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년의 회귀, 고립주의는 미국의 본능이다

세계화의 환상이 깨진 자리, 250년 고립주의 본능이 깨어나다

by 백제웅

"트럼프는 갑자기 나타난 돌연변이가 아니다. 그는 세계화의 풍요에서 소외된 미 중산층의 분노를 동력 삼아, 미국이 가진 가장 오래된 본능인 '고립주의'의 빗장을 다시 연 인물이다."


전통적 고립주의와 '선의의 리더'의 등장


올해로 탄생 250년을 맞은 미국이 처음부터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국가로 활발한 외교활동을 벌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대륙 미국은 충분히 넓었고 자원도 풍부했다.

인근 국가와 관계를 맺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구대륙 유럽에서 일어나는 불안정하고 골치 아픈 상황에 말려들기를 원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굳이 주변국과 관계를 가진다고 해도 Western Hemisphere 즉 서반구로 불리는 아메리카 대륙 내에서 그들의 이익을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바깥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신경 끄고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된다' 소위 말하는 '고립주의' 또는 '먼로주의'다.


그러다가 1,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자국의 안보와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는 국제사회를 이끌어야 한다는 자신의 역할을 인식하게 시작한다.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 제1의 강대국으로 등장하게 된 미국은 과거 고립주의를 탈피, 국제사회에서 '선의의 리더(benign leader)'로서 자본주의 세계를 이끌고 국제법과 국가 간 협력을 바탕으로 인류의 협력을 이끌어 왔다.

1980년대 말까지는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세력과의 대립에서 승리를 위해 앞장섰다고도 할 수 있으나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에는 명실상부하게 유일한 초강대국으로서 법치와 인권, 평등과 자유의 기수로서 국가 간 협력을 이끌고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체제를 전 세계로 전파해서 인류의 번영을 이끌고자 했다.



장밋빛 90년대와 중국의 부상


1990년대 초 국제사회의 주된 화두는 세계화였다.

공산블록의 붕괴, 무역자유화를 위한 다자협상(우루과이 라운드)의 타결과 이어지는 세계무역기구(WTO) 설립,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대표되는 양자, 지역 자유무역 협정의 체결은 적어도 경제적으로는 세계가 통합되는 길로 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고 고전적 신자유주의가 주창하는 자유롭고 번영된 미래가 금방이라도 눈앞에 다가올 것처럼 기대를 가지게 했다.

구소련 블록에 속했던 국가들도 빠르게 자유주의 진영에 합류하고, 아주 소수의 국가를 제외하면 더 이상 사회주의를 기치로 내건 국가가 없게 되었다.


그즈음 중국도 개방정책을 통해 세계화의 대열에 합류하게 된다.

1992년이 되면 Deng Xiaoping 휘하의 중국은 급격히 개혁개방의 속도를 높이면서 세계화에 동참하게 된다.

미국도 이런 변화 움직임에 호응해서 중국을 자유진영으로 받아들이고자 하는 정책을 적극 추진한다.

1980년대부터 중국에 매년 최혜국 대우를 부여하면서 중국에 미국시장을 개방해 왔고 중국을 국제무역체제에 편입시키려는 노력을 꾸준히 전개하면서 마침내 2001년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게 된다.


압도적 군사력을 앞세운 미국이 경찰국가로서 전 세계 안보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미러가 핵무기를 감축하기 위한 논의를 진행하는 가운데 유엔이 국가들 간의 이해를 조율하는 다자체제의 핵심기구로 작동하면서 이제 세계는 평화롭고 안전하게 번영과 행복의 길로 가는 과정만 남아 있을 것 같았다.



테러, 금융위기, 그리고 소외된 노동자


하지만, 이상과는 다르게 세계화가 모든 사람을 안전하고 잘 살도록 만들어 주지는 못했다.

현실은 생각보다 아름답지 않았다.

국가 간의 전쟁은 사라졌다고 하나 테러가 또 다른 안보 위협이 되었고 급기야 2001년에는 9.11 테러가 발생하여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충격과 공포에 몰아넣게 되었다.


