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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12. 2020

운동을 시작하고 후회한 단 한 가지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또 먹어본다


내 운동의 역사는 헬스, 필라테스, 발레, 요가, 점핑 운동, 방송 댄스, 홈트레이닝을 거쳤다. 고등학생 때 축제를 준비하느라 과감하게 아침 헬스를 시작한 것이 첫 운동의 시작이다. 원래 운동을 즐기고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모든 운동을  길어봤자 3개월 내로 그만뒀다. 헬스는 고등학생이 운동할 시간이 없어서, 필테는 시험을 준비해야 해서, 발레는 같이 운동하는 아주머니들이 불편해서, 요가는 잠이 와서, 점핑 운동은 근력 운동이 없어서, 방송 댄스는 운동되는 느낌이 없어서(댄스부 출신인데 클럽 한 번 안 가봤냐고 은근히 비꼰 소리가 싫은 것도 추가) 홈트레이닝은 안 하면 그만이라서.. 정말 그럴싸한 핑계 혹은 이유를 대며 운동하기 싫은 마음을 합리화했다.


몸에 대한 무신경으로 인해 일 하다가 쓰러졌다.  쓰러진 그 날, 침대에 누웠는데 마음속에서  "운동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라고 다짐했다. 체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길어지는 술자리나 파티에서 노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상생활을 잘 버텨내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쓰러질 정도로 일했던 그 해는 마지막까지 과도한 업무량으로 인해 그 핑계를 구실 삼아 12월까지 운동을 하지 못했다. 혼자서 깨작깨작 홈트를 시작했지만 재미가 없어서 금방 그만두었고, 일 때문에 못 잔 잠을 자는 게 더 효율적이었다. 연말을 정리하며, 수많은 필라테스 센터 중에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센터로 갔다. 내가 운동을 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의지박약'이었기 때문에 운동하러 가기 쉽다는 생각이 가장 중요했다.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한 이유는 유일하게 아쉬움이 남았던 운동 이어서이다.


2020년 1월에 등록하여 이제 막 재미가 붙었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센터는 임시 휴강에 들어갔다. 집에서 하는 홈트는 안 하는 것보단 낫지만 제대로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마음에 안 들었다. 하루 종일 재택근무로 또 몸이 망가지는 것 같았다. 시작도 끝도 안 보이는 온라인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매일 받았고 아닌 척, 괜찮은 척했지만 기분은 늘 들쭉날쭉 이었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소강될 기세가 보이자 필라테스 원장님께 "언제부터 수업해요?"라며 여러 번 카톡을 보냈다. 운동을 하면 몸도 마음도, 생활도 나아질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이걸 후회할 줄 이야


간절한 만큼,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만큼, 그래도 예전에 재미를 느꼈던 운동인 것만큼 이번만큼은 핑계 없이 잘하고 싶었다. 조금 더 넓고 기구가 많은 센터를 포기하고 집 앞 7분 거리의 센터를 선택했으니 더욱이 핑계는 없어야 했다. 운동을 하고 나서의 그 고요한 쾌감은 운동을 몇 번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야 느낄 수 있었다. 세상 우아해 보이고 쉬워 보이는 필라테스는 막상 할 때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릴 정도로 힘들다. 하지만 몸에 어느 정도 운동이 붙고 나니 딱 한 가지 후회가 들었다. 운동을 '조금 더 일찍, 꾸준히 할 걸' 하는 후회이다.


'일찍'보다도 더 아쉬웠던 후회는 '꾸준히'였다.


2018년에 잠시 다닌 필라테스는 3개월 정도였는데 강사 선생님은 "다들 꼭 많이 늘 때쯤 그만두시더라고요."라고 했다. 이 말을 듣고 사람들이 운동을 오랫동안 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일주일에 2번, 3개월만 다닌 운동으로도 몸이 좋아질 수 있는데 재등록에 대한 금전적 부담이나 다른 중요한 생업의 일로 인해 가장 먼지 쉽게 버리는 선택지가 운동이라는 뜻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시험이 한 달 전이니, 이동시간과 운동시간을 합치면 대략 2시간이 소요되고 주 2회 총 4시간이 되는 운동시간을 포기했었다. 그동안 몸에 붙은 좋은 컨디션, 그리고 꾸준함을 포기한 후, 2년 뒤 다시 만난 운동에서 꾸준함이 없었던 것을 가장 후회했다.


재미없다고 안 하고, 퍼포먼스가 적다고 안 하고, 효과를 못 느껴서 안 하고, 불편한 사람이 싫어서 운동을 안 했던 내가 주 2회 하던 필라테스를 3회로 늘리고 운 좋게도 기본기를 너무 잘 알려주신 선생님을 만나 체력이 느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고 이제는 다양한 기구를 만지려고 센터를 옮겨서 이번 주엔 4번의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한다. 또한 지난주엔 휴가 기간을 이용해서 그동안 기록했던 필라테스 수업의 내용을 깔끔하게 정리해서 집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운동의 시퀀스를 만들고 프린트했다. 센터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날엔 A4 한 장에 정리한 내용을 따라 하기만 하면 집에서 운동이 가능하다.


프로 운동 포기러, 팔뚝에 힘 하나 없는 비실비실, 잠으로 때우는 체력을 가진 나라는 사람이 변했다. 필라테스 2개월 차엔 필라테스 강사직 준비를 제의받을 정도였다. 몸에 붙은 꾸준한 운동이 사라지면 갖가지 문제로 후회할까 봐, 또한 내 몸에 생긴 변화가 매우 긍정적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에 꾸준함을 포기할 일을 만들지 않을 예정이다. 고기도 꾸준히 먹어본 사람이 먹어보고, 운동도 꾸준히 해본 사람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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