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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나무 Mar 12. 2022

유년의 기억 4

-숭인동에서 답십리로 이사-

   

제법 집답게 생긴 집으로 다시 이사한 곳은 답십리였다.

주택가 끝에 있는 집이었는데 대문 밖에는 배추밭이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배추밭 너머 언덕 위엔 코 없는 할아버지가 살았다. 그 할아버지는 유원지 같은 곳에서 파는 딸기코가 달린 플라스틱 가짜 안경을 끼고 다녔다. 한 번은 동네 아이들과 그 할아버지가 우물가에서 세수하는 걸 훔쳐보다가 코 없이 뻥뚤린 구멍 두 개만  보여 놀라 소리 지르며 도망쳤다.

할아버지가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이들이 "으-아~~ 악! "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던 장면이 떠오른다. 무서워 두근두근했던 거도 생각난다.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다. 할아버지는 고얀 놈들이라고 생각하며 쓸쓸한 기분이었겠지?    

 

1969년, 답십리에서 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사 오던 해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했지만, 전입 서류가 늦어져 일 년을 아깝게 놓쳤다.

내가 입학한 학교는 전농 국민학교. 나는 1학년 16반이었다. 입학식 날은 5촌 조카인 윤배가 내 보호자가 되어 주었다. 우리 엄마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바빴나 보다. 큰아버지의 맏손자인 5촌 조카는 나보다 12살 많았고 내가 입학한 전농 초등학교를 졸업한 어른이었다.


전농 국민학교는 학생 수가 엄청 많아 2부제 수업을 했다. 15반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 갈 때 16 반인 나는 집 앞 배추밭에서 놀았다. 

어느 날 손바닥보다 조금 큰 유리 조각을 주웠다. 나는 배추밭 맨 끝 고랑에서 열 걸음을 가서 땅을 판 후 배춧잎 한 장을 깔고 벌레 한 마리를 잡아넣고 유리로 덮고 관찰했다.  다른 사람들이 못 보게 유리 위를 흙으로 덮어 두고 며칠 동안 혼자 몰래 유리 밑에 있는 벌레를 보곤 했다. 그런데 잘 자라던 벌레가 감쪽같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 벌레는 나비가 되어 날아갔을까? 유리는 그대로 있었는데 참 이상했다.


배추밭 옆으로 얕은 시내가 있었다. 동그란 구멍이 규칙적으로 뚫려있는 철제 부유물을 타고 시냇물을 건너 하얀 천막으로 만든 공연장에 갔던 기억이 있다. 그 철망 같은 배는 사공도, 노도 없이 이쪽저쪽에서 서로 끈을 잡아당겨 움직이는 일종의 움직이는 다리 역할을 했던 거 같다.

아마도 내가 본 공연은 뭔가를 파는 장사꾼들이 하던 쇼가 아닐까 싶다. 나일론 바가지(플라스틱 바가지를 그땐 그렇게 불렀던 거 같다.)도 주고 수세미 같은 거도 주고, 노래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거기에 누구랑 갔을까? 여럿이 몰려갔던 거 같은데 엄마였는지, 동생이었는지 혹은 친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루는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이상하게 생긴 아저씨가 들어와서 쌀을 좀 달라고 했다. 불쌍하게 보여 뒤주를 열고 그 안에 있는 바가지로 쌀을 퍼주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얘기했더니 ‘문둥이가 왔었구나.’ 하면서 쌀은 우리 식구들 먹을 거도 부족하니 함부로 주면 안 된다고 했다. 한참 후 또 다른 아저씨가 와서 또 쌀을 달라고 했는데 나는 쌀 대신 사과를 하나 찾아 주었다. 생각해보니 그 시절엔 한센인이 참 많았던 모양이다. 

    

엄마와 길 건너에 있던 극장에 간 적 있다. 김진규, 남궁원 그런 배우들이 나오는 어른 영화였다. 우리 엄마가 김진규를 좋아했던 이유가 외할아버지와 닮았기 때문이란 건 나중에 알게 됐다.

 

그 동네에서도 오래 살지 않았다. 봄 소풍 전에 우리는 다시 숭인동으로 이사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오빠와 언니가 학교 다니기 힘들었거나 전세가 올라서 그랬던 건 아닐까?    


답십리에서 찍은 사진도 없다. 입학 때도 사진을 찍지 않았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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