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상에서 회복하고 다시 뛰다
오랜만에 운동화에 끈을 묶고 밖으로 나갔다. 엉덩이 통증으로 인해 병원에서 운동 금지 통보를 받고 2달 동안 달리기를 하지 못했다. 다행히 두 달 만에 상태는 호전되었고 병원에서 달리기를 해도 된다는 기쁜 소식을 접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달리기를 하려니 몸이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엉덩이 통증이 남아 있으니 겨울은 패스하자는 마음이 컸다. 지금까지 달리면서 추운 겨울이 제일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때는 다른 사람 조언이 필요하다. 유튜브 ‘마라닉티비’를 시청했다. 역시 마라닉티비는 달리기를 부추기는 코치와 같다. 영상 시청 후 바로 밖으로 나갔다.
겨울 달리기는 예상대로 힘들었다. 보통 여름과 봄가을은 대충 체육복 입고 모자를 쓰고 나가면 된다. 하지만 겨울은 달랐다. 매일 달릴 때마다 기온 확인이 필수였다. 부산 같은 경우에는 영하로 날씨가 떨어지는 날이 1주일에 2~3일에 그쳤다. 그렇다 보니 두꺼운 옷을 입으면 낭패다. 적당한 두께의 옷과 방한 도구가 필요하다. 특히 겨울에 귀부터 추위를 느낀다. 달리기를 마치고 걸어서 돌아오는 길에 귀가 시려 힘들었던 기억이 한두 번이 아니다. 역시 이번에도 귀가 시렸다. 영상의 날씨라 귀마개를 챙기지 않았는데 돌아오는 길에 귀 시려서 죽는 줄 알았다.
겨울 달리기는 모자 혹은 귀마개가 필수다. 그렇다고 두꺼운 패딩을 입고 뛰면 몸이 쉽게 지친다. 배테랑들은 반바지를 입고 뛴다고 한다. 조금만 뛰어도 열이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같이 3km~5km 정도만 뛰는 초보에겐 반바지는 무리다. 얕은 긴바지와 긴팔과 패딩베스트가 제일 적당한 복장이다. 여기서 또 주의해야 할 점은 기모가 들어 있는 바지를 입으면 하체가 무거워 더 힘들다.
2달 만에 달리기라 무리하지 않고 3km만 뛰었다. 그럼에도 완주가 쉽지 않았다. 의욕이 앞서 평소 페이스보다 빠르게 달렸다. 1km에 5분 50초가 나올 정도로 달렸다. 역시 막판 2.5km를 넘어가자 숨이 차고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달렸다.
달리기를 하면서 끈기가 생겼다. 과거에 나는 뛰다가 숨이 차면 멈췄을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귀찮고 힘든 일을 포기하는 기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특히 무엇을 만드는 미술 시간이면 늘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대충 해버리고 운동장에 나가서 뛰어놀 생각만 했다. 이런 기질을 고칠 생각을 하지 못했다. 20대 학생운동 시절에도 앞에 나서는 일은 좋아했지만 손이 많이 가는 실무는 다른 사람 몫이었다. 운 좋게도 주변에 꼼꼼하고 손재주 좋은 사람들이 늘 따라다녀 일을 추진하는데 별 문제없었다.
그러나 30대 중반 선거에 출마를 했을 때는 세세한 실무를 피할 수 없었다. 선거 사무장을 따로 두긴 했지만 작은 정당에서는 후보 스스로 챙겨할 내용이 많았다. 우여곡절이 많았다. 피켓 문구에 오타가 나서 주문을 다시 했고, 현수막을 제대로 붙이지 않아 끈이 풀려 민원을 자주 받았다. 도저히 이런 기질을 그대로 두다간 삶이 피곤해질 것 같았다.
2019년 달리기를 시작하고 변화를 느꼈다. 달리기를 하며 하루하루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 보통 잘 풀리지 않는 일과 다르게 달리기는 하루하루 늘었다. 1km만 뛰어도 가슴이 멎을 것 같았는데 2달 만에 5km를 띄고 6개월 만에 10km들 뛸 수 있게 되었다. 끈기 없는 나의 기질 또한 변하기 시작했다.
늘 성격이 급해 시간이 촉박하면 일을 잘 마무리 짓지 못했다. 대충 두고 포기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때마다 달리기를 하며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을 떠올랐다. 조금만 버티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감각을 달리기를 통해 느꼈기에 포기하고 싶을때 달린다고 생각다. 신기하게도 점점 버티는 힘이 늘었다.
그렇다고 칠칠맞은 성격이 꼼꼼한 성격으로 변한 것은 아니다. 다만 포기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조금 더 끈기 있게 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다. 달리기는 육체만 건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멘탈을 강화하는데도 도움을 준다.
2022년 달리기를 결산해보니 전년도보다 뛰었던 횟수와 거리가 짧았다. 2020년에 160회를 뛰며 1,001km, 2021년에는 91회를 뛰며 553.2km를 달렸다. 2022년에는 80회를 뛰며 305.7km를 뛰었다.
올해 성과가 줄었던 것은 부상뿐만이 아니었다. 달리기를 일처럼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을 바꿔야겠다는 다짐 때문이었다. 오래오래 즐겁게 달릴 수 있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자고 했다. 첫 번째는 속도와 거리에 집착하지 않고 경치 좋은 곳을 뛰며 맛있는 브런치를 먹는게 목표였다. 두 번째는 달리기를 숙제처럼 미뤄두지 않고 아침 일찍 뛰자는 것이었다.
결산을 하면 상반기는 경치 좋은 공간에서 뛰고 맛있는 브런치를 먹기도 했다. 하지만 하반기는 일이 바빠지며 주말에 시간 내서 여유 있게 뛰지 못했다. 그래서 달리기를 숙제처럼 미루지 않고 평일 아침 시간을 활용해서 달리기를 했다.
내년 달리기는 2022년 터득한 ‘즐거운 달리기’를 이어가며 10km 마라톤 대회에 출전할 것을 결심해 본다. 2019년 달리기를 시작하고 코로나19로 인해 달리기 대회를 한번도 나가지 못했다. 건강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뛰는 일을 내년에 꼭 하고 싶다. 건강한 기운을 듬뿍 느끼고 싶다.
2023년도 건강한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PS. 금정구 남산동 브런치 맛집을 소개한다. '프롬엘키친' 이라는 범어사역 인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