서 협상한 내용이 주로 반영된 것이다."


어른들이 사라진 2기 트럼프: '충성심'이 지배하는 백악관


2017년 출범한 트럼프 1기는 혼란과 불확실로 미국과 세계를 뒤흔들다가 2020년부터는 코로나 팬데믹을 맞아 위기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결과로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지지기반을 확보해 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겠다.

바이든은 ‘더 나은 상태로 다시 건설하겠다(Build Back Better)'’라는 구호로 세계무대에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되돌리고 미국의 기여를 증가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런 노력도 미국을 과거의 모습으로 돌리지는 못했다.

오히려, 바이든의 정책은 세련된 방식으로 트럼프와 같은 방향을 지향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급격한 인플레이션 등 팬데믹 때 침체된 경제를 되살리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발생한 부작용이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그 결과로 미 국민들의 외면을 받은 탓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미 국민들은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기를 그리워하고 그때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돌아온 트럼프는 거침이 없다.

그래도 트럼프 1기에는 어른들(elders)로 불리는 소위 공화당의 보수 엘리트들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서 적절한 견제와 균형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그나마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의 제도와 법규 내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도록 유도하는 노력은 있었다.

그렇지만 2기 트럼프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를 구성하는 관료 또는 보좌관을 임명하는데 본인에 대한 충성도를 제 일 번 척도로 평가하고 이후에는 본인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구호에 얼마나 부합하는 지를 두 번째 기준으로 삼은 듯하다.

트럼프에 발탁되고자 하는 지금 미국 정부 인사들은 때로는 트럼프 대통령보다 더 극단적인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는다.

더 과격해 보이는 것이 트럼프에게 만족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들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트럼프 대통령만큼 예측불가능 하고 전 세계를 놀라게 할 행동을 하며, 서슴지 않고 다른 나라 지도자, 정적, 그 외에 누구든 무엇이든 본인 내키는 대로 공격하는 글을 SNS에 올리는 사람은 없긴 하다.


Truth Social과 FAFO: 예측 불가능이 전략이 된 시대


이제 트럼프는 우리 모두가 본 적 없는 세상을 만들고 있다.

국제문제에 관심이 있고 소위 외교. 안보 분야 업무에 종사하고 있는 정부 관련, 언론인, 학자, 민간 전문가들은 이제 매일 트럼프 대통령의 SNS 그것도 자신이 만든 "Truth Social" 앱에 올리는 메시지를 읽으며 충격을 받고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며 어떻게 분석하고 공식적으로 대외에 설명할지 올바른 언어를 찾아내느라 고민하며 대응방법을 만드느라 전전긍긍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은 누가 뭐래도 아직까지는 그리고 당분간은 전 세계에서 가장 힘이 세고 영향력이 큰 자리이기 때문이다.


이제 많은 나라들이 달라진 모습의 미국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미국과 부딪치는 모습을 보이는 나라도 있고 적극적으로 미국과 타협하려는 나라도 있다.

때로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려 하다가도 결국 미국과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처음에는 강경한 입장을 보이다가 처음 내세운 입장이 실현가능하지 않거나 부작용이 클 경우 쉽게 입장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 트럼프는 언제나 겁먹고 물러선다)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었다.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린란드를 둘러싸고 유럽 국가들과 갈등을 빚을 때는 본인 SNS에 FAFO(F*** Around and Find Out: 까불다 무슨 일 생기는지 한번 해보든가)라고 올리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이 모든 예측불가능하고 불안한 상황이 우리 모두의 삶과 복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 건 사실이다. 매일 그의 말과 행동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피곤하고 지친다. 이러다가 정말 앞으로 3년 안에 더 큰일이 생길까 걱정하느라 기가 빨리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별 일 없이 앞으로 3년이 지나가기만 바라야 하는 걸까?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미국은 다시 돌아온 모습을 보이게 될 수 있을까?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 임기가 끝났다고 해서 90년대 이후 아니면 가깝게는 오바마 행정부 당시의 미국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선도하고, 국제법과 규범에 맞는 자유무역질서를 존중하며, 인권을 증진하고 글로벌 사우스 국가들과의 협력을 증진하기 위해서 개발 분야의 협력을 이끌어 가며, 핵 군축과 비확산을 위한 노력을 이끌면서 평화와 안보를 수호하는, 미국 원래 그대로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바이든의 '세련된' 국익 추구: 중산층을 위한 외교의 민낯


트럼프 대통령 1기와 2기 임기 사이에 4년간 미국을 올바른 방향을 이끌려고 최선을 다했고 일정정도 성과를 거두기도 했던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대외 정책 슬로건은 '중산층을 위한 외교정책(A Foreign Policy for the Middle Class)이었다.

