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을 읽고
2023년 7월 폭염에 선풍기가 전사했다. 2017년에 구입한 제품이라 5년 썼으니 보내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빠듯한 살림에 한 푼이라도 아쉬워 수리할 방법을 찾아보았다.
문제는 선풍기가 돌아가지 않고 20분 지나야 켜져서이다. 유튜브에 찾아보니 콘덴서를 교체하면 수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찾았다. 콘덴서를 오프라인에서 살 수는 없었다. 온라인에서 사려고 하니 2000원짜리 물건을 택배비까지 주면서 사려니 아까웠다. 돈도 아까웠고 더운 날씨에 선풍기를 분해해서 콘덴서를 바꿔 끼우려고 하니 감당이 되지 않았다. 그 돈과 노동시간이면 새로운 선풍기 하나 살 값이라고 판단해 고장 난 선풍기를 버렸다.
고장 난 선풍기를 폐기하려고 집 앞마당에 내놓고 폐기물 업체에게 연락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트럭을 타고 지나가는 아저씨가 나를 불렀다.
"저기 아저씨 여기 선풍기 가져가도 됩니까?"
나는 얼른 가져가라고 했다. 그때 아저씨 표정이 매우 신난 표정이었다."심봤다"라고 외치는 심마니 같았다. 이상했다. 선풍기를 버리는 사람이 기분이 후련해야 하는데 주워가는 사람이 더 신났으니 말이다.
이런 찜찜한 기분을 후지하라 다쓰시의 <분해의 철학>을 읽고 깨닫게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면서 철저히 자본주의 사회 중심으로 사고했다. 선풍기를 분해해서 고쳐 사용하는 비용보다 새로 사는 비용이 다르지 않다고 판단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의 사고방식에는 생산과 소비만 있지 분해가 없었다. 물건을 사고 수명이 다되면 쓰고 버리고 또 새로운 제품을 산다.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 또한 새로운 폰으로 바꾸기 위해 속으로 빨리 고장나라고 외치고 있으니 말이다. 생산과 소비보다 중요한 분해에 세계에 대해 책을 통해서 느끼게 되었다.
사회운동을 시작하면서 마르크스 책을 만났다. 주요 저서를 보며 진보는 '생산'이 중요하다고 배웠다. 끝임 없는 생산이 과열이 될 때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혁명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 발전되지만 과열이 되어도 자동으로 새로운 세상으로 이행하지 않았다. 결국 자본주의를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과학의 출현과 발전과 생산이 아닌 분해가 필요한 게 아닌가 라는 짧은 생각을 했다. 책 서문에서 말한 청소 아저씨의 쓰레기를 분해해야 아이들의 장난감과 새로운 도구를 만들어내는 이야기가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끝으로 분해되지 않는 것을 창출하는 인간 사회가 우려된다. 플라스틱과, 핵발전소, 갯벌 매립 등 자연 스스로 분해하지 못하는 것을 계속 생산해 낸다. 분해하지 못하는 것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는 싸움을 하는 것 또한 진보운동의 주요한 과제가 되어야 한다.
<분해의 철학>은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터부시 했던 부분에 대한 소중한 기록이다. 철학책이 이렇게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례로 이루어져 있어 이해하는데 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