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청소년 시절 일진들과 큰 다툼이 있었다. 나는 중학생 때도 키가 크고 덩치가 있어 날 건드리는 놈이 있겠나 자만했다. 하지만 어느 날 일진 한 놈이 기분이 매우 언짢은지 나를 놀려댔다.
"배털! 한 번 보여줘 봐. 새끼 깐깐하네."
평소 일진들과 크게 사이가 나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의 이름을 가지고 희화하 하며 놀려대는 꼴을 못 참고 주먹을 날렸다. 그 순간 주변에 일진 5명이 한 번에 달려들었다. 다행히 당시 쉬는 시간이 끝나 선생님이 오셔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그날 귀가 길이 두려웠다. 내가 때린 일진 놈에 대해 복수를 하고자 했던 5명이 귀가 길에 달려들면 어떻게 하지 걱정되었다. 주변 친한 친구들에게도 솔직히 내 감정을 털어 놓지 못했다. 다행히 귀가 길에 아무 일도 없었지만 나는 나를 걱정해주지 않았던 친구들과 절교 선언을 했다.
당시 나는 친한 친구들이 알아서 내 마음을 알아주고 귀가 길에 함께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연락 오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별일 없었지만 귀가 길이 비참했다. 친구 놈들 다 필요 없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 후 몇 년 후 친한 친구 녀석이 이메일을 보내왔다. 당시 그 친구는 같은 반이 아니라 내가 겪었던 일을 뒤늦게 알았다고 했다. 늦게라도 연락해서 그날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었지만 내가 절교를 선언하는 바람에 못했다고 말했다. 솔직한 친구의 이메일로 몇 년 만에 잃었던 친구를 되찾았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요시노 겐자부로>의 책을 보면 이와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은 일제 군국주의가 판을 치는 1937년에 출판되었다. 언론 출판의 자유가 제약받고 노동운동과 사회주의 운동이 탄압받아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기 어려웠다. 작가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사회문제나 인간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탄압을 우회하여 쉽게 서술하였다.
책을 읽고 문득 성인이 되고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은 많지만 그것을 풀기 위한 실천은 극히 드물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고민은 험담으로 해소된다. 당사자와 직접 관계를 풀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기보다 끼리끼리 험담을 나누며 고민을 묻어둔다. 험담은 결국 당사자 귀에 들어가고 관계는 더욱 난감해진다. 아니면 사람은 결국 각자 삶을 위해 산다고 생각하며 관계의 담을 하나하나 쌓기 시작한다. 심지어 솔직한 이야기에도 의도가 있는지 의심을 했던 적도 몇 번 있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고 성인이 돼서 성장이 지체되고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진실된 편지를 쓴 적이 언제인가. 더 나은 사람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꾸준히 성장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어려운 질문 앞에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성장이라는 단어는 유아기와 청소년시절만의 유일한 단어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