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를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덧 대기업 8년 차가 되어버렸다. 그것도 같은 회사에서 쭉 말이다.친구들을 만나면 의례 듣는 말은 "너 아직도 그 회사 다니고 있어?"라는 말이다.
흔히 말하는 속칭 "대이직 시대"라고 불리는 이직 시장에서 그동안 헤드헌터나 인사를 통해서 30군데가 넘는 회사의 잡 오퍼를 받아왔지만 나름 한 곳에서 잘 버텨왔다.
주위 친구들만 봐도 같은 연차인데 3~4번째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도 있고, 물론 같이 회사를 다니고 있는 동기들도 있다. 어떤 것이 옳다고는 사실 생각지 않는다. 다만, 친구들 저마다 생각하는 커리어가 달랐던지 이것저것 도전을 하다 보니또래 친구들의 직업 스펙트럼이 많이 넓어졌다.
대기업 사무직, 연구원뿐만 아니라 사업가, 교수, 변호사, 외교관, 회계사, 세무사, 컨설턴트, 증권가 직원, 정치인, 스타트업 등등 나름 다양한 직업들을 갖고 나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보면서 같은 고등학교,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아왔는데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족이 조금 길었지만, 회사에서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더 빨리 지나갔다.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하기에는, 나름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그리고 사회에서도 치열하게 노력하였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상대적이기 때문에 누군가는 별로 안 하였다고 생각이 될 수도, 누군가는 열심히 했다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과적으로 본인이 만족하나 안 하나의 문제가 제일 우선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대기업 그중에서도 공채의 장점은 있다고 생각이 된다. 다양한 부서에 동기들이 있는 것은 둘째로 두고, 직무의 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나름 장점인 것 같다.
경력직으로 회사들을 넘어가다 보면 아무래도 기존에 하던 직무 경험들을 바탕으로 업무 연속성이나 확장성이 있다.반대로, 해당 직무를 하다가 다른 직무를 경험하고 싶다고 하면, 이직을 할 때 경력을 인정 못 받고 깎이거나, 경력직 이후에 직무들을 바꾸는 것이 다소 어려워 보인다. (물론 내가 경험해 보지는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보인다는 점은 감안해주었으면 한다.)
물론 대기업에서도 직무를 변경하는 것은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부순환 제도들을 둬서 입사 직무와 다른 직무들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해주곤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직무와 연관성이 있는 범위 안에서 변경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기획직무와 해외영업직무 둘 다 경험을 하였다. 기획직무라고 해도 해외 업무에 대한 기획을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해외영업이랑 별다를 게 없다고 보일 수는 있지만. 그래도 엄연히 기준점은 다른 것 같다. 그리고 본부단위가 바뀌는 것은 새로운 직장이 바뀌는 것과 비슷한 정신력을 요한다. 문화도 다르고 업무스타일도 다르고, 친하게 지내야 하는 동료들도 바뀌니 말이다.
기획 그리고 해외영업 둘다를 해보다 보니 차이점은 아무래도 시점의 차이인 것 같다. 기획 업무를 할 때는 짧게는 1년에서 2~3년 정도 미래에 대한 시장들을 예측하고, 시장성을 분석하고, 시장에 대한 기획들을 하였다.
영업 같은 경우에는 연간 단위의 사업계획이 있고, 월별로 계획이 있어서 그 숫자들의 변동성에 대해서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처럼 보인다. 매달 마감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분기마감, 반기마감, 연마감을 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좀 더 업무를 하다가 재무나 마케팅을 하고 싶으면 또 해당 직무로 바꿀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그런 만큼 궁극적으로는 어떤 커리어를 그리고 있는지 잘 생각은 해봐야 하긴 하지만, 나름 이것저것 일들을 하면서 쌓아간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다.
이제 주니어라고 할 수 있는 연차가 지나버렸다. 앞으로 20년~30년 더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가려면 많은 지식들, 많은 업무들, 인간관계들을 거쳐가야 할 수밖에 없다. 당장 내일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한치 모르는 인생이지만 조금씩 나 아가다 보면 언젠가 좋은 일들이 있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