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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Nov 04. 2020

가르치는 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

미묘한 차이를 읽어내는 시선

교육실습 중인 학교에서 지하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교육청이 있었다. 마침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셨던 선생님께서 장학사로 계셔서 연락을 드리고 점심시간에 뵈러 갔었다. 거의 6년 만에 뵌 선생님과 교육청사에서 마주하며 안부를 묻는데 참 설렜다. 당신이 가르치던 학생이 곧 당신의 역할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왔고, 곧 당신과 선후배로 만나게 될 미래를 그린다니 그 터질듯한 설렘에 발을 동동 굴렸다. 

     

“선생님.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교직을 할 거라고 생각하셨을까요? 매일 동아리만 하느라 공부 하나도 안 했잖아요.” 

“교직이라는 영역 자체는 생각을 못했지. 근데 동아리 하는 애들은 열정이 있는 편이라 나중에 보면 자기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애착을 갖더라. 교직 이수잖아? 그렇다면 고생이 더 많았겠구나. 네가 교육 가족이 된다니 환영한다.” 

   

선생님의 답변엔 현실성이 뚜렷한 확신이 있었다. 개인이 흥미를 느끼는 영역에 강력한 열정을 쏟아붓는다면 그 영역이 어떠한 것이라도 자기를 실현하며 살 것이라는 확신이다. 포도주 감식가가 포도주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별해 낼 수 있듯이 미묘한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 선생님은 다 똑같은 학생들로부터 각기 다른 강점을 알아본다. 선생님은 나를 동아리 활동으로 공부가 뒷전인 학생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과감한 출사표를 던지는 학생으로 여기셨다. 그제야 나의 비현실적인 믿음을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고등학생 때 이런 얘기를 들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당시의 선생님은 전교생의 안전을 지키고 교칙을 수호하시느라 바쁘셨고, 모두를 위해 엄격함을 유지했던 분이라 위와 같은 대화가 무르익을 수 없는 분위기였다. 

     

가르치는 자에게는 심미안이 필요하다     

미술교사였던 아이즈너는 학생들에게 다양한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학생마다 적합한 형태로 변형하는 교육적 상상력을 중시했다. 수행 과정은 교사의 교육적 감식안(educational connoisseurship, 심미안) 교육 비평(educational criticism)을 통해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나 교육적 감식안을 가진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미묘한 차이를 비전문가인 학생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로 표현하는 노력을 강조했다.


심미안을 가진 교사는 학생 개인의 성향과 적성, 흥미와 보완점을 민감하게 알아낼 수 있다. 학생이 선생님의 조언을 주의 깊게 받아들인다면 기초가 탄탄하고 뿌리가 단단한 진로설정이 가능하다. 이 지점의 중요성은 독일의 교육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독일은 중학교로 불리는 (grundschule) 까지는 한국과 학제가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한국은 중학교 졸업 후 일반고 혹은 특성화고로 진학하는 이분법적 진학을 취하고, 독일은 목표에 따라 3가지 분류로 진학을 결정한다. 또한 진로가 명확하지 않은 학생들은 보류 차원에서 머무르는 학교로도 선택이 가능하다. 더욱 다른 점은 레알슐레(실업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언제라도 김나지움(인문계 학교)으로 진학이 가능하다는 것이고 이런 학제가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제도화되어 자연스럽게 진행된다는 것이다. (현재는 한국도 마이스터고등학교를 운영하고 있고 진학 변경에 제한이 예전보다 낮아진 편이다. 그러나 독일의 전통성과 비교하자면 아직은 다소 불안정하다.) 

눈여겨볼 점은 중학교에서 중등과정으로 상위 진학을 할 때 학생의 능력과 적성, 선생님이 조언을 고려해 부모님과 상의 후 결정을 하는데 이때 선생님의 조언이 무게가 높다는 것이다. 진로지도에 선생님의 조언이 단연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 분위기가 한국과는 다소 다르다. 추천에 가까운 말이라기보다는 따르는 게 훨씬 타당한, 신뢰도가 높은 말이다. 이는 독일에서 교사를 육성하는 방식에 신뢰도가 높다는 반증이며 이미 사회가 교사의 심미안을 전문성으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만약 한국에서, 고등학교 진로 지도 결정 시 선생님의 조언 비율을 50%가량 늘리고 이를 추천하는 분위기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학생과 학부모가 이후 어떠한 사정에 의해, 그 책임을 선생님에게 물으며 원색적인 비난을 쏟는 일이 생기지 않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일단 애를 맡겨 놓고 뒤치다꺼리하는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 직업 전문가로서의 역할이 보장되려면 현재 사범교육은 무엇부터 바뀌어야 할까. 




선생님이 유심히 지켜본 학생들은 수없이 많았을 거고 그 과정에서 전하고 싶은 말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심한 관찰을 전해 들은 학생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아이즈너가 제시한 교육적 심미안은 비단 수업과 평가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배우는 자의 성장과정 속에 가르치는 자의 심미안이 중대한 역할을 하리라 본다. 다만 학생수 대비 교사 수가 지나치게 적어서 그 어떤 현장에서도 적용하기 어려운 게 단점이고, 교사의 안목을 신뢰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범 교육과정을 의심해야 한다. 가장 큰 어려움은 선생님의 전문적 심미안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비합리적인 주관적 평가에 지나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10년 전의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의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강당 에어컨을 쓸 수 있도록 몰래 허락해주셨다. 학교 축제가 끝나고 서로 고생했다며 토닥이는 청소 현장에서 선생님은 내게 악수를 건네셨다. 그때나 당신을 보러 온 이 순간이나, 학생이 무엇을 활동하는 과정 속에서 재미를 찾도록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잘 될 거라는 응원이 필요한 시점에 응원을 주는 것도 심미안이 있어야 한다. 수행 과정을 기다리고 응원과 피드백을 주는 평가도 미묘한 차이를 읽어야 가능하다. 느리지만 탄탄하게 갈 수 있는 교육 분위기를 바라본다. 혹시 느지막이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되더라도 낙오점이 찍히지 않는 기다림을 바라본다. 미묘한 차이를 볼 수 있는 환경이 자연스러워지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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