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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성민 Feb 22. 2024

욕망이 판을 치는 시대에 필요한 일

<몰락의 시간-문상철>을 읽고 

처음 정치운동을 시작했을 때 동지들과 사상과 취향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대 때 나를 되돌아보면 사람 좋아하고, 동지들과 호가호형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당연히 저녁마다 있는 술자리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 자리가 활동가들 간 믿음을 주고받는 자리라 생각했다. 술로 조직한다는 말도 있듯이 술자리를 통해서 서로 삶을 나누고 운동을 함께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며 나와 생각과 행동을 같이하는 사람들만 친해지니 두 가지 문제가 간간히 발생했다.


첫 번째는 매번 똑같은 사람과 술을 마시고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모르는 사람을 만나는 일의 필요성이 희미해졌다. 일종의 이너서클이 형성되고 그 관계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세상을 바꾸자고 모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의견만 듣게 되니 시야도 좁아지고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편견으로만 가득 찰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두 번째는 학연과 인맥 중심의 그룹(이너서클)이 형성되다 보니 친한 활동가가 무슨 잘못을 하면 그 사람은 그럴 사람이 아닌데 라는 반응부터 나왔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너무 가까운 사람에게는 비판과 쓴소리 혹은 냉정한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다.


더 이상 동지들과 친구처럼만 지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몰락의 시간>은 정치인 안희정을 측근에서 보필했던 수행팀장이 쓴 글이다. 성폭력을 저질렀던 안희정을 고발하고 피해자를 도와 증언을 했던 사람이다. 이 책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비중보다 정치인 안희정과 주변의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의 비중이 크게 읽혔다.


그중에 인상 깊게 봤던 것은 안희정이 조직을 어떻게 운영했는 가이다.


“안 지사 참모 그룹의 특징을 보며 80년대 동아리 조직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학생운동과 선거로 철저하게 검증된 친분 관계, 술로 매일매일 서로를 확인하는 음주문화, 그리고 조직 구성원의 문제는 철저히 감싸주고 외부에는 배타적인 문화들이 가장 대표적인 모습이다.”


“나는 이 선거에서 진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주변 참모진들의 동종 교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이 모여 똑같은 전략을 만들어내고, 과거의 영화로웠던 일들만을 답습하면서 움직이는 캠프였기에 새 시대를 열 수 없었다고 생각했다.”


안희정이 범죄를 우발적으로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가 살았던 방식과 조직의 문화가 그를 괴물로 만들었다. 이 글을 보고 단순히 386세대의 특유 문화라고 욕할 수 없었다. 현재 진보운동 또한 이 흐름에 자유롭지 않아 지금과 같은 정체가 계속되는 것 아닐까.


주변 동지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김정희원 선생님의 <공정 이후의 세계> 7장 정의로운 조직 편을 한 번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장을 덮고 지금과 다른 문화와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좌파가 욕하고 비판하는 보수양당의 정치인, 활동가들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거대한 적과 싸우는 것, 국회의원 배지 하나 더 다는 것보다, 각자가 소속된 주변 관계와 조직 문화 개선을 위한 일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생각된다. 


욕망이 판을 치는 시대! 빛이 나는 사람보다 묵묵히 새로운 방향을 고민하는 활동가들에게 눈을 돌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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