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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기 Jun 29. 2020

선생님이 우리 애만 싫어하나요?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선생님, 저가요.."라고 말하며 거친 숨을 헐떡인다. 더위로 인해 붉어진 얼굴을 하고 눈물을 글썽였다. 숙제를 어쩌고 하길래 또 숙제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미리 방어적인 태도를 취한다. 우선은 빈 교실로 데려가 그만 뚝- 하는 말과 함께 물과 휴지를 가져다주고 "천천히 말해보세요."라고 말했다. 이유인즉슨, 이번에는 해야 하는 숙제를 다하려고 했는데 그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해 죄송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왜 하지 못했는지를 차분이 말하다 보니 저녁에 쉬고 싶고, 놀고 싶어서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럼 여기 조금 해온 숙제들은 학원 오기 전에 급하게 한 거네?"라고 하니까 고개를 끄덕인다. 자꾸 나에게도 죄송하고, 원장님께도 죄송하고 이런 말을 반복하면서 혼자 서러운 눈물을 흘리는데 더 이상 죄송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다른 친구들은 단어도 잘 외우고 시험도 잘 치는데 자신은 잘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못하는 게 문제가 아니야. 만약 오늘 내 점수가 낮다면, 그만큼 공부를 더 하면 되는 거지 다른 친구들이 너보다 더 잘나고 그런 건 없어."


그 학생에게 일주일과 하루 일정을 물어봤다. 그리고 같이 공부 계획을 짰다. 영어 학원 말고도, 수학과 한국사 학원에 가야 하니 그 시간을 고려하고 노는 시간도 매일 넣어서 최소한 해야 할 것들은 하고 놀자고 했다.

숙제를 하루 전에 하고, 만약 그날 끝내지 못하면 학원에 오기 전에 조금 남은 것들을 채워서 해오기로 했다. 토요일에는 한국사 수업을 듣고, 영어 숙제를 한 후에 주말 동안 재밌게 노는 것으로. 다만, '시간 정해서 끝내기'를 매번 써놓고 형광펜까지 칠한 이유는 숙제하다가 늘어지지 말라는 뜻이었다. 공부습관이 없는 학생들은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이다. 가장 쉽고 좋은 방법 중의 하나가 '데드라인' 설정이다. 어차피 혼자 하는 숙제에서는 깊은 사고력을 묻기 어렵다. 괜히 끙끙거리며 고생하지 말고, 1시간이면 1시간으로 네가 할 수 있는 시간 내에 하라는 정도만 가이드해주는 것이다. 토요일에 숙제를 해 놓으면 월요일 수업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수요일 수업은 원어민 선생님과 발표와 게임을 하는 Activity 수업이 주를 이루므로, 숙제에 대한 부담이 없다. 화요일과 금요일은 수학이니 스킵했고, 그럼 수요일에 재밌게 놀고 나서 집으로 귀가하여 쉬다가 목요일 숙제를 하면 된다. 이렇게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하니 그렇게 해볼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이제 학원에 올 때 10분 정도 일찍 오라고 전했다. 다른 친구들은 10분 일찍 와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오늘 시험 쳐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거 했어?' '저거 했어?'라고 운을 띄우며 가벼운 마음으로 서로 물어보는 대화를 하는데, 일찍 와서 그런 대화를 하면서 같이 물어보고, 못한 암기도 해보라고 도와주었다.


이 날 하루, 이 아이는 하지 않은 숙제에 대해 혼나는 위기 상황을 모면했고 앞으로 해볼 만한 계획도 찾아갔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는 기본적인 것들을 해 올 것이라 생각했다. 어려운 것들이 아니니 잘해보라는 마음으로, 사진 속 포스트잇을 학생의 책 앞에 붙이고 테이프로 덧대어주었다.


선생님이 우리 애만 싫어하시나요?

