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출근해서 컴퓨터를 켰는데 학부모의 쪽지가 와 있었다. 자리를 바꿔 달라는 민원이었다. 짝이 너무 힘들게 해서 아이가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한단다. 어떤 말로 답장해야 할까. 두 손을 키보드에 올려놓고 고민만 하다가 아이들이 하나둘 등교하여 답장 쓰기를 멈추었다.
오늘은 받아쓰기 8단계 시험을 보는 날이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도 받아 적어야 할 문장을 불러주면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도 고요가 찾아온다. 물론 “뭐라고요?” “다시 불러 주세요.”와 “다 했어요.” “다음 문제요.”가 동시에 쏟아지며 고요를 잡아먹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러자 서준이가 “조용히 해에! 조용히 해에!”를 반복적으로 외쳤다.
1분단 맨 끝에 앉아 커다란 덩치를 웅크리고 글씨를 눌러 적는 서준이를 바라보았다. 연필을 기이하게 잡아 매번 고쳐주는데도 그는 또다시 고집스럽게 자기 편할 대로 연필을 잡는다. 그 자세가 얼마나 불편하게 보이는지 뒤틀린 몸은 보는 사람마저 긴장되게 만들곤 한다.
서준이는 느린 학습자이다. 또래보다 신체적 능력, 지적 능력, 사회적 능력 모두 뒤처짐을 보인다. 특히 말을 더듬고,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해 문장으로 말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다 보니 의사소통이 잘 안된다. 감정조절에도 어려움이 있어서 쉽게 좌절하고, 쉽게 화를 내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무시한다는 생각이 쌓여 자존감도 낮은 상태이다. 학습 과정에서 계속 실패하는 경험이 쌓이고, 친구들은 자꾸 자신을 불편해하니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강화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서준이를 설명하는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서준이는 우리 반에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에 대해 가장 자세히 알고 있다. 아침에는 줄넘기하기를 좋아하고, 점심시간엔 술래잡기하며 노는 걸 좋아한다. 쉬는 시간엔 텃밭에 물 주는 것을 좋아하고 청소 시간에는 가장 열심히 청소하며 선생님 자리까지 싹싹 빗자루질하는 성실한 친구이다. 그리고 하교하기 전에는 꼭 힘껏 안아주어야 집에 간다.
서준이는 한글을 다 깨치지 못해서 받아쓰기 단계장을 보고 시험을 보곤 했다. 보고 쓴 시험도 한두 개 틀리다가 결국 100점을 맞은 날, 나중에는 단계장을 보지 않고 시험을 봐 보자고 했는데 6단계 시험을 보던 날에는 단계장 없이 시험을 보고 3개를 맞았다. 우리는 모두 서준이의 발전에 손뼉을 쳐주었고 그는 좀 으쓱하며 수줍은 미소를 보였다. 그런데 7단계 시험을 보던 날에는 모르겠다며 시험 보는 내내 너무 짜증을 부렸다. 다시 단계장을 보고 시험을 보겠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더 화를 내며 그러지 않겠다고 했다. 그날은 4개를 맞았다. 지난주보다도 잘했다고 칭찬했지만, 그는 책상에 엎드려 발을 쿵쿵대고 한참을 씩씩거렸다.
오늘 본 받아쓰기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서준이가 6개를 맞았다. 놀라운 결과였다. 진심으로 기쁘고 기특해서 치켜세우며 칭찬했는데 서준이가 갑자기 으앙 울음을 터뜨렸다. 교실에는 당혹스러움이 가득 찼다.
“서준아, 왜 우는 거야? 서준이보다 못 본 친구도 있어. 6개면 정말 잘 본 거야.”
그래도 울며 책상을 치는 행동을 멈추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서준이가 스스로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기로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이번 시간 공부할 주제는 ‘초능력이 생긴다면’ 입니다.”
교과서를 펴고 그림을 살펴보는데 서준이는 보란 듯이 더 크게 운다. 서준의 짝꿍은 눈썹을 한껏 찌푸리며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흘겨본다. 우리는 계속 수업을 이어갔다. 만화나 영화에서 본 인물 중 초능력을 쓰는 인물이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가지고 싶은 초능력은 무엇인지 이야기 나누었다.
하늘을 날고 싶다거나, 과거와 미래로 가고 싶다거나, 순간이동을 하고 싶다는 등의 이야기가 잔뜩 나왔다. 흥미로운 주제에 서준이도 울기를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아이들이 발표하는 걸 곰곰 듣고 있다가 연필을 쥐고 무언가를 끄적였다. 이내 손을 들고 발표하겠다고 한다. 그가 더듬거리며 갖고 싶은 초능력을 말한다.
