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동저수지를 뛰고 먹다
러닝을 처음 시작할 때 하루하루 더 멀리 더 빠르게 뛸 수 있는 내가 대견했다. 일상에서 성취감을 달성하기 어려운데 러닝을 통해서는 노력한 만큼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1km 조차 뛰기 힘들었다. 하지만 2달 꾸준히 노력하니 5km 달리기가 가능해졌다. 그리고 6개월 부지런히 뛰니 10km를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었다. 점점 거리를 늘려가며 더 멀리 더 빨리 쉬지 않고 뛰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전문 러너는 속도에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뛰라고 조언한다. 달릴 때 옆 사람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숨차지 않도록 페이스 조절을 하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달리면 달릴수록 성장해나가고 더 빨리 더 멀리 뛸 수 있는데 천천히 뛰라니!
달리기를 시작하고 1년 차에 마라톤 대회를 신청하였다. 당시 코로나 상황이 심각해서 참가자 전원이 모여 대회를 개최하지 못했다. 대신 참가자들이 좋아하는 코스를 달리고 인증샷을 남기면 메달을 주는 대회 방식을 택하였다. 한창 달리기에 취미를 붙인 상황이라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하리라 생각하고 매일같이 연습했다. 10km를 1시간 안에 완주하기는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비대면 대회 당일 56분 54초에 결승점에 들어왔다. 당시 함께 뛰었던 참가자들 중에 가장 빨리 도착했다. 역시 달리기는 하면 되는구나라는 성취감에 취해 그날부터 더 멀리 더 빨리 뛰기 위해 노력했다.
심지어 살도 쑥쑥 빠졌다. 2021년 1월에 몸무게는 20년 전 고등학생 당시 날렵했던 80kg를 찍는 기적이 벌어졌다. 달리기를 통해 8kg를 1년 만에 감량하였다. 몸에 강도를 높여 더 빨리 더 멀리 뛰다 보니 살도 저절로 빠졌다. 당시 주변에서 “그렇게 많이 먹으면서 살이 쑥쑥 빠지는 이유가 뭐냐”라고 물었을 때 단연코 달리기라고 대답했다. 식단 조절 없이 살이 빠지는 이유는 온전히 달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2021년 하반기부터 달리기가 늘지 않았다. 오히려 실력이 줄었다. 10km 달리기를 하고 나면 하루 종일 피곤해서 다른 일을 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속도 또한 1km에 5분 50초를 달렸는데 6분을 넘어 6분 30초 때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노동조합 일과 결혼 준비로 바쁘다는 핑계로 달리기를 자주 뛰지 못해 그런 거라 생각했다.
그 후에도 더 이상 실력이 늘지 않았고 몸의 변화도 있지 않았다. 심지어 몸도 8kg를 감량했지만 다시 88kg로 돌아와 버렸다. 러닝을 하는 것도 즐겁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보다 뛰지 못해 좌절감이 들었다. 의무적으로 1주일에 1~2회 뛰고 있지만 상쾌하지 않았다. 이대로 안 되겠다는 생각에 새로운 방법을 고민했다.
올해 4월부터 달리기 방법을 바꾸었다. 아름다운 명소를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4~5월 아름다운 풍경의 송정과 송도 등을 찾아다녔다. 달리기 후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했다. 송정과 미포 동해남부선을 뛰고 난 후 글을 쓰기도 했다. 나름 새로운 방식으로 달리기를 하니 즐거웠다.
하지만 이 방식 또한 달리기 자체가 즐거운 게 아니라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뛰는 나를 발견했다. 아차 싶어 지금까지 달리기를 되돌아보았다. 지금까지 더 멀리 더 빨리 뛰기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단 한 번도 달리는 중에 멈추거나 걸어서 주변 풍경을 즐기지 않았다. 달리기를 시작하면 무조건 멈추지 않고 5km, 10km를 뛰었다. 애플워치 시계는 초별로 기록을 하고 있는데 멈춘다는 것은 스스로 용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나의 달리기 습관은 마치 일을 하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달리기를 뭔가 끝임 없이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해야 하는 일과 같이 말이다.
깨달음을 얻고 차를 끌고 유명한 명소를 가기보다 집 근처 아름다운 공간을 검색해보았다. 남산동에 거주하면서 회동저수지를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인터넷에 검색하니 집에서 걸어서 20분 거리에 저수지가 있었다.
