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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Oct 08. 2020

사랑하니까 헤어지는 거야

운명의 붉은 실, 운명의 인연.

결혼식 당일 날. 교통사고로 신부가 죽었다. 신랑은 살아남았지만 식물인간이 된 채로 눈뜨지 못했다. 가장 큰 사랑의 상징, 결혼식 날 비극을 맞이한 두 남녀는 영혼들의 도움으로 꿈에서 만나게 된다. 꿈에서 영혼결혼식을 올리면, 이 둘은 이번 생에 남은 사랑을 다 할 수 있고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남자가 생명을 잃게 된다. 사람으로서의 삶을 포기하고 귀신이 된다. 당신이 신부라면, 사랑하기 때문에 상대를 살릴 것인가, 상대를 죽일 것인가.    


  

사랑하니까 헤어진다     

비겁한 자들의 변명이 저보다 더 구질구질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힘들어하지 않게 더 잘하는 것이 해결의 시작과 끝이라고 생각했다. 미안한 일은 처음부터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점차 저 문장이 머릿속으로 마음으로 들어올 때쯤, 나도 나이가 먹었구나 싶었다. 사랑은, 특히나 연애는 그렇게 칼로 무 자르듯 분절하여 설명할 수 없는 게 훨씬 많다. 그 두 사람만이 공유하고, 알고 있는 감정은 모두 연속상에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 생각, 성격 차이가 도무지 조화를 이룰 수 없지만 여전히 사랑은 남아 있을 때가 가장 괴롭다. 두 사람의 노력과 기다림이 접점을 찾을 수 없을 때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헤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직감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사람. 그 사람이 말할 것이다. “사랑하고 있지만 헤어지자.”라고.  

         

어떻게 사랑하는데 헤어질 수 있을까. 나만 볼 수 있는 이 사람의 예쁘고 미운 모습, 함께한 말들, 약속한 일들 모두 다 없던 일로 만드는 게 정말 사랑일까. 그러나 수많은 시간 동안 상대를 겪으면서, 그리고 자신을 겪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내가 아픈 게 아니라 상대가 아픈 모습이 더 아픈 게 보이기 시작하고 저 사람은 내가 아니면 행복할 것 같다며 생각하는 낯선 생각. 그제야 당신의 행복을 위해 헤어지자고 말한다. 내 옆에서 아프지 말고, 당신을 더 행복하게 해 줄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이는 나를 위한 이기심이기도 하다. 상대를 안고 있자니 내가 아픈 것도 더 이상 못할 일인 것이다.


연애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해결책은 헤어지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가면 아픔도 사라지고 의미도 잊는다. 만약 헤어지지 않는다면 더 이상 사랑하기 힘들다고 말하는 상대를 책임져야 한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아픔까지 책임져야 한다. 가수 조정현의 노래처럼, 그 아픔까지 사랑하는 것이다.


      

운명의 붉은 실      

약지에 붉은 실로 맺어진 인연이 진짜 인연이라고 한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태어날 때 묶인 실이라 운명과 같은 것인데, 만약 이 실을 끊으면 운명의 상대와는 다음 생에도 만날 수 없다고 한다. 결혼식 당일 날 죽음을 맞이한 신부는, 사랑하는 신랑과의 붉은 실을 가위로 끊는다. 사랑이 가장 컸던 날, 사랑을 보낸다. 사랑뿐인 사람과 영원히 이별한다. 사랑의 종착역이 반드시 결혼은 아니지만 아직도 결혼의 의미는 퇴색되지 않았다. 정서상 매우 중요하고 깊은 의미가 있기 때문에 결혼하고 싶었지만 결혼하지 못한 이야기가 아픈 것이다. 붉은 실을 끊어 낸 신부의 눈물이 가엽기만 하다.


드라마에서 장만월(아이유 역)은 죽은 귀신 신부의 영혼결혼식 상대를 찾기 위해 홍낭이라는 붉은 주머니를 공원에 떨어뜨리고 그 주머니를 주운 인간 남자가 결혼 상대가 된다. 그 주머니를 주운 사람은 다름 아닌 결혼이 예정된 신랑이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공원을 지났을 것이다.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붉은 실은 서로를 잡아당긴다. 그런 운명을 신부는 잘라낸다. 빈 결혼식장에 혼자 남아 사라진 상대에게 말한다. “사랑해요. 행복하세요.” 죽은 나를 따라서 살아 있는 당신이 죽지 말길 바라는 마음. 사랑이 아니면 불가능한 이별이다. 납득할 수 없는 이별을 책임진다.


운명의 붉은 실로 이어진 인연이어도 아픈 사랑이 예정된 사랑이라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이 그들의 행복을 방해한다. 그때 손가락의 붉은 실은 그 사랑을 포기하지 말라는 절규일까, 혹은 운명을 알려주는 배려일까.

운명의 붉은 실로 이어지지 못했던 사랑은 더하고 싶지만 더 이상 이을 게 없어 못한 사랑이다. 거기까지의 인연, 거기까지의 사랑이다. 이는 더 사랑하고 싶지만 사랑할 수 없다는 저주일까 혹은 진짜 인연을 찾으라는 배려일까. 둘 중에, 무엇이 더욱 아픈 사랑일까.


끊어진 실의 파장이 LOVE처럼 보인다.

사랑하니까 헤어진다는 말은 여전히 구질한 변명처럼 들린다. 그게 내 입장이어도, 상대의 입장이어도 비슷하게 구질하다. 하지만 보내는 마음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딱 들어맞는 이별을 맞이해봤다면 저 문장은 전혀 불가능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그 잔혹한 현실을 겪어본 사람은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까지도 내 눈물보다 상대의 눈물을 걱정하는 지독한 애정을. 끊어진 그 사랑도, 마지막까지.


마지막까지, 사랑이다.


 


<사진 출처>

드라마 「호텔델루나」5화 https://www.youtube.com/watch?v=7i2c4GxK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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