미국 외교가 중산층을 위해, 구체적으로 일자리와 소득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추진될 거라고 읽혔다.

부드럽고 세련되게 들릴 뿐 트럼프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주안점과 수단, 정책 방향이 다를 뿐 미국이 미국인을 위한 외교를 하겠다는 것이었다.


2021년 방위비분담금협정의 사례


바이든 정부 때 미국과 우리나라가 합의한 주한미군 주둔비용 지원을 위한 방위비분담금협정(SMA) 내용을 봐도 미국이 자국의 이익극대화가 항상 목표라는 점이 명확해 보인다.

2017년 트럼프 1기 취임 이전에도 우리나라는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지원하고 있었고 매년 일정한 정도로 지원비용이 상승하고 있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고 나서는 큰 비용을 우리나라한테 요구하였다.

기존에 우리가 부담하던 비용을 다섯 배 올려서 매년 약 50억 불을 요구한 것이다.

2019년부터 시작된 협상은 난항을 겪었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사태도 발생하면서 협상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그런 와중에 2020년 대선이 치러지고 바이든 대통령이 취임하였다.

우리 정부는 바이든이 취임하자마자 곧바로 협상을 다시 시작해서 2021년 3월 최종 합의에 이르게 된다.

2019, 20년 동일한 금액으로 부담하던 연 1조 839억 원에서 약 13% 오른 금액으로 말이다.

거기 더해서 협정 유효기간 중에는 매년 우리나라의 국방비 증액비율만큼 분담금도 증액해 주기로 하였다.

첫 번째 해 13% 올려주기로 한 것은 과거 사례와 비교해 보면 상당히 높은 금액을 올려주기로 한 것이다.

자칫 '우리가 봉이냐'는 비판을 들을 소지가 있는 액수이다.

매년 증액 비율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SMA 체결 사례를 보면 우리나라가 매년 국방비 증액률에 맞춰 분담금을 증액해 준 적이 없다.

오히려 협정기간(대략 5~6년) 동안 매년 우리나라 물가 상승률에 맞춰 인상해 주기로 함으로써 '사실상 동결'을 관철해 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21년 합의된 협정에는 매년 4~8%가량인 국방비 증액률과 맞춰서 매년 분담금을 올려주기로 함으로써 매년 큰 액수의 분담금을 더 미 측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상식적이고 합리적이며 동맹을 중시하고 국가 간 협력에 대한 이해가 높을 것 같은 바이든 정부가 들어왔는데 오히려 왜 우리나라는 더욱 많은 비용을 미국에 지불하게 된 것일까?

우리가 협상을 잘못한 걸까?


협상이 마무리되던 2021년 초에는 이전 협정의 기한이 2019년 말에 만료되어 협정 공백상태가 발생한 상황이었다.

우리 분담금 지연이 불가능하게 되어 (실제 뭐가 문제였는지까지 거론할 수는 없지만) 주한미군 주둔 여건에 문제가 발생하고 미 정부로부터 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로 주한미군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들이 월급을 받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우리 국민의 생계가 달린 문제가 된 것이다.

우리 정부도 서둘러 협상을 마무리지어야 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당시 우리 정부와 협상단이 일을 빨리 마무리하려고 노력했을 거라 보인다.


우리 입장을 좀 더 강하게 관철시키려 노력하지 못하고 타협에 이른 것이다.

그보다 중요한 이유는 사실상 구체적 협상의 대부분이 트럼프 대통령 시기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하에서 터무니없는 대통령의 지침을 가지고 온 미 대표단이 도무지 우리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맹국인 미국과의 협상에서, 그것도 한반도 안보에 기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주한미군 주둔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에서 양측이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모습은 우리 정부에게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과거보다는 후한 제안으로 미 측을 설득하려고 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 정부하에서는 이마저도 해결을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통령은 바뀌어도 미국의 계산기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다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제시한 조건은 이미 미 정부 실무자의 손에 들어가 있었다. 그들이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우리 정부에 대해 갑자기 관대해졌을까?

겸손한 태도로 돌변해서 분담금을 낮추는 논의를 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럴 리 만무하다.

바뀐 것은 대통령뿐이요, 미 국익이 달라진 건 없다.

세상에 돈 더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그렇다 보니 2021년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은 바이든 정부하에서 체결되었지만 트럼프 정부하의 모습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게 바이든 정부가 들어왔다고 해도 그리고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 이후 어느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목표를 추구하는 방식이 상식적, 합리적이고 타국을 대하는 태도가 예의를 갖추게 될 것이라 기대할 수 있을 뿐이지 근본적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대외적 입장이 달라질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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