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필 위대한 탄생 콘서트를 다녀와서
부모님 생신을 맞이하여 가족들과 함께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조용필 밴드 이름임) 콘서트에 갔다 왔다.
조용필은 전국투어를 부산에서 시작했다. 보통 전국투어는 서울에서 먼저 하고 지역에 열리는 경우가 많다. 지역에서 시작해서 서울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 알고 보니 조용필이 무명 때 '돌아와요 부산항' 원곡을 편곡하여 부산의 유명한 음악다방에 음반을 뿌리며 직접 홍보를 했다는 일화를 말했다. 결국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인기가수로 등극했다. 그를 국민가수로 만들어 준 것은 부산 덕분이었다며 부산부터 전국투어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지역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부터가 남달랐다.
콘서트를 오면 늘 그렇듯이 초반에는 가수가 부르고 싶은 노래가 나오고 점점 갈수록 청중이 좋아하는 노래가 나온다. 재밌는 사실은 조용필 콘서트는 4~5곡 정도 가사를 화면에 띄워주고 사람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게 했다. 무대에 조명을 비춰 누가 부르는지 다 지켜본다며 관중들이 다 함께 할 수 있도록 부추겼다. 가사를 띄워주는 게 연세가 많은 관객들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알고 보니 모두 함께 자신의 노래를 불러보는 경험을 시키려는 전략이었다. 가수가 노래하지 않고 청중이 다 함께 노래하니 공연장이 장관이었다. 신기한 것은 개인이 생떼를 쓰며 부르는 노래가 함께 부르니 그럴싸하게 들렸다. 콘서트 현장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조용필은 관중들에게 선물같이 안겨줬다.
조용필 콘서트에서 스탠딩을 할지 예상하지 못했다. 50~60대 중년 분들이라 불가능할 것 같았다. 2시간 내내 앉아서 공연을 편안하게 즐기다 오면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조용필 콘서트도 마찬가지로 앞자리에 앉은 분들이 시작부터 스탠딩으로 공연을 즐겼다. 압권은 콘서트 끝물에 경쾌한 록 음악이 나오자 모두 일어났다. 재밌는 사실은 팬클럽 소속 회원 수십 명이 '모두 일어나세요'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콘서트장을 누비고 다녔다. 함께 즐기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팬클럽 회원들이 청중들에게 공연 문화를 상세히 알려줬다.
처음엔 꼭 어르신들은 누가 주름잡는 사람이 있어야 잘 놀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알고 보니 필요했다. 끝까지 엉덩이를 떼지 않고 주머니에 손을 빼지 않고 박수 한 번 치지 않는 남성들이 꽤 있었다. 앙코르곡이 남았는데 서둘러 공연장을 떠나는 사람도 많았다. 치열한 삶 속에 문화생활을 잘 즐기지 못한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팬클럽 회원들은 중년들의 경직된 모습을 깨기 위해 여러 가지로 노력을 했다. 투박하지만 응원 피켓을 만들어 나눠주고, 플랜카드를 만들어 선동(?)하며 콘서트 즐기는 법을 알려줬다.
공연이 끝으로 향할수록 명곡이 많이 나왔다. '바람의 노래', '그래도 돼', '꿈' 내가 좋아하는 곡도 나왔다. '그래도 돼' 가사가 나올 때 울컥했다. 올해 노조 대표자로서 어려운 결정이 많아 꽤 힘들었는데 노래가 위로가 되었다.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이쯤에서 쉬어가도 되잖아
그래도 돼, 늦어도 돼
새로운 시작
비바람에, 두려움에
흔들리지 않아
<그래도 돼>
조용필은 트로트부터 락까지 못 하는 게 없었다. 자신 스스로 댄스는 어렵다고 하지만 집에서 한 번씩 한다고 말했다. 댄스곡도 준비하는 걸까. 대단하다 진짜. ㅋㅋ
젊을 때 명성에 머물지 않고 끝임 없이 도전하는 조용필이 정말 멋있었다. 2시간 공연 중 휴식 한 번 하지 않고 곡을 이어가는 그의 건강도 부러웠다. 그의 나이가 70대 중반이지만 앞으로도 어떤 곡을 발표할지 기대되는 가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