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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성민 Aug 07. 2022

급똥러들을 위한 아침 달리기 지침서

아침 달리기를 시작하며

‘부울경을 뛰고 먹다’ 연재를 6월에 쓰고 2달간 쓰지 못했다. 그 사이 여름이 찾아왔다. 6월까지는 더워도 오후 시간에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7월이 되자 오후에 달리기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저녁에만 달리기에는 운동할 수 있는 날이 며칠 되지 않았다. 저녁마다 있는 노동조합 일정으로 평일에는 사실상 달리기를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렇다고 아침 러닝을 결심하지 못했다. 노동조합에 일을 시작하고 2년이 다되어가는데 현재 생활 루틴을 깨기 싫었다. 아침에 무리하게 달리기를 했다가 바쁜 하루를 소화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우연히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아침에 요가를 꾸준히 하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달리기가 숙제가 되지 않기 위해서


동료는 노동조합에서 일을 하고 아이도 키우는 결혼한 여성이었다. 낮시간에는 일을 해야 하고 퇴근 후에는 육아에 전념해야 하기에 아침 이외 자신의 시간이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운동을 저녁에 하겠다고 미루게 되면 마치 숙제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래서 아이가 깨기 전에 거실에서 요가를 매일 한다고 말했다. 아침 요가를 하지 못하는 날은 숙제를 하지 못한 학생처럼 하루 종일 기분도 별로라고 했다.

     

나도 달리기를 숙제처럼 느껴 동료의 말에 공감했다. 오늘 꼭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미루다 보면 일주일에 기껏해야 1~2번 밖에 달리지 못했다. 목표는 큰데 현실 일정 고려 없이 편성하다 보면 숙제는 계속 미뤄졌다.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은 늘 미루어진 숙제 같았다. 물론 학생 때처럼 숙제를 하지 않으면 혼내는 선생님이 있는 건 아니지만 나 스스로 자존감이 하락했다. 스스로 약속한 일 하나 제대로 못하는데 뭘 잘할 수 있겠나는 싶었다.     


동료의 대화에서 자극을 받고 7월부터 아침 달리기를 시작했다. 주 5일 이상 무조건 아침에 뛰어 숙제처럼 미뤄두지 않겠다고 스스로 약속했다. 평소 달리던 거리보다 적게 달렸다. 5km 이상 달리면 하루가 피곤할 것 같아 딱 3km 뛰자고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다행히 1주일에 5일 이상 뛰어도 별로 피곤하지 않았다. 몸에 큰 변화가 온건 아니지만 하루가 상쾌하고 자신감도 붙었다. 더 이상 미룰 숙제도 없고 아침 달리기를 해냈다는 성취감을 얻었다.      


하지만 아침 러닝에 복병을 만났다.

     

모닝 급똥은 전날 무엇을 먹었느냐에 달렸다     


생각보다 알람 소리에 듣고 일어나 밖으로 나서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복병은 급똥이었다. 나는 모닝 대변을 보는 습관이 있다. 주로 아침 먹은 후에 대변을 보기 때문에 공복에 설마 나오겠나 싶었다. 하지만 2km쯤 뛰니 신호가 왔다. 배가 부글부글 끊고 배가 아파왔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중학생 때 모닝 급똥으로 낭패를 봤던 순간이 떠올랐다.


중학생 때 매일 점심시간과 학교 마치고 친구들과 농구를 했다. 방학 때는 학교에 나가지 않으니 아침에 혼자 연습을 하곤 했다. 23년 전 그날도 배가 아파왔다. 별일 없겠지라고 생각하고 참고 슛을 던졌다. 하지만 바지에 지려버렸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 박해일이 "붕괴되었어요" 라는 대사가 있는데 딱 내 상황과 같았다. 나는 붕괴되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화장실을 급하게 찾았지만 아침 시간 모든 화장실은 문이 닫혀 있었다. 당시 휴대폰도 없었다. 부끄러워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었다. 붕괴된 멘털을 부여잡고 똥 싼 바지를 끌고 집으로 향했다. 다행히 이른 아침이라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마주치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타이트한 긴바지를 입어 바닥에 흐르진 않았다. 무사히 상황을 모면했지만 그날의 기억으로 나는 아침운동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급똥 때문에....     


중학생 때 급똥 사건으로 인해 어딜가든 화장실을 먼저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아침 달리기를 시작할 때도 화장실부터 찾았다. 주유소 화장실과 지하철역 화장실, 카페 등 주변에 화장실이 많았다. 다행히 이번에는 바지에 대변을 지리진 않았다. 무사히 화장실에서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매번 달리기 중에 배가 아프면 운동이 되겠나 싶었다. 늘 불안한 마음에 달리기를 하기도 두려웠다.


문제는 전날 먹은 음식이었다. 저녁에 편안한 한식을 먹거나 소식하면 다음날 급똥 신호가 오지 않았다. 하지만 전날 술을 마시거나, 기름진 삼겹살 치킨 피자 등을 먹으면 무조건 신호가 왔다. 꼭 신호는 달리기를 뛰는 중에 와서 난감했다.       


처음에는 저녁을 무조건 간소하게 먹어야지라고 다짐했다. 하지만 직장을 다니는 30대가 기름진 음식을 피해 갈 수 있는가? 조합원들과 모임 후 뒤풀이가 있는 날에는 무조건 기름진 음식과 술을 먹게 되었다. 술은 그래도 많이 줄였는데 기름진 음식은 줄일 수 없었다. 평소 식탐이 많아 배가 고프면 허겁지겁 먹다 보면 삼겹살 5인분은 거뜬히 먹는 날이 많았다. 다음날 아침 배가 안 아플 수 없다.      


소식을 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고민 끝에 전날 저녁에 무거운 음식을 먹으면 무조건 화장실을 먼저 가자고 결론을 내렸다.  이렇게 하니 전보다 급똥 신호는 줄었고 즐겁고 편안한 아침 달리기를 할 수 있었다.     

 

급똥러들에게 아침 운동은 쉽지 않았다. 단순히 화장실을 미리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날 먹은 음식을 꼭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몸에 축적되어 있는 음식물이 운동 중에 항문으로 튀어나올지 모르니^^     


우리의 몸은 솔직하다. 장은 나쁜 것을 바로 뱉어 낸다. 식탐을 줄여 급똥 하지 않게 하루하루 소식해야겠다.  


이상 급똥러들을 위한 아침 달리기 지침서였다.     


아침 달리기로 인해 오랜만에 월 50km 이상 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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