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을때의 불행과 결혼생활에서 오는 불행은 색깔이 다른 불행같다.
전자는 마일드한 컬러라면 후자는 짙고 두터워서 도무지 희석이 어려운 느낌이랄까!
남편이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고 불행감을 느끼고 있으니
같이 사는 나도 당연히 영향을 받고 그에 못지 않은 불행감을 느낀다.
그는 신경이 예민해졌다. 내가 봤을때 별 것도 아닌 사소한 일.
그의 이전 히스토리를 생각해보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을 며칠을 곱씹고 분개한다.
쉬는 날, 전선정리를 좀 해주면 안되겠냐는 내 부탁에
왜 자기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너의 맘대로 빼앗으려하냐며 벌컥 화를 냈고
내 블로그에는 관심도 없던 사람이 자기의 체면이 실추될 수 있는 사진을 올렸다며
삼일 내내 입을 닫고 침묵의 항거를 했다.
그냥 전선정리는 나중에 하겠다고 하거나, 사진을 삭제해달라고 말하면 끝날 일이
큰 싸움이 되고 이는 우리 모두에게 상처가 됐다.
미안하다고, 자기가 과민한게 정신이 무너진 탓인 것 같다며 사과는 한다.
나는 반드시 오늘은 이 부분에 대해 대화를 해야지 벼르며 퇴근하고 집에서 기다리는데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은 이미 제대로 대화할 에너지가 없다.
아니, 대화할 마음이 없다.
바쁜 평일 말고 주말에 좋은 곳으로 여행가서, 혹은 맛있는 것을 먹으며
편안한 상태에서 대화를 해야겠다 생각한 나는 나름대로 시도했다.
허나 대화해야하는 순간이 오면 남편은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일관한다.
자신의 우울에 관해 생각하고 싶지 않으니 지금 대화하고 싶지 않다.
갈등상황이 생기면 그날 하루안에 풀거나 대화를 해야했던 사람이
어쩌다가 이렇게 지독한 회피형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과묵한 사람은 원래부터 과묵한게 아니라
오랜 시간동안 자기 생각을 말 해왔으나 제대로 수용받은 경험, 환대받은 경험이 별로 없기때문에
사람에게 기대하지 않아서 과묵한 것일 수 있다고.
어쩌면 내 남편은 그동안 나와의 대화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내가 수용해준다는 느낌,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받거나
진정으로 위로받은 경험이 적어서 이제는 내게 아무 기대가 없는걸까?
곰곰히 생각해보면 남편이 이렇게 된게 다 나 때문인건가 하는 자책감에 든다.
그는 전직을 위해 오랜시간 공부하여 늦은 나이에 재취업한 케이스다.
장기연애한 나와 결혼해야된다는 압박감 때문에 일단 빨리 자리잡아야한다는 조급함이 있었다.
그동안 그 누구보다 정신없이 달리며 분주하게 지내느라 자신에 대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이 없었던 것 아닐까
하지만 이런 대안도 근거도 없는 맹목적인 자책은 우리에게 좋지 않다는 것도 안다.
여하튼, 나의 기록이 유의미해지려면 대화를 해서 남편을 알아가야 하는데 벌써부터 난항이다.
우리는 대화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