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와 무지의 역사
코로나의 2차 대유행이다. 하루 종일 비대면으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나 스스로에게 반문할 때가 있다. 그리고 허무해질 때가 있다. 이런 저런 생각의 사슬들 속에 나와 단절된 세상은 맹목적인 믿음이 이성적인 판단을 그르치고 무지가 광기를 불러 일으키는 현상들을 맞이하고 있다.
한 사람의 국민으로 생각해보면, 대한민국은 운이 좋은 나라이다. IMF 사태를 맞이하긴 했지만, 세계화의 혜택을 가장 많이 본 나라 중 하나이고, 인터넷의 발달이 한류라는 문화 컨텐츠를 만들었다. 인접한 중국의 급격한 성장에 국가 무역 수출이 급격하게 증가하여 중국이 제1 무역 수출국으로 바뀌기도 하고, 중국과 미국의 무역 마찰에서 미국의 압박으로 상대적으로 큰 혜택을 보는 중국의 주변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해는 코로나로 글로벌하게 암울한 경제 상황속에서 방역에 성공하며, 수출까지 이어져 OECD 국가들 중에 그나마 선방하는 나라 중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내부적으로 보면, 여전히 답답한 부분들이 몇 가지 있다. 이를 몇자 적어 보았다.
첫째, 국가는 민주화 되고 있지만, 정부와 국민의 소통은 늘 부재해 왔다. 소통의 부재는 국민이 원하는 것 보다, 정부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그 비전을 창출하려고 한다. 프랑스 철학적인 부분을 인용하자면, 샤르트르(실존적 세계)적인 사고보다는 메를로-퐁티적인 생각(타자와 세계가 공존하는 세계)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정부가 여전히 세계(국민)와 분리된 자아에 살고 있는 듯 하다. 바꾸어 말하자면, (우리가 사는) 세계는 갈등과 투쟁 밖에 없는 자아(국가)의 기투(Project)의 대상이 아니라, 자아와 세계의 특수성을 통해 서로 이해하고 보편성에 도달하는 그런 공간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특수성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 (좌우 양쪽에서)무지와 광기의 역사를 만들어 내고 있다.
둘째, 정부의 기조와는 반대로 우리는 노동의 가치보다 자본의 가치에 대해 최근 몇 년 사이에 더욱 더 배우고 있다. 사회초년생들의 비트코인 광풍, 갭투자가 불러일으킨 아줌마들의 묻지마 부동산 투자, 부동산에서 실패한 계층의 동학 개미운동과 성장주라는 명목으로 비트코인의 재현을 불러일으킨 실체없는 주식 가치의 폭등, 이러한 현상들은 노동의 생산성 향상을 더 이상 믿지 않게 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레이 달리오가 언급했듯이 자본이득은 장기적으로 보면, short term하게 반복적이다. 근본적인 사이클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생산성의 향상이다. 그러나, 근본적인 생산성의 향상은 항상 점진적이고, 그 결과가 서서히 드러난다. 또한, 자본이 불러들이는 가치보다 노력대비 달콤하지 않다. 정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점진적인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위해, 국가의 fundamental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고,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는 큰 문제는 정부의 시장에 대한 불신임이다. 한편으로 보면, 정부는 시장을 믿지 않는 다기 보다는 이해하지 못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 정부는 한번도 시장편에 있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시장편에 있어본 스텝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큰 정부가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인과론적인 세계관으로 그 범위가 매우 한정적이다. 현재의 복잡계적인 세계에서는 확률론적인 세계관이 보다 잘 먹힌다. 시장의 확률에 그 기능의 일부를 맡겨보는 법을 배우면 좋겠다. 그렇다고 정부의 역할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시장에서의 정책의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상황들에 대한 training or simulation을 통해 inferencing을 잘 할 수 있도록 시장을 돕는 것도 한 방편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