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에서 굴리는 주사위의 재미

지루한 회의 의미 있게 만들기 4

by 배성민

늘 회의를 하면서 무거운 분위기를 어떻게 탈피할지를 고민을 많이 한다.


준비된 안건을 바로 들이대면 분위기는 회의 주재자 혼자 떠들다가 끝난다. 어떻게든 참가자 이야기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안건 이외 나눌 수 있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보통 첫 만남, 조직의 첫 회의에는 소개도 하고 아이스브레이킹 질문도 하면서 화기애애하게 진행한다. 두번째 만남부터는 보통 바로 회의를 진행한다.


아이스브레이킹이 처음 만남에만 필요할까. 노조 대표자가 되기 전까지는 회의 전에 아이스브레이킹 프로그램으로 근황토크를 매번 했다. 나쁘지 않았다. 서로의 근황토크를 하며 자연스럽게 회의로 넘어가기 좋았다. 하지만 일상이 늘 특별하고 새로운 사건이 있는 건 아니듯 근황토크도 관례화되었다. 별일 없다며 패스를 하는 참가자도 점점 늘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을 가지고 타인의 근황을 듣다가 쉽게 관심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의 시작 전 아이스브레이킹 혹은 스몰토크를 포기할 수 없었다. 올해는 노조 대표자가 되고 시기에 맞는 질문을 뽑고 참가자들에게 돌렸다. A4 용지에 질문을 적고 질문 별로 손으로 일일이 찢어서 참가자들이 뽑게 했다. 번거로웠지만 참가자들이 흥미로워했다. 질문 내용은 별거 없었다. 계절과 날씨 질문, 꽃샘추위, 벚꽃 등 키워드를 AI에게 알려달라고 하니 5초 만에 정리해 줬다. 별도로 고민을 하지 않고 키워드만 고르면 준비 끝!


근황토크보다 분위기는 배로 좋았다. 근황토크는 일상을 공유했다면 키워드 토크는 추억을 공유했다. 지난 회의 주제는 '5월'이었다. 노조 투쟁한다고 자식이 크는 것도 몰랐던 지회장이 아들과 함께 갔던 5월 제주도 여행 이야기를 들려줬다. 단지 미성숙하다고 느꼈던 아들이 엄마가 10년 동안 투쟁한다고 잘 챙기지 못했음에도 성숙히 자랐음을 뒤늦게 알게된 이야기였다. 그 외에도 봄과 가을에 꽃이 피고 지는 계절보다 5월에 푸른색이 울거지는 산이 좋다는 조합원도 있었다. 나는 5월만 스승의 날만 되면 생각나는 대학교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세상 거만하게 살지 않고 늘 모르는 자신을 둘러봐야 한다며 나에게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을 했던 선생님 이야기였다.


며칠 전부터는 A4용지를 찢는 게 귀찮아서 주사위를 굴려 질문을 뽑는 것으로 방식을 바꿨다. 주사위는 2018년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아는 선배(현재 책방감 사장님)가 사줬다. 선배는 예상질문 목록을 뽑아서 주민들에게 주사위를 굴려 내가 답하는 방식으로 해보라고 했다. 좋은 방법이라고 맞장구쳤지만 그때는 주사위를 굴리지 못했다. 후보가 가볍게 보여서는 안 된다는 고정관념이 강했기 때문이다. 주사위는 사용하지 않고 5년간 집에 짱박혀있다가 이제 쓸 일이 생겼다.


노조 회의 장소에 주사위가 등장하자 시작부터 터졌다. 무슨 회의 자리에 주사위를 들고 오냐며 이건 뭐 하는데 쓰는 거라고 다들 궁금해했다. 질문을 뽑기 위해 주사위를 굴린다고 하니 차례차례 줄을 서서 주사위를 굴렸다. 학생 때 이후 처음 주사위를 굴려본다며 참가자들이 흥미로워했다. 단순히 질문을 제비 뽑기 하는 것보다 새로운 놀이 방식을 도입했던 게 신의 한 수였다.


회의 자리에서 주사위를 굴리는 분위기는 당연히 화기애애할 수밖에 없었다. 회의 주재자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참가자들이 의견을 냈다. 꼭 공적인 딱딱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개인경험도 중간중간에 이야기하며 회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회의에서 실 없이 주사위를 던져도 되는 것을 확인한 참가자들은 의견을 제출하는데 무게감이 없어도 되겠구나라고 안심하는 분위기였다.


10여 명 미만의 회의에서는 가능한 방식인데 또 30명이 모이는 운영위원회에서는 주사위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이 된다. 좋은 아이디어 있으신 분 댓글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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