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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Sep 26. 2020

끝을 책임지는 사람이 괜찮은 어른이 된다

‘개와 늑대의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

유럽으로 가기 전 지도교수님께 크게 혼난 적이 있다. 논문 제출과 출국이 9월 말에 겹쳤는데 여름 방학 동안 아르바이트가 바빠 논문 탈고를 미룬 게 화근이었고, 4월에 한 번 마무리했다는 핑계로 안일하게 생각한 게 실수였다. 교정을 표시하던 붉은 펜 자국은 4월을 끝으로 멈췄고 교수님을 뵙는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급하게 고쳤지만 엉성하기 짝이 없었다. 내 눈에는 초벌구이가 끝난 삼겹살 같은 글이었으나 교수님 눈에는 채 익지도 않은 날 것의 고기가 접시에 올려진 꼴이었다. 


글도 글이지만 제출 마감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그날 나는 마무리에 성실과 책임을 다하지 않은 모습에 뼈가 가루가 되도록 혼이 났다. 덜 익은 글에 더 구워야 할 부위를 찾아 삼겹살 끝이 지글지글 굽는 것처럼 글을 익혔다. 제출을 끝내니 홀가분하긴 했으나 처음 같은 무게로 끝을 대하지 못한 쓰기 과정이 아쉬웠다. 연구실을 나서기 전 교수님의 아쉬운 토로가 생각났다. “처음도 끝도 모두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그게 책임감이다.”


비로소 어른이 될 때

시작은 누구에게나 흥미롭다. 새로운 기회가 주는 호기심, 성공적인 결과에 대한 상상 등 길을 가보지 않은 자의 설렘이 가득하다. 그러나 기회가 매력적일수록 내가 감당해야 할 책임감을 크게 가져야 한다. 처음 논문을 시작할 땐 새롭다는 자체로 즐거웠지만 신청서를 내는 순간부터 연구계획, 연구에 필요한 자료, 작성법, 교정, 재작성이 매우 지난했다. 내가 시작한 일에 끝을 맺기 위해선 책임감을 가져야 했다. 그러나 논문의 마침표를 찍는 행위 자체가 책임감의 전부는 아니었다. 여기서 포기할지 혹은 끝까지 마무리할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것, 그게 책임감의 진짜 이름이다.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함은 어린아이가 바닥에 물을 엎지르고 엄마를 바라보는 것과 같다. 엄마가 바닥의 물기를 대신 닦아준다 하여 아이에게 책임감을 운운하진 않는다. 점차 아이는 스스로 엎지른 물을 닦고 바닥을 정리할지 말 것인지의 선택을 배울 뿐이다. 물을 바로 닦는 다면 정리하는 수고를 감수해야 하고, 물을 바로 닦지 않는다면 곧장 미끄러질 수 있다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 선택이 무엇이든 자라나는 몸만큼 어른의 자세를 키우는 것이다. 수험 생활을 언제 끝낼지를 결정할 때, 귀국 시점을 결정할 때, 만남에 이별을 고할 때, 책을 언제 읽을지부터 퇴사를 언제 할지 결정하는 것도 그 끝을 정하는 게 어른의 세계이다. 시작을 엎지르는 것과 끝이 어디인지 선택하는 행동에 책임을 질 때, 비로소 괜찮은 어른이 된다.  



개와 늑대의 시간


해 질 녘을 의미하는 단어 중 개와 늑대의 시간(L'heure entre chien et loup)이라는 표현이 있다. 붉은 태양과 푸르게 짙은 밤이 만나 지면에 어스름한 기운이 머무는 시간이다. 이 스산함 속에서도 태양과 같은 시작은 밤과 같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어둠이 무섭다 하여 태양으로 도망가기를 선택하지 않는 것, 개가 늑대로 바뀌는 장면을 무서워하지 않고 오히려 정면으로 바라보는 것을 배운다.


끝을 책임지는 어른으로 사는 것은 경이로움과 탄성을 자아내는 아이의 시선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고, 어둠이 오는 밤이 낯설더라도 매듭짓는 시간을 마주하는 것이다. 끝을 책임지는 사람만이 개와 늑대의 시간을 ‘낭만’으로 선물 받을 것이다. 시작뿐만 아니라 끝도 책임지는 괜찮은 어른으로 살고자 한다.



Dingolfing, German. 2012




 # 묻는 말

독자님들은 언제 어른이 된다고 느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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