세계화가 진행되면서 값비싼 상품 수입에 밀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와 같이 투기적 국제자본에 의해 나라 경제가 휘청이고 수많은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자유무역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이미 90년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해서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각료회의가 전 세계에서 모여든 반자유주의 시위세력에 의해 취소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당시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는 세계화를 추구함으로써 번영을 추구하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부의 재분배를 통한 공정 평등한 삶의 질 개선을 추구했어야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미 경제를 지탱해 왔던 전통적 제조업 노동자들은 빈곤과 핍박을 가져온 민주당에 실망감을 표하기 시작했으며, 비난의 화살을 엉뚱한 곳으로 돌려 새롭게 미국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에게 노골적 적대감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 미 정치지형에서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이었던 노동자 계층이 공화당 지지로 돌아서게 된 데는 이러한 세계화 정책에서 소외된 게 주된 이유 중 하나였다.


2008년에 이르면 급기야 미국도 투기적 자본시장이 폭주하고 정부도 시장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하는 바람에 전 세계 규모의 금융위기를 맞게 된다.

아마도 미 국민은 자신들의 어려움이 뼈저리게 느껴졌을 것 같다.

더 이상은 미국이 자신들의 이익을 접어두고 지구 반대편 다른 나라 걱정을 하고 있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본다.


경쟁자가 된 중국과 '테러와의 전쟁'의 피로


중국도 그다지 보탬이 되지 않았다.

시작부터 중국이 자유무역 체제가 주는 이득은 모두 취하고 자신들이 따라야 하는 규범과 의무는 무시한다는 의심이 있었다.

저작권은 무시되기 일쑤였고, 값이 싼 위조 상품을 만든다는 불만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한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도저히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으로 중국을 앞서 나갈 수 없게 된다.

굴기의 모습도 보인다. 세계의 제조업 공장을 하던 중국이 첨단 기술 산업 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초반에는 산업스파이를 의심하기도 했는데 국가자본이 확보되고 나서는 적극적으로 인재를 영입해서 앞서 나가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볼 때 중국은 더 이상 협력대상이 아니고 경쟁자로 부상했다.

급기야 최근에는 미국과 중국을 양대 강국으로 부르는 G2라는 용어도 등장하였다.


2000년대를 9.11 테러로 시작해서 임기 내내 '테러와의 전쟁'을 빌미로 전쟁을 벌여온 부시 행정부는 잇단 실정과 연이어 찾아온 2008년 경제위기로 인기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때마침 혜성과 같이 등장한 정치 신예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미국의 가치를 되돌리고 적극적으로 국제규범과 제도를 수립하며 국가 간 협력을 통해서 평화와 번영을 증진하고자 했다.

금융위기의 피해를 극복하고 미 중산층을 되살리려 했다.


바닥 민심이 선택한 직설의 정치, 트럼프


그렇지만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는 것처럼 보였던 오바마 행정부의 노력은 미 국민들의 마음을 완전히 되돌리는데 실패했다.

미 국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이 모든 것이 미국을 이용하려는 다른 나라들과 미국에 유입되는 불법 이민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 틈을 타고 든 것이 트럼프였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로 정적을 비난하고 끊임없이 사회관계소통망(SNS)으로 뉴스를 양산해 낸다.

사실관계에 근거하고 있는지, 실제로 정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인지 의심하게 했던 그의 날 것 그대로의 언어는 사실 점잖을 빼느라 그리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보여야 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말 못 하고 있던 수많은 국민들이 하고 싶었던 얘기였던 것이다.


특히 평생 열심히 일만 하면 윤택한 중년층의 삶이 보장되고 다음 세대에게는 더 나은 사회 경제적 상황을 물려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과거 제조업 중심지의 전통적 미 노동자 계층은 자기들의 어려움을 직설적으로 대변해 주는 트럼프가 마음에 들 수밖에 없었나 보다.

수많은 정치 전문가들도 학자들도 언론들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던 바닥 민심이 트럼프를 통해 분출되었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일각에서 '알고 보면 트럼프가 지도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여러 가지 주장들은 지지자들에게 어떤 감흥도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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