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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성민 May 14. 2022

브런치 식당에 격식 있는 옷차림이 필요한가요?

부산 송정을 뛰고 먹다

달리기 권태기를 극복하기 위해 평소와 다른 지역 코스를 찾아보았다. 우선 부산부터 정복하자는 심리로 송정으로 달려갔다. 송정 하면 해수욕장이고 바다가 한눈에 펼쳐진 공간이다. 그리고 여름이면 많은 인파가 해수욕을 즐기러 온다. 하지만 나는 송정에서 해수욕을 한 기억은 거의 없다. 해운대도 마찬가지고 광안리도 그렇다. 부산 사람들은 부산에서 해수욕을 즐기지 않는다는 말은 사실이다.      


송정은 나에게 새벽까지 술을 마셨던 대학생 엠티 공간, 병역거부를 한다는 친구를 큰집으로 떠나보내기 전에 송별회를 했던 공간, 사회 운동하는 동지들과 한해를 잘 보내기 위해 끝장 토론을 했던 공간이다. 백사장 앞에 펼쳐진 바다를 구경하기보다는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만들기 위한 행사로 자주 왔던 공간이다. 그럼에도 스쳐 지나가는 송정은 아름다웠다. 스쳐 지나갔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매번 새벽까지 술을 먹다가 아침에 일어나서 잠시 바다를 보았기 때문이다. 해운대와 광안리처럼 복잡하지도 않고 물도 깨끗해 보였다.      


송정해수욕장 백사장만 달리기에는 거리가 짧았다. 때마침 2020년 10월 미포-송정 철길인 동해남부선로가 폐선되고 산책로와 해변열차가 생겨 그곳으로 달려갔다.      


송정에서 미포까지 총거리는 4.5km로 해변열차를 타면 25분 걸린다. 내 달리기 실력으로 4.5km는 30분 안에 갈 수 있어 송정에서 미포까지 끝까지 달려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 자동차를 송정에 주차를 하고 달려야 하기 때문에 한방에 달리면 왕복 10km가 되어 부담이 되었다. 부울경 먹고 뛰다 연재는 내 삶에 활력소를 주기 위해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무리하면 금방 포기할 것 같았다. 그래서 송정과 청사포 왕복 5km, 청사포와 미포 왕복 5km를 나눠서 달렸다. 4월에 송정과 청사포를 달렸고 5월에 청사포와 미포를 달렸다.      


경치는 아름다웠다. 바다 지평선이 끝이 없이 펼쳐졌고 산책로에 오르막이 없어 숨 가쁘지 않게 달릴 수 있었다. 이렇게 좋은 공간이 부산에 있는데 도심 속 동네 앞만 무한 반복하며 뛰었던 나 자신을 한탄했다. 맨날 똑같은 코스만 죽어라 뛰어봤자 건강해지긴 커녕 달리기가 짐이 되었다. 도심에서 달리기는 자동차 소음과 매연, 형형색색의 건물로 인해 나의 눈과 귀를 괴롭혔다. 달리기 후 상쾌한 느낌은 있었지만 눈이 뻑뻑하고 귀도 먹먹했다. 심지어 평일에 달리기를 하면 한주가 피곤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반면 도심을 벗어나 자연에서 달리기는 시야가 탁 트이고 색다른 공기로 인해 코가 뻥 뚫렸다. 그리고 송정-미포를 달리고 그 주는 1주일 내내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이게 취미생활이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송정-미포 산책로를 뛰면 뛸수록 매우 좁다는 느낌을 받았다. 커플 2명이 손잡고 수평으로 걸어가면 꽉 차는 사이즈였다.  산책로가 좁아 뛰는 과정에서 사람들과 부딪치지 않게 이리저리 피해야 하는 상황이 자주 발생했다. 달리는 와중에 "잠시만 지나가겠습니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그래도 평일이라 걷는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고 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주말은 관광인파로 달리기 자체가 어려울 것 같아 보였다. 해변 열차길만 없으면 넓은 산책로를 여유롭게 뛰고 걸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변열차 대신 폐선로 산책길을 넓히고 자전거길로 만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2014년 동해남부선 폐선 구간 활용을 두고 시민들과 개발사업자 간의 갈등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산시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미포-송정 구간을 상업시설로 활용할 입장이었고 시민들은 시민 휴식공간으로 조성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당시 지방선거(2014년) 부산시장 후보자들 또한 지역의 주요한 이슈인 만큼 입장을 밝혔다. 부산시장 후보자들은 전원 상업개발을 반대하고 시민의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공동공약을 했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은 당선되자 말을 바꾸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미포-송정 폐선 구간은 해운대 블루라인파크라는 민간사업자가 들어와 관광지로 개발했다. 산책로는 좁고 철로에 관광 해변열차와 스카이 캡슐을 설치하여 관광지의 모습으로 말이다. 관광 이윤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민간사업자에게 팔아 지역에 수렴되지 않는다. 대신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내일로패스 고객에게 블루라인파크 10% 할인권을 제공하는 것을 성공적인 업무협약(MOU)으로 생생을 내고 있다. 부산시와 해운대구민을 위한 공간은 좁은 산책로에 한정 짓고, 관광시설을 통한 민간기업 이윤 창출에 공공기관이 기여한 꼴이다.      

