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가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해서...
요즘에는 의욕이 많이 없어진다. 나이 탓인지, 세상의 변화에 할 수 있는 개인의 일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는 사실 때문인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큰 변화가 없지 않는 이상, 정해진 미래를 위해 아래쪽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현실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대한민국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흐름에서 한국이 그 속도, 기울기가 좀 더 빠를 뿐이라는 것이 그나마 조금 위안이 되는 부분이다.
70년대 80년대 생인 부모들, 모두가 부정하는 인정하기 싫은 사실 중의 하나는 우리의 자녀들은 우리보다 더 못 사는 최초의 세대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만일 그러하더라고 내 자식은 예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나라가 동일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다수결을 통한 해결책들은 포퓰리즘과 복지의 줄타기에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인, 이기심, 또 한편으로는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인해, 항상 그 정도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트럼프의 관세가 이를 부채질한다. 임기가 정해진 일, 국민의 투표가 중요한 일은 장기적인 해결책보다는 단기적인 해결책에 항상 중점을 두고, 정작 중요한 구조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항상 미루거나 실패한다. 단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위해서는 돈을 푸는 것보다 더 좋은 해결책은 없다. (미래는 그들의 삶을 대신하지 않는다. 오직 현재만이 대신한다.) 그리고 최근의 관세문제에서 돈을 많이 풀어서 관세 효과를 상쇄할려는 것이 하나의 국가별 전략으로 나오고 있어서, 돈을 푸는 것에 대해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과 더불어 또 하나의 정당성을 가저다 주게 된다. 그 결과, 미래세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세금을 내야 한다. 미래 세대가 잃어 버리게 되는 것 중의 하나의 자본의 축적이 노동의 축적시간 보다 빨라져서 부가 부모세대에 남게 되는 현상이 생긴다. (그래서 똘똘한 한채에, 서울의 한강변 아파트 한채에 더 집착하게 한다.)
또 하나 미래 세대가 잃게 되는 것은 AI로 인해 잃게 되는 것들과 관련이 있다. 세계화 시대에는 어떻게 글로벌 인재가 되는냐? (누가 영어를 더 잘하느냐 - 그래서 부모 세대의 경험으로 애들을 영어 유치원에 열심히 보낸다. 미래에는 경쟁의 원천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였지만, 그 다음 세대에서는 어떻게 기계, AI 와의 경쟁에서 더 좋은 결과를 특정 분야나 업무에서 보여 줄 수 있는 것인가로 경쟁의 핵심이 바뀌게 될 것이다. (잘못된 진로의 선택은 치명적이다. 기계와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인간은 계속해서 능력을 기계로 대체 하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생물학적인 능력을 잃으면서 기계를 통해 그 기능을 확장해 갔다. 계산기, 녹음기, 스마트폰 등으로 인간이 계산능력, 기억능력을 다른 쪽으로 확장 시켰고, 이제 AI가 등장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의 하나가 Summary 능력의 부재이다. 즉 한권의 두꺼운 책, 긴 문장 긴 문맥을 잃고 이해하고 그 중에 중요한 것들을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다. 독서를 유투브 요약으로 대체하고, 책의 요약은 chat gpt에 시키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문제 자체를 이해 못해서 문제를 못 푸는 문제가 생기거나, 시험을 위해 긴 문장을 읽지 않고, 미리 시험 지문에 나올만한 내용을 암기해서 문제를 푼다. 그래서 학원에 더욱 의지 하게 된다.) 이러한 능력이 예전 기억이나 계산 능력보다도 다른 차원의 좀 더 중요한 능력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왜냐하면 인간의 의사 결정과 연관된 능력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복잡한 상황과 변화를 읽고, 요약해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앞으로의 인간이 해야 될 일이기 때문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적은 사례로 새로운 변화에 의사 결정을 하는 일은 AI 보다는 아직까지는 사람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AI로 인한 또 하나의 문제점은 인사이트를 얻을 기회를, 창조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AI에게 대부분 넘겨주고 그런 기회는 소수의 선택받은 사람들에게로 넘어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양적변화는 질적변화를 초래하지만, 양적변화에서 질적변화로의 변화는 수많은 노가다와 반복 그리고 시행착오로 이루어 진다. 미국 기업들은 entry level에서 하는 이런 일들을 향후 5년 내에 40% 이상을 대체할 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그 비중은 더 커질 것 같다.)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런 entry level이 해야 할 그런 반복적인 일들을 인간에게 시킬 이유도 없다. 굳이 그래야 한다면, 그런 기회는 폐쇄적으로 오픈되어 소수의 엘리트, 혹은 기득권에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부모들은 우리애가 이런일 하라고 힘들게 공부시켜서 여기 취업시킨거 아니라고 항의 전화 하는 것보다, 우리애들에게 이런 엔트리 레벨 일을 하게 해 달라고 회사에 전화해서 부탁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시대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걱정되는 것 중의 하나는 이타주의가 더 이상 공동체를 유지하는 전략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전의 수렵시대부터 공동체 생활을 위해 인간은 적정수준에서의 이타성이 생존의 확율을 높인다는 것을 체득했고 지금의 사회에서도 그 전략은 어느 정도 잘 작동해 왔다. 하지만, AI라는 에이전트가 생기고 나면, 굳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시대가 될 것이고, 이기적 개인이 가장 좋은 생존의 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 1984, giver 이런 디스토피아 적인 세계가 될 것 같다는 불안이 점점 엄습하는 요즘이다. 민주주의는 포퓰리즘으로 가고, 국가는 보호주의 무역으로 가고, 나라별로 극우성향의 정권이 집권하고,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그것이 정당화 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트럼프와 같은 지도자가 미국을 점점 쇄락의 길로 가게 하고 그 후의 패권을 넘겨 받는 나라가 중국이 된다면, 한번도 민주화되지 않은 나라에서 세계 패권 국가가 탄생한 적이 없다는 전례를 깰 것이다. 그리고 AI 기술과 함께 빅브라더의 시대가 오고 모든 나라가 새로운 패러다임에 맞춰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잘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믿음만이 비관주의에 빠지지 않는 길임을 알기에 다시 긍정의 몇자로 마무리를 지어본다. 세상에는 그 중심이 있고, 그 중심은 항상 변화 한다. 하지만, 그 중심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삶에 대한 바람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인 불이익을 극복하고, 시대의 변화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하면서 성장해 왔다. 세계화의 가장 큰 이득을 본 나라 중의 하나이고, 중국의 성장으로 중진국의 함정을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받은 적도 있었고, 인터넷으로 게임산업이 득을 보고, 유튜브로 k-pop이 흥하고 넷플릭스로 우리나라의 문화가 메인스트림으로 자리잡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케데헌의 골든을 듣고 있자면, EJAE라는 싱어송라이터가 가지는 삶의 흔적이 느껴지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중심이 있다는 믿음에 대한 추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위로가 되고 공감이 된다.) 또 다른 변화에서도 우리는 살아 남을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위로와 공감에 기반한 연대가 필요하다. 나 자식만이 잘 사는 방법은 없다. 같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손해를 감소하고 희생을 해야 한다.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을 말이다. 그러면, 또 다시 케데헌 같은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 날 수 있을 꺼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