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에 대해

선택의 문제와 현실의 안타까움

by 벼룩스

요즘은 정부를 보면 너무 답답하고 안타깝다. 도대체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이렇게까지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애초의 시작은 기득권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부터였을꺼 같다. 기득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챙기는 이기적인 인간이고, 이를 지켜내거나 보호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그 결과 중의 하나가 "전문성 = 기득권"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고, 정부의 주요 역할을 비전문가, 비주류로 뽑기시작하면서 정책과 그 실효성에 대한 효과와 파장에 대해 이해도가 부족했을 것 같다. 대표적인 것이 경제관련 관료를 뽑는데, 소비자 권익을 위해 힘쓰는 비주류 경제학자을 선택하면서 복지정책을 경제 정책처럼 포장해서 소득주도성장이라는 가치를 내 걸었던 것이 그 예인 것 같다. 복지정책이면, 복지정책이라고 당당하게 이야기 하고 사회적 합의를 구하면 되는 것을 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이렇게 정치공학적인 접근을 내 거는 것은 문득 보면, 러닝코스트를 지불하고 과거의 여당한테 정치 공학을 배운 것 같다. 이러한 실무진에 대한 선택의 결과, 현실적이지 않은 정책들이 나오게 되고, 그에 따른 정책의 실패를 동반한 것 같다. 그리고 그에 대해 실패를 인정하지 못하고 소통하지 않는 비겁한 모습을 보이게 되는 것 같다. (내 의도와 마음은 그게 아니었다.)


현재의 여당은 크게 3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다. 낭만적이고, 무능하고, 비겁하다. 이에 반해 현재의 야당은 탐욕적이고, 세속적이며, 뻔뻔하다.(그래서 슬프게도 대안이 없다. 다만 헤겔식 방안이 먹히길 기대해 본다.) 낭만적인 측면에서 보면, 예전에 학생운동하는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 시절의 프레임에 갚혀 있는 듯 하다. 낭만주의의 가장 큰 특징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며, 비장미 숭고미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다. 이를 반영하듯, 70년대 80년대 학생운동하듯이 뭔가를 쟁취해야 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최저시급도 그러하고 52시간도 그러하다. 급하게 뭔가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많다. 내가 아니면 안 되고 사회 시스템의 투명성과 정화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런 낭만주의를 기업과 자영업자, 가진자들에 강요하고 정당화를 하는 것 같다. 박영선 시장 후보가 말했다는 야간 무인 편의점 도입 이야기를 들어보면, 무인 편의점을 통해 밤에 아르바이트 생이 힘들이지 않고 낮에 일하고 밤에 세이빙된 비용으로 낮시간에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에 인건비를 올려줄 수 있어서 좋다는 발언은 정말 낭만적이다. 이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낭만성 때문에 좋은 의도로 진행했던 것들이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서, 무능함이 되고, 이 무능함이 다시 모여 비겁해지게 된다. 차라리 세속적이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파악하고 (본인의 본능=이기심을 따라가면) 실효성 있는 정책이 나왔을 꺼고, 조금 더 뻔뻔했더라면, 국민들과 소통했을 것이다.


정말 몰랐을까? 그게 가장 궁금하다. 모든 전문가들이 작년 하반기 부터 부동산 가격이 내린다고 대체로 전망을 했었다. 그 이유는 간단하게 임대 수익률을 계산해 보면 된다고 하는데, 기본적으로 집값대비해서 2~3% 정도의 수익률은 최소한 나와야 부동산 투기꾼 혹은 투자자들이 투자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집값이 너무 올라서 현재는 1~2%이고 부동산의 현금화나 정부 정책의 리스크를 고려하면 차라리 은행에 예금하는 것이 더 나을 꺼라고 말이다. 그 와중에 적절한 시점을 놓친 정부의 임대차 3법이 내려야 할 시점의 집값을 수요 공급에 의해서 더 오르게 했다는 것이 대부분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부동산을 놓고보면 얼마나 많은 잘못된 정책들이 역효과를 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에 따른 얼마나 큰 사회적 계층화를 아이러니 하게도 만들어 냈는지 알 수 있다. 그 원인은 시장을 믿지 못하고 정부가 직접해야 어렵고 힘든 사람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는 어떤 비장한 낭만주의적인 결의 때문인 것 같다. 권력은 나눠가질 수록 공평해진다. 그런데 정부가 뭔가를 주도해서 할려고 하면 조직은 커질 수 밖에 없다. 검찰의 권력이 커서 나누기를 원했다면, 기능을 나눠서 조직을 쪼개면 된다. 또 하나의 권력이 생길 필요가 없다. 나는 선하니까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그런 비장함이 박정희를 만들었다. 그리고 숭고하게 죽었다. 괴델의 역설처럼 a를 견제하기 위해 또 다른 차원의 b를 만들면, 결국에는 한사람이 통치하는 철인정치 밖에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 내려놓고 믿는 것이 리더에겐 중요하다.


안타깝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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