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입자는 왜 이 물건만 두고 갔을까?

[짧은 단편] 빈 집에 거울만 남아 있었다

by B군


그 집에 유일하게 있는 물건은 큰 거울이었다. 아웃렛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디자인이었고,

흰 테두리의 전신거울이었다. 빈집 거실에 거울만 있는 것이 의아했다. 집 안을 살피다 조심스럽게 거울 앞에 섰다. 여느 거울과 같았다. 조금 내 모습이 길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키가 커진 모습. 홀쭉한 얼굴을 보며, 예뻐 보이는 거울이 있다고 하는데, 바로 이런 거울인가?


"먼저 와 계셨네요."

한 음 높은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60대로 보이는 여자가 서 있었다.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말이 없자 웃으며 여자가 말했다.

"큰 부자 부동산입니다."

전화로 들은 목소리보다 여자는 늙어 보였다.

"이삿짐을 다 뺀 줄 알았는데, 거울이 있었네!"

"......"

"보시는 것처럼 남향이에요. 여름인데도 해가 안 들어오고, 겨울에는 해가 들어와서 따뜻하죠. 살아 보면 왜 남향, 남향하는지 알 거예요."


여자는 빈틈을 보이지 않고, 말을 이었다. 잠시 틈을 보이면 야수에게 먹히는 초식 동물처럼 계속 단어를 쏟아냈다. 집은 마음에 들었다. 낮인데도 어두운 지하와 건물에 가려서 밖을 볼 수 없는 곳이 아니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가격이 생각보다 조금 높았다. 집을 보고 흠을 잡아서 네고를 하려고 했지만, 단점이 보이질 않았다. 물도 잘 나오고, 방범창도 튼튼했으며, 창틀에 곰팡이나 먼지 하나 없었다. 벽지도 깨끗했다. 사람이 살지 않았던 새집처럼 보였다.


"집주인은 누구인지 아세요?"

"글쎄요. 저도 옆 부동산에 내놓은 것을 받은 거라."

"깨끗해 보이는데 왜 급하게 나가셨는지?"

"사정이 있을 텐데."

내가 고민하는 척하자, 여자가 서둘러 말했다.

"아가씨 걱정하지 마세요. 등본 확인했는데 문제없고, 물건도 깨끗한 거 봤어요. 주인은 계약 날 올 거예요."

"아, 네."

내 말소리에 힘이 없자, 여자는 그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그런데 거울은 버리고 가야지. 사람들이 매너가 없어. 깨끗해서 써도 될 것 같은데……."

방안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거울을 보자, 두 여자가 빤히 나를 보고 있었다.

"생각해 볼게요."

집을 나오며 닫히는 문 사이 빈틈으로 거실을 봤다. 거울이 서 있었다. 늘 그 자리에 박혀서 있었던 것처럼. 다시 올 것을 아는 것처럼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

며칠 밤낮으로 그 집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다른 집들도 몇 군데 더 둘러보았지만, 성에 차는 곳이 없었다. 번번이 그 남향집의 밝은 햇살과 흠잡을 데 없이 깨끗했던 내부, 그리고, 기묘한 존재감을 뿜어내던 흰 테두리의 거울이 아른거렸다. 예산을 조금 넘는 가격이 마음에 걸렸지만, 부동산 여자의 말처럼 놓치기 아까운 집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무엇보다 나를 홀쭉하고 키 커 보이게 만들었던 그 거울의 잔상이 이상하게도 나를 끌어당겼다. 결국, 나는 약간의 가격 조정을 받아 그 집을 계약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시 만난 부동산 여자는 내 결정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능숙하게 서류를 준비했다. 계약 당일, 여자가 말했던 집주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해외에 장기 체류 중이라 대리인이 위임장을 들고 나왔다. 등기부 등본은 깨끗했고, 다른 서류들도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나는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며 슬쩍 다시 물었다.


"혹시 전에 살던 분은 왜……."

대리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부동산 여자의 눈치를 살피며 건조하게 답했다.

"개인 사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자세한 건 저도 잘……."

더 캐물을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저 모든 것이 순조롭게 끝나기만을 바라는 듯한 그들의 태도에 나 역시 입을 다물었다.


이삿날, 가장 먼저 새집에 도착한 것은 나였다. 텅 빈 집 안에는 여전히 그 흰 테두리의 전신거울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처럼.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도착하고, 짐들이 하나둘 옮겨지기 시작했다. 나는 직원들에게 거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 좀 창고 방 쪽으로 옮겨주시겠어요?"

덩치 좋은 남자 직원 둘이 거울 양쪽을 잡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들이 끙, 소리를 내며 힘을 주었지만, 거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 이거 왜 이렇게 안 움직여?"

"바닥에 붙었나 본데요?"

그들이 다시 온 힘을 다해 들어 올리려 했지만, 거울은 마치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미동조차 없었다. 직원들은 멋쩍게 웃으며 내 눈치를 살폈다.

"사장님, 이거 저희 힘으로는 안 되겠는데요. 꼭 붙박이 가구 같아요."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버리고 갔다고 하기엔 너무 깨끗했고, 붙박이라기엔 디자인이 너무 평범했다. 결국, 거울은 현관 바로 앞, 거실로 들어서는 길목, 늘 오가며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 자리에 그대로 남게 되었다.


첫날밤, 짐 정리를 대충 마치고 불을 껐다. 창밖 가로등 불빛이 희미하게 거실을 비췄고, 그 빛 속에 거울이 우뚝 서 있었다. 어둠 속에서 거울은 더 이상 사물이 아닌, 무언가 살아 숨 쉬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물의 표면 같기도 했고, 그 안에서 또 다른 눈이 나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집을 보러 왔을 때, 거울 속에서 나를 빤히 보던 두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침대에 누워 쉽게 잠들지 못했다. 거실의 거울이 계속 신경 쓰였다. 이 집에 유일하게 남겨진 물건, 그 거울은 마치 집의 원래 주인처럼, 새로운 세입자를 고요히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어둠 속 거울에는 무엇이 비치고 있을까! 궁금증이 부풀어 올라 쉽게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러다 쿵 소리에 놀라 감았던 눈을 뜬 것은 새벽 4시가 훨씬 지난 시간이었다. 새벽이었지만 커튼이 없는 창문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와 방안이 노랗게 물들어 있었다. 방문 틈 사이로 보이는 흰 불빛을 보며, 거실에 불을 켰었는지 껐었는지 기억도 가물거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방문을 보며 어쩌면 나는 이미, 이 집과 함께 거울 일부가 되어버린 건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

작가의 이전글4000! 코스피도 아니고 머선 일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