남산동에서 회동저수지가 있는 선동의 상현마을까지 천천히 걸었다. 러닝 복장으로 깔맞춤 하여 집을 나섰지만 바로 뛰지 않고 걸었다. 남산동은 지하철이 있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거주지이다. 서면과 부산대 앞처럼 왁작지껄한 동네는 아니지만 도심 속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하지만 남산동에서 선동으로 넘어가는 순간 여기가 금정구가 맞나 싶었다. 높은 건물이 없고 풀과 밭 그리고 물이 가득한 농촌 같았다.
상현마을까지 천천히 걸고 회동저수지 둘레길부터는 뛰었다. 달리는 중에도 눈에 오랫동안 담고 싶은 풍경이 있으면 멈춰서 물멍을 때렸다. 여전히 쉬지 않고 5km를 뛰어야 한다는 강박은 있었지만, 이전과 달리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름다운 회동저수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집에서 30분만 걸으면 이렇게 이쁘고 평온한 저수지를 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그리고 주변 사람도 보이지 시작했다. 날씨 좋은 날에 가족, 연인, 친구와 삼삼오오 나와 자연을 즐기고 있었다. 도심 속 피곤한 표정과 무거운 발걸음의 사람들과 달리 자연 속 사람들은 너도 나도 표정이 밝았다. 그리고 발걸음도 가벼웠다.
자연을 충분히 즐기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모습에 나도 달리기에 목숨을 걸기보다 자주 멈춰서 주변 풍경을 즐기는데 시간을 더 투여했다. 보통 5km 달리기를 시작하면 35분 정도 뛰고 집으로 복귀하면 넉넉히 1시간 안에 끝이 난다. 하지만 회동저수지에서는 3시간을 보냈다. 천천히 러닝 코스를 즐기다 보니 시간이 금방 갔다.
페스츄리에 선택과 집중을 한 '선유도원' 카페
주변 맛집 탐색도 빠질 수 없었다. 회동저수지는 오랫동안 중년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하다. 오리불고기와 백숙 등의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 많았다. 하지만 혼자 오리요리를 먹으러 식당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대신 주변 카페를 검색하니 최근 새로 생긴 ‘선유도원’이 나와 그곳으로 갔다. 밖에서 보면 건물 자체가 최근 트렌드에 따라 매우 핫하다. 메뉴는 보통 커피와 음료가 있었고 시그니처는 페스츄리 빵이었다. 보통 빵을 전문적으로 파는 카페에는 종류가 다양하다. 페스츄리, 케익, 쿠키, 머핀 등 골라 먹는 재미를 주는 카페가 많다. 하지만 선유도원은 페스츄리 빵과 케익만 팔았다. 가게에서 대표적으로 내놓은 메뉴인만큼 페스츄리 빵이 맛있었다.
요즘 노동운동을 하면서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을 곱씹어 생각한다. 20대에 학생운동할 때는 세상을 바꾸는 활동가는 모든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강했다. 노동, 환경, 빈민, 장애인, 성소수자 등의 문제로 싸우는 사람들의 집회에 참석하였다. 물론 그 경험을 통해서 오늘의 내가 있다. 하지만 당시 과다한 일정 속에 버티지 못하고 운동 판을 떠난 친구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힘들다는 동료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는 말보다 나처럼 해내지 못한다고 타박만 줬다. 만약 선유도원의 페스츄리 빵처럼 학생운동 또한 선택과 집중을 했으면 지금 내 주변에 더 많은 동지들이 남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노조 활동을 하면서도 조합원들이 무리한 일정으로 불만을 표출할 때가 있다. 과거의 실수를 반복할 수 없다. 조합원 의견을 수렴해서 노조 일정을 배치해야겠다는 다짐을 선유도원 페스츄리 빵을 보면서 했다.
달리기를 마치 정복해야 할 무엇인가로 생각하고 뛸 때와 달리 멈추고 주변을 충분히 즐기니 내 삶에 대한 성찰까지 가능해졌다. 부울경을 먹고 뛰다 연재 글에 방향도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는 것 같다. 유료광고와 같은 유명 관광지와 맛집 소개를 넘어 내가 고민하는 지점을 조금씩 풀어나고 있다.
지난주에 끝난 ‘나의 해방일지’ 드라마에 염미정이라는 주인공이 이런 말을 했다.
“낯선 공간에 가면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했던 생각이 갑자기 떠올라요. 그래서 나는 가끔은 낯선 공간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6월에는 또 어떤 공간에서 우연한 생각을 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