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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Aug 16. 2020

바쁘면 밥 빠진다.

밥 먹으려고 밥벌이하다가 밥을 못 먹는 일

바쁘면 꼭 밥 안 먹더라     

4년 전 교육실습에서 동기로 만난 선생님이 바쁜 나를 두고 했던 말이다. '여자들은 바쁘면 꼭 밥 안 먹더라' 라며, 비단 여성만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 친구는 바쁘면 식사를 하지 않는 여성들을 많이 봤던지 점심시간에 빵을 먹던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날은 스승의 날이어서 내가 교육실습을 하던 학교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에 떨어진 교육청에 장학사로 계시는 은사님을 뵈러 갔던 날이었다. 그렇게 선생님을 뵙고 다시 학교로 돌아올 때쯤, 끼니로 때울 만한 빵과 요구르트 음료를 사서 실습실로 돌아왔다. 점심시간이 대략 15분가량 남았을 무렵,  선생님을 뵙고 엄청나게 좋은 표정과 기분으로 빵을 먹었지만 바쁘다 싶으면 밥 먹는 것을 미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나는 항상 바쁜 사람이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 내가 맨날 바쁘다고 하니까 '연예인' 이라며 놀리는 별명을 지어주고, 대학생 때는 친구들이 여름 여행을 다닐 때 나는 아르바이트가 바빠서 20대 초반이 할 수 있는 여유로운 추억이 많이 없었다. 24살부터는 대학 학점 채우느라, 대외 활동하느라, 마찬가지로 아르바이트하느라, 학과 간부 하느라, 임용 공부하느라 바빴고 20대 후반부터는 일하느라 바빴다. 그 와중에 자기 계발하겠다고 책은 책대로 읽고 운동도 별 걸 다 했지만 바쁜 와중에 챙기지 못한 게 규칙적인 식사이다. 특히나 수험생 일 때는 적절한 양의 식사를 하면 배가 더부룩하고 1시간이 지나면 너무 졸려서 일부로 양을 줄여서 먹었다. 이때부터 천천히 살이 빠지기 시작해서 더 이상 빠질 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강사 생활을 하고 나서 없던 살도 더 빠지고 있었다. 이 생활을 시작한 지 5개월 무렵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례식 때 나를 오랜만에 본 어른들은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라고 인사하셨다. 일하느라 힘들어서요,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저녁을 먹지 못한다는 게 문제였다. 일의 강도가 낮으면 오히려 저녁을 먹지 않는 것이 공복에 좋을지도 모르지만 주변 사람들이 혀를 찰 정도로 일단 일은 힘들다.        


오히려 바쁘면 배가 덜 고프다. 내가 가장 배고픈 저녁시간은 학생들의 정기 고사가 끝나고 원내가 조용하면 그때가 가장 배가 고프다. 여유로울수록 배가 고파서 차라리 여유롭지 않았으면 할 때도 많았다. 수험생 때는 공부하느라, 직장인이 되어서는 일하느라 안 그래도 바쁘게 사는데 바쁠수록 밥은 더 빠지고 있었다. 학원 선생님들은 야식 업체의 VVIP 손님이라고 불린다. 대부분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을 하고 수업하느라, 애들이랑 씨름하느라 허기진 배를 그제야 채우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그 시간에 그냥 멍 때리며 누워버린다. 피곤함이 과하면 오히려 잠이 오지 않듯, 밥을 먹을 때가 지나면 무언가를 먹기가 부담스러워진다. 퇴근 후 남은 집밥을 먹다가도 배가 조금만 채워지면 금방 먹다가 말았다. 요즘은 그마저도 못하고 있다.    

  


니 밥은 네가 알아서 챙겨 먹어야지.

중간에 간단하게 챙겨서라도 먹는 노력을 안 해본 게 아니다. 하지만 교무실에서 음식 냄새가 날까 봐 먹을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어 있다. 복사기가 빠르게 돌아가고,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업무가 펼쳐지는 곳에서 식사를 편하게 하는 건 쉽지 않다. 식사시간을 요구해보는 것도 안 해본 건 아니다. 하지만 대표자가 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방식과 시간표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그 틀을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바꾸는 것에는 한계가 있음을 한 번 싸우고 나서 뼈저리게 알았다. 재직 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반기를 들어본 일이었지만, 대화로 요구해도 안 되는 건 안된다. 바쁜 와중에 배가 고프면 적당히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한다. 


케이크이나 빵보다는 샌드위치를 먹고, 시럽이 든 음료보단 홍차나 탄산수를 마신다. 샐러드와 해산물을 좋아한다. 그나마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선호하지 않아서 버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바빠서 밥 잘 안 먹는 나는 편한 사람들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잘 먹는다. 친구들을 만나면 그 식당의 메뉴를 하나씩 다 시킨다. 인원수가 많아서 이기도 하지만, 내 친구들도 하나같이 ‘너희만 만나면 폭식하게 된다’라고 한다. 하루 종일 거의 두 끼 이상, 디저트까지 챙겨가며 배가 터지게 먹지만 다들 탈도 안 나고 다음날 컨디션이 최상인듯하다. 친구들과 나는 다른 친분 모임에서도 이 정도까지 먹는 건 아닌데, 유독 이 모임에서만 밥을 많이 먹게 된다고 입을 모은다. 여행지에서 유독 많이 먹게 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마음이 아닐까? 

   


친구들과 나는 부장님들과 식사를 하면 유독 빨리빨리 드시는 어른들이라 본인들은 양껏 밥을 먹지 못해도 부장님들이 수저를 놓으면 같이 놓게 되고, 갑작스럽게 밀려오는 업무에 먹던 밥을 치워두게 되고, 다시 밥을 먹으려니 어쩐지 입맛이 떨어지게 되는 순간을 토로한다. 그때 못 먹은 밥을 채우기라도 하는 듯 편한 사람들과는 여유 있게 많이 먹는 것 같다. 

 

밥벌이에 밥이 빠진다

턱에 살이 넘치던 통통한 나에게 어른들은 나이 들면 살 다 빠진다고 말했다. 그게 이런 뜻이었을까? 생업을 하며 산다는 것은 시작도, 멈춤도, 끝도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그래도 밥 잘 먹기 위해 밥벌이를 하고 사는데, 바쁘게 벌다 보니 밥을 못 먹는 일이 자연스러워진 게 딱히 반갑지는 않다. 썩 반갑지 않은 마음이지만, 내일 먹을 간식을 챙겨놔야 한다. 매일 먹을 일을 고민하고, 스스로를 위해 챙겨야 하는 것마저 고민이다. 그래도 어쩌겠나. 이런 순간이 있어야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밥시간을 보상받을 수 있다. 




# 묻는 말

독자님은 매 끼니를 챙기시는 편인가요.

바쁘게 일하느라 식사를 못 챙긴 경험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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