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를 읽고
2G 폰을 쓰는 시절 업무는 더뎠다.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던 시절인데 기자회견만 하면 기자들이 사진을 바로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컴퓨터를 이용해야 보낼 수 있어 디지털카메라를 들고 피시방에 긴급하게 갔던 기억이 난다. 이럴때마자 폰에 사진을 찍고 바로 보내는 기능이 생겼으면 하고 꿈꿨다. 꿈은 꾸었지만 현실로 될 거라 예상을 못했다. 하지만 과학기술은 빠르게 변했고 2011년 스마트폰을 내 손에 구할 수 있었다.
스마트폰은 실시간 메일 쓰기, 사진을 찍어 바로 보내기 등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카카오톡은 소통의 혁명을 가져왔다. 카카오톡 이전에는 네이트온 등과 같은 컴퓨터 메신저를 통해 소통해 왔다. 네이트온은 컴퓨터에 사람이 접속해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실시간 소통은 어려웠다. 먼저 문자로 네이트온에 접속해 보라고 보채서 친구들과 단체채팅을 했다. 카카오톡 출시로 여러 사람들과 수많은 채팅방을 만들어 동시 소통이 가능해졌다. 기술의 혁신에 찬사를 보냈다.
2014년 검찰과 경찰이 노동당 정진우 전 부대표의 카카오톡을 압수수색한 사건이 일어났다. 누구와 소통을 했는지 뿐만 아니라 대화내역까지 들여다봤다. 명백한 진보정치인에 대한 사이버 사찰이었다. 이 사건 이후 사회운동가들의 소통방은 텔레그램으로 옮겼다. 텔레그램은 경찰이 사찰할 수 없는 보안시스템을 구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텔레그램의 철통 보안은 또 다른 문제를 낳았다.
2019년 불법촬영물을 공유하고 판매했던 'N 번방' 사건이 텔레그램을 통해 진행되었다. 충격이었다. 기술의 발전과 철통 같은 보안시스템을 이용해서 더 악랄하게 여성을 착취하고 있었다. 기술의 발전을 무조건 찬양했던 과거가 부끄러워졌다.
대런 바일러가 쓰고 홍명교 동지가 옮긴 <신장 위구르 디스토피아> 책을 보면 기술 발전이 어떻게 인권 탄압에 쓰이는지 자세히 서술되어 있다. 저자는 숫자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직접 신장 위구르 인권 탄압을 당했던 당사자들을 증언을 통한 인류학 보고서와 같이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상황을 전달한다.
"안전도시의 통제 사회에서는 기술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둔 힘의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삶을 예측할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기술이 사람들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일상을 초월한 자신의 권력을 표준화하기 시작한다. 복잡하게 자동화된 블랙박스에서 사유할 공간이 사라지면, 그 시스템은 진부하고도 잔혹해지며 학대를 위한 엄청난 능력을 배태한다.-74p"
<새로운 세상의 문 앞에서> 홍세화 선생님은 20세기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생산수단을 누가 소유할 것인가가 중요했다면 이제는 빅데이터를 누가 장악할 것인가의 물음이 중요해졌다는 이야기를 한다. 기술 발전이 선과 악의 문제로 나눌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제하는 시스템을 문제가 더 중요하다. 민주적 통제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기술은 약자와 소수자를 억압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 앞에서도 우리는 정치의 문제를 빼먹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