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군 Nov 11. 2017

셋째날_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흔적을 찾아 떠나다 2탄

나가사키 원폭자료관, 평화공원 그리고 낙하 중심지

자료관을 둘러볼수록 상상 이상으로 참담했다



 나가사키 원폭자료관에서 보았던 전시품들은 참담함 그 자체였다. 책에서 보았을 때는 단순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져서 사상자가 어느 정도 발생하였다.라는 정도로만 인지하고 있었으나, 자료관에서 보이는 자료들은 지옥의 현세화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지도부의 결정으로 인해서 이렇게 많은 민중들이 고통을 받으면서 죽어가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민간인의 피해가 지나치게 커 보였다. 물론 명분이 있던 나가사키 원폭 투하였을지는 모르겠지만, 피해가 너무 컸다. 다시 한번 지도부의 선택이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에 대해서 생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누군가는 시대적인 상황이 지도부가 전쟁을 발발시키고 이런 문제를 야기했다고 하지만, 결국엔 선택은 지도부들이 하였기에 잘못 또한 지도부가 갖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요즘에 부쩍 핵폭탄이 떨어진 후 대피 방안이나 기타 내용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방사선이나 열선 등 각종 폭풍과 지진들에 의해서 많은 피해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한 당시 나가사키의 건물들은 목조건물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에 따른 피해가 더 극심했다. 현재는 대부분 콘크리트 재질로 지어져서 이때만큼 집들이 내려앉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되나 (피폭 중심지 제외) 인구밀도를 보았을 때 그 피해가 결코 적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핵폭탄 경보를 받은 후 건물 지하 중에서도 기둥 주변에서 며칠 동안 있어야지 핵폭탄의 여파를 어느 정도 견뎌내면서 피난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자세한 사항은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보는 것을 추천한다.


손뼈와 유리라는 전시물. 폭심지 부근에서 발견된 것으로 손뼈와 유리가 같이 녹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핵폭탄이 터지면서 발생했던 열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라도 갈 수 있는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핵폭탄의 위험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지를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폭풍의 검증

  자료관의 전시물들을 보니 핵폭탄이 떨어진 후의 모습들이 상상이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번쩍 하더니 땅이 흔들리고, 낙하 중심지로부터 반경 1km 지역에 초당 170m의 아주 강력한 속도로 폭풍이 휩쓸고 지나갔다고 한다. 보통 초대형 자연 태풍들이 초당 80m 정도라고 하니 핵폭탄이 떨어진 후 발생한 폭풍이 얼마나 강력한지 예상이 갈 것으로 생각이 된다. 폭풍이 근처를 휩쓸면서 1평방미터에 6.7~10톤과 맞먹는 압력이 주어지면서 주변의 건물들이 날아가거나 부서져갔다.  또한 이는 단순히 폭풍이 분 것뿐만 아니라, 열선이나 방사선 등이 추가적으로 나오면서 살아있는 지옥으로 점차적으로 변해갔다.



  방사선에 의한 인체의 피해라는 내용인데. 원폭을 통해서 나오는 방사선은 인체 속으로 침부를 해서 여러 가지 세포를 파괴한다고 한다. 얼마나 피폭이 되었는가에 따라서 손상은 다르지만, 상처가 없는데도 피폭지 1킬로미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망했다고 한다. 혹시나 피폭을 당하고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 있는 후유증 들은 상당 했다고 한다.



  나가사키 원폭으로 인해서 발생한 외국인 피해자 수 한국인이 13,000~14,000명 정도라고 초기에 발표했으나 1991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수호회 원폭 조전인 5집 수록에 된 내용으로는 22,198명이라고 한다.

중국인은 650명, 이외의 외국인들은 200명 정도라고 한다. 일제강점기 시대 때 나가사키에서 일을 했던 많은 한국인들이 원폭으로 인해서 희생당했다.



  이러한 피해에 대한 내용 외에도 미사일들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고, 내가 방문했을 때는 원폭자료관 수장 자료전도 따로 진행을 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일본 정치를 공부하거나 동아시아 정치를 공부하는 사람 또는 정치리더들은 나가사키 원폭 자료관을 방문해서, 원폭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원폭 자료관에서 나와서 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은. 날씨는 더웠지만 길들은 깔끔하고 운치가 있었다.



  히로시마 원폭 돔 근처에 있던 것처럼. 나가사키에도 "원폭순난자명봉안"이라고 적혀있었다.

원폭으로 인해서 돌아가신 분들을 기리는 공간이라고 해석하면 될 듯하다.


  게다가 당시 목이 마르다면서 죽어갔던 사람들을 기원하는 뜻인지. 그 넋을 기리는 것인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두 곳 다 물병이 놓여 있었다. 조금이나마 희생당한 영혼들이 위로를 받으면 좋겠다는

방문자들의 뜻이 아닐까 싶다.



  원자폭탄 낙하 중심지 위에 이렇게 글을 써놓았다. 폭탄이 떨어진 지 70년이 더 지난 이후 방문했던 나가사키에서는 그 흔적이 거의 남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원자폭탄으로 인한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지가 곳곳에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찾아 나선 평화공원은 이름 그대로 평화로웠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 그리고 분수대는 아름답기까지 했다. 과거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곳 주변에 이러한 공간들이 생겨서 사람들이 방문을 할 수 있도록 구성을 해놓은 것 자체는 일본 사람들이 유독 잘하는 분야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원자폭탄에 대한 연구를 할 생각은 없지만, 2017년 한 해동안 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의 남겨진 부분들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아직 봐야 할 곳들도 많고, 생각해봐야 할 것들도 많이 있지만, 어느 정도 직접 체험을 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된다.


  다음 이야기에서는 직접 방문했던 군함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셋째날_ 나가사키 원자폭탄의 흔적을 찾아 떠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