안타깝게도 이 학생은 다음 숙제에 대한 성실도와 시험 점수가 낮은 편이었다. 이전에도 비슷한 일이 잦았다. 풀어야 할 문제를 답만 체크해서 미리 보낸 후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 실력이 안돼요. 너무 죄송해서요." 이러면서 제대로 하지 않은 지점을 지적당할까 봐, 그리고 할 수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어 포기를 제대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 과제가 얼마나 어려웠으면 이렇게 까지 해 보냈을까 하는 마음에 학생을 실드 치며 원장님께 보고했다. 그리고 숙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울면서 들어왔던 게 두 번째 방어였다. 세 번째로 또 비슷한 행동을 했을 땐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기분 나쁠 것을 알지만 엄하게 대했다. 그리고 며칠 뒤, 이 학생의 어머님은 우리 애가 선생님들이 무섭다고 말하던데 라는 상담전화를 시작했다. 말인즉슨, 어머님이 보아도 아이가 요즘 들어서 공부를 더 하기 싫어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봐도 그저 놀기만 한다고. 하지는 않는데 스트레스를 받아한다고. 그렇지만 우리 애는 감수성이 여리고 연약해서 얼마 전에 선생님과 대화하며 상처를 받았단다. 그래서 혹시, 우리 애만 싫어하시냐고 물으셨다.


당신들이 고상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나는 당신들을 사랑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위선적인 관심을 베풀어 당신들과 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p.98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라, 상대적으로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부담이 가는 커리큘럼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교과교육이 이루어지는 사교육 학원에 등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지필 시험]이라는 관문을 넘어야 하는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다. 내가 강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는 학생은 어른들의 거짓 칭찬으로 가짜 자기를 만든 학생이다. 이런 학생들은 첫 수업 시간부터, 얄팍하게 아는 내용을 선생과 친구들 앞에서 보여주고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자세가 있다. 틀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면 상당히 자존심 상해한다. 하지만, 자기기만을 내려놓고 진실된 실력을 쌓으면 어느 순간 실력이 폭발하기도 한다. 안타까운 것은, 자신은 분명히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여기서는  못하는 건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학생이다. 다른 집단에서 단어 10개를 암기하고 외워서 100점을 받다가, 여기 와서 단어 100개를 암기하고 70점을 받으려니 자신은 70점짜리가 아니었으므로 그런 현재의 점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70점을 두고 "오늘 시험 잘 쳤습니다."라고 학부모께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중요한 것은, 학원에서 70점을 받았다는 자체보다는 학교나 기타 시험에서 80점 혹은 100점을 받는 게 더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위선적인 피드백을 해서는 안된다. 절대 점수 70점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막말로 학원에서 받는 70점으로 어디가서 인정받나?) 그래서 학생들이 학업에 임하는 사소한 순간에 스스로를 속이는 짓을 할 때 더욱 엄격해 지는 것이다. 내 마음은 더 잘하는 사람들과 같은 실력이 되거나 그 보다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아니, 그렇지 않더라도 그냥 매 순간에 해야 할 것들을 충실히 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방법과 과정을 모르는 학생에게 방법을 알려주는 것도 내 역할이니까, 나도 누가 이렇게 코칭해주길 바라니까, 우는 애를 붙잡아 두고 작게나마 공부시간을 잡아준 것이다. 내가 학부모님의 소중한 자녀만 싫어하는 게 아니라, 그 자녀가 공부 때문에 울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정성을 다한 것이다. 그러니, 도와준  그거대로 고마우나, 혼내는 것은 자제해 달라는 부탁은 들어줄  없다.


자신이 타고난 본분이 무엇인지는 직접 해보기 전에는 알지 못하며, 알 수도 없다. p. 127


엄하고, 무서운 선생님이라는 소리가 차라리 속 편한 이유는 애들한테 굳이 인정받으려는 마음이 없다는 반증이다. 나는 그런 식으로 항상 비슷한 선생이다. 화가 나도 소리치지 않는다. 애들이랑 장난을 치거나 농담을 주고받을 때도 그냥 그 자체로 웃을 뿐이다. 기분을 띄어주기 위한 농담이나 칭찬을 할 때에도 의식하기보단 진심으로 할 뿐이다. (그래서, 현재 사교육에 있지만 교육에 사업성이 강해지는 순간이 가장 괴롭다.) 애들한테 듣기 좋은 소리만 했다가 자칫 자만심이 커진 자아를 키우고, 정작 중요한 시기에 "나는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라고 생각하는 학생이 하나라도 줄어들길 바랄 뿐이다.


가치 있는 것을 자신의 외부에서 찾았기 때문에 약해지고 말았다는 사실.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주저 없이 자신의 생각에 몸을 던지고, 곧장 바른길로 돌아가 우뚝 선 채 자신의 손과 발로 기적을 행한다. p.143

<참조 도서>

「자기 신뢰」-랠프 월도 에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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