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부, 그리고 세계관의 붕괴가 가져온 평행이론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그 리듬은 닮아 있다고 했던가. 우리가 마주한 21세기 초반의 혼란과 경이로움은 500년 전, 인류가 중세의 허물을 벗고 근대로 진입하던 16세기 초반의 격동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당시 인류가 신대륙과 지동설을 통해 세계의 경계를 확장했다면, 오늘날의 우리는 인공지능과 디지털 자산을 통해 존재의 정의를 새로 쓰고 있다.
16세기의 문을 연 것은 기술이었다. 1450년경 등장한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지식의 독점을 무너뜨렸다. 유럽 전역에 쏟아진 서적들은 정보의 갈증을 해소했고, 이는 곧 대중의 각성으로 이어졌다. 21세기의 스마트폰은 그 현대적 변주곡이다. 2007년 등장한 이 작은 기기는 전 인류를 실시간 네트워크로 묶으며, 누구나 정보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초연결 시대'를 열었다. 지식의 보급이 왕성해질 때, 낡은 권위는 힘을 잃기 시작한다.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과 마젤란의 세계 일주는 단순히 지리적 확장에 그치지 않았다. 지구가 둥글다는 실증적 증명은 공포의 바다를 기회의 바다로 바꾸었고, 유입된 막대한 부는 봉건 질서를 무너뜨리는 상업 자본주의의 씨앗이 되었다. 2009년 탄생한 비트코인은 현대판 '디지털 신대륙'과 같다. 국가와 중앙은행이 독점하던 화폐 권력에 의문을 제기하며 등장한 블록체인은, 자산과 신뢰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가장 극적인 유사성은 '인간의 위치'에 대한 도전이다. 1517년 종교개혁과 1543년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천 년간 이어져 온 교회 중심의 세계관이 허구였음을 폭로했다. 인간은 신의 섭리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비로소 독립된 주체로 우뚝 섰다.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번 주체성을 위협받고 있다. 2012년 소위 '고양이 논문'으로 시작된 딥러닝 혁명은 2016년 알파고를 거쳐 2022년 ChatGPT에 이르며 인간 지능의 성역을 허물어뜨렸다. 지능의 시금석이라 여겼던 튜링 테스트마저 무색해진 지금, 우리는 '기계와 공존하는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낯선 질문 앞에 서 있다.
16세기의 변혁은 단순한 사건들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것은 종교적 독단에서 인간을 자유롭게 했고, 결국 산업혁명을 거쳐 현대 문명이라는 거대한 질서를 탄생시켰다. 21세기의 격동 역시 마찬가지다. 기술은 국가와 사회라는 기존 틀에 의문을 던지며, 인간과 기계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500년 전의 격변이 근대의 여명을 알렸듯, 지금 우리가 겪는 거대한 균열은 인류 역사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전조다. 우리는 지금, 또 하나의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탄생하는 순간을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