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올드 오크>를 보고
켄로치 감독의 마지막 작품은 꼭 영화관에서 보고 싶었다.
사회파 영화라고 하면 지루한 경우가 많은데 켄 감독의 영화는 그렇지 않다. 이번에도 스토리가 탄탄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결국 영화 마지막에 울음이 터졌고 울먹거리며 극장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감동의 쓰나미가 대단했다.
먼저 켄 로치 감독은 단 한 번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 또한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이야기도 변화 발전했다. 보통 사회파 영화를 보면 리얼리즘이라 해서 투쟁하고 혁명 일으키는 영화로 오해받는다. 켄 로치 감독은 특유의 위트를 섞어 사회적인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해 나간다. 놀라운 것은 그 이야기가 수십 년 전 노동자 투쟁 혹은 차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를 이야기한다.
2016년 <나 다니엘 블레이크>를 기억하는가? 영국이라는 나라는 세계 경제적 강국으로 아주 잘 사는 나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켄로치는 영국의 선별적 복지 문제를 쉽게 이야기로 풀어가며 선진국에도 극심한 불평등을 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이 작품이 탁월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IT 기술 발전으로 인해 노인들이 컴퓨터를 잘하지 못해 복지혜택을 놓치는 경우도 절묘하게 묘사한다는 것이다.
2019년 <미안해요 리키>를 보고 감독의 배움과 성장에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나이가 들고 세상이 뜻대로 바뀌지 않는다고 느끼면 현재를 외면하고 싶은 게 좌파의 당연한 욕구다. 변화무쌍한 세상 앞에 현재를 외면하고 오랫동안 고수한 원칙을 지키려 한다. 이게 너무나도 당연한데 켄 로치는 달랐다. <미안해요 리키>는 특수고용 노동자인 택배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그려냈다. 단순한 영국과 서양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한국 사회 택배 노동자의 문제가 정확히 일치했다. 제조업, 대공장 노동자뿐만 아니라 플랫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넌지시 이야기한다.
2023년 감독은 <나의 올드 오크>를 들고 나왔다. 요즘 유럽 뉴스를 보면 이민자 문제로 갈등이 깊다. 오랫동안 외쳤던 좌파의 ‘차별 없고 다양한 인종이 함께 하는 사회’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다. 극우파들은 20세기 나치가 외쳤던 인종차별 구호를 외치지만 그것을 지지하는 대중 또한 만만치 않다. 이런 문제 앞에 모두가 무력감을 느낄 때 감독은 한 발짝 나아간다.
“When you eat together, you stick together.”(함께 먹을 때 더 단단해진다.)
켄 로치가 활동가 혹은 좌파정치에게 남긴 것은 대중이 나를 알아주기를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운동을 하면 내가 외치는 것이 옳은데 왜 사람들은 몰라줄까 라며 실망하곤 한다. 하지만 현재 사회에 적절한지 생각해보지 않고 대중들에게 알아주기만을 기다려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고 감독은 경고한다. 그리고 당신이 활동가라면 지금 당장 차별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무엇을 할지 고민해라고 한다. 그것이 거창한 정책의 변화와 정치적 성과 혹은 대규모 투쟁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가 남긴 마지막 작품처럼 함께 밥을 먹는 행위 그리고 그 장소를 통해 함께 연대한다면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 나갈 것이다.
용기! 연대! 저항! (Strength! Solidarity! Resistance!)
PS. 영화 포스터는 왼쪽보다 난민과 내국인이 함께 행진하는 오른쪽이 영화의 내용과 잘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