청사포-미포 방향 달리기를 위해 폐선 구간을 5월에 다시 방문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해변열차와 캡슐을 이용하고 있었다. 동해남부선로가 부산사람보다 외부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되어버린 것 같아 씁쓸했다. 해변열차를 타고 아름다운 풍경을 편하게 구경할 수 있지만 더 이상 폐선로를 거닐며 사진을 찍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브런치 식당에 격식 있는 옷차림이 필요한가요?     


쓸쓸함을 뒤로한 채 식사를 위해 브런치 식당을 검색했다. 송정에 유명한 브런치 식당은 '키치니토키친' 이라는 곳이 가장 위에 떴다. ‘베이컨 라이스’라는 특별한 메뉴가 있다고 해서 먹으러 식당 앞까지 갔지만 결국 들어가지 못했다. 선입견일 수 있지만 나는 브런치 가게는 편안한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레스토랑처럼 격식을 차려 옷을 입지 않아도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키치니토키친'은 달리기 후 체육복에 땀에 절어 모자를 쓰고 땀냄새 풀풀 풍기면서 들어갈 만한 식당이 아니었다. 식당 내부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 밖에서 힐끔힐끔 쳐다봤지만 내부 풍경을 볼 수가 없었다. 괜히 땀에 찌든 체육복을 입고 들어갔다가 다시 나오는 상황이 벌이 질까 봐 출입구 문을 열지 못했다. 아직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혼밥을 해보지 않았기에 이런 분위기에 혼브런치를 하기엔 부담스러웠다. 또한 유명 맛집으로 소문나서 인지 웨이팅도 길었다.(이후 검색을 해보니 테이블이 6개밖에 없어 언제나 웨이팅이 길다고 한다) 결국 포기하고 다음에 와이프랑 단정한 옷차림으로 방문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다른 식당으로 향했다. 


'키치니토키친' 바로 옆에 브런치 맛집으로 알려진 '거루캥테이블'이 있었다. 이 가게 또한 완전히 편안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요즘 생긴 가게는 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쓰다 보니 공간이 이쁘고 깔끔해 들어갈까 말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밖에서 내부 공간을 볼 수가 있었고 2층에는 야외 공간도 있어 식당 내부를 땀냄새로 가득 채우지 않아도 괜찮아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편안하게 들어가서 주문하고 브런치를 즐겼다.      

거루캥테이블 시그니처메뉴 '아메리칸치즈 크루아상'


역시 운동하고 먹는 음식은 맛있었다. 달리기와 브런치를 결합시켜 소풍처럼 즐기겠다는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송정을 뛰고 평일 내내 앞으로 뛰어야 할 아름다운 풍경과 기상천외한 브런치가 기다려졌다. 슬럼프에 빠진 나의 달리기는 아름다운 풍경과 브런치가 구원했다.  


장황하게 부울경을 뛰고 먹다 연재를 시작하고 한 달 후 1편을 쓰게 되었다. 단순한 관광지와 맛집을 소개하는 글이 되지 않게 노력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는가. 다음 편에 조금 더 풍부한 이야기를 실을 수 있도록 이야기가 있는 공간을 찾아봐야겠다. 


송정-청사포 달리기 기록
청사포-미포 달리기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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