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게, 행복하지가 않아'
'불행하다는 뜻이야?'
'그런 것 같아.'
결혼한 지 두 달 정도 지난 어느 날,
요즘 왜 기분이 안 좋냐는 나의 채근에 그가 마지못해서 내뱉었던 말.
남편의 눈에 띄게 어두운 얼굴을 그저 '회사가 바쁘고 일이 많아서', 혹은 '신혼여행이 끝나서 아쉬워서'라고 읽었던 내 독해가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스물세 살에 대학 캠퍼스에서 만나 만 11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함께 해온 시간에 안도감을 느끼며 기대어 있기만 하느라 그의 얼굴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던 것일까. 내가 눈치채지 못했던 그의 불행을 조우한 후에 생애주기 과업이 명령하는 대로 33세에 제도권 결혼에 착실하게 순응하여 안착했다는 안정감은 박살 났다.
그가 지속적인 우울감에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보다 지금까지는 그를 제대로 몰랐다는 충격이 더 컸다.
과연 나는 그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맞을까. 내가 알고 있는 그와 진짜 그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를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 오히려 그를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가 그동안 좋아했던 그의 유쾌함, 긍정성, 성실함, 몰입력, 책임감, 리더십.
그리고 새롭게 알게 된 그의 우울감과 무력감.
한 해 꼬박 그를 알아가는데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조금 더 에너지를 들여서 세심하게 살피는 일 년쯤의 시간이
지금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 아닐까?
나는 남편의 불행에 관하여,
그리고 더 나아가 결혼생활에서 느끼는 불행감에 대한 지리멸렬한 이야기를 쓸 것이다.
누가 이런 우중충하고 침울한 이야기에 관심이 있을까
어쩌면 그저 그런 일기장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떤 형식이라도, 결과가 어떻게 나더라도
글쓰기는 조금 더 객관적이고 명징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믿는다.
지금까지 무한한 인내심을 가지고 나를 도왔던 건 늘 글쓰기였다.
나는 남편의 불행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
그간의 방대한 데이터를 모두 삭제하고, 우리의 공통점은 지구인이라는 것.
이 지점에서 나는 우리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