“저는 시간을 멈추고 싶어요.”
“그렇구나. 시간을 멈추고서 무얼 하고 싶니?”
“숙제를 하고 싶어요.”
초능력이 생겼는데 숙제를 한다고?
더듬거리는 말로 서준이는 열심히 자기 이야기를 한다. 나머지는 온 집중력을 쏟아 그의 말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럴 때면 우리는 마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되는 것만 같다. 표현하고자 하는 사람도 힘들고, 듣고자 하는 사람도 힘들지만 서로 온 힘을 다해 이해하려고 집중하는 순간. 이따금 찾아오는 진짜 배움의 순간.
“…… 숙제하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엄마랑 계속 시험을 봤어요. 숙제를 했어요. 깜깜할 때까지 했어요. 졸린 데도 엄마가 자꾸 숙제를 하라고 했어요. 엄마랑 시험을 봤어요. 집에서 시험 봤을 때 다 맞았어요. 백 점이요.”
기이한 자세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눌러쓴 공책에 다른 이보다 몇 배 단단하게 뭉쳐진 노력이 배어 있음을 그제야 느낄 수 있었다. 깜깜하고 졸린 데도 포기할 수 없었던 숙제. 시간을 멈추고서라도 다 해내고 싶은 받아쓰기. 너무나 간절히 원했던 백 점.
쉬는 시간 종이 쳤다. 팔랑거리는 아이들이 뿔뿔이 교실 밖을 나가고 토끼 같은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종이를 접거나 그림을 그릴 때, 서커스단에 발목 묶인 코끼리 같이 서준이는 상처 입은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시무룩해 있었다.
“서준아, 선생님이 너한테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을 줄게.”
“네? 어떻게요?”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다 집에 가면, 시간을 멈추자. 연습을 다시 하고 시험을 새로 보는 거야. 해 볼래?”
“네!”
우리는 방과 후에 둘이 남아 다시 단계장을 읽었다. 집중해서 일그러진 아이의 눈썹과 잔뜩 긴장한 둥근 어깨를 보며 손오공과 손오반이 레벨업을 위해 수련하던 ‘정신과 시간의 방’을 떠올렸다. 그래, 우리 초사이어인이 되어보자.
드디어 재시험이 시작되었다. 문제를 받아 적는 손은 더욱 신중해져서 시간이 배로 들었다. 헷갈릴 때는 나를 올려다보며 자기가 쓴 것이 맞는지 확신을 얻으려 한다. 그의 뒤틀린 자세를 바로잡아주며 긴장하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스멀스멀 불안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자꾸 틀렸기 때문이다. 백 점은커녕 처음 본 시험보다도 더 많이 틀리고 있었다. 아……. 불안하다. 또 화를 내고 울어버리면 어쩌지. 그의 눈치를 보며 채점을 시작했다. 틀린 걸 맞았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열 문제 중 네 개를 맞았다. 눈을 질끈 감았다가 색연필을 내려놓았다. 실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울어버릴 아이에게 무슨 위로를 건네야 할지 재빠르게 할 말을 찾고 있는데
“어? 선생님! 저, 네 개 맞은 거예요?”
믿을 수 없을 만큼 아이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어, 어. 맞아. 네 개 맞았네.”
“와, 그러면, 그러면, 아까 여섯 개고 지금 네 개니까……. 더하면 열 개죠? 백 점이죠?”
“어?”
“육 더하기 사는 십!”
“어! 그래그래! 아하하하! 그러네! 맞아, 열 개. 백 점이야!”
“와!! 백 점이다, 백 점!”
아이는 이마에 땀을 한번 쓱 닦은 뒤 내 손을 잡고 방방 뛰었다. 얇은 받아쓰기 단계장이 펄럭거리다 훌훌 책상 아래로 떨어졌다. 그게 아주 소중한 보물 지도라도 되는 듯 얼른 주워 가방에 넣더니 덩실덩실 춤을 추고 콧노래를 부르며 가방을 싼다. 두툼한 가방을 메고 깊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한 뒤 나를 으스러지듯이 껴안아 주고 떠났다. 훌훌. 그 모습이 너무 예뻐 고개를 내밀고 복도 끝에서 그가 사라질 때까지, 코끼리가 나비처럼 훌훌 날아가는 모습을 오래 지켜보았다. 이미 아이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을 발견하며.
키보드에 두 손을 올려놓고 아침에 온 민원에 답하려 한다. 이럴 땐 정말이지 상대의 마음을 설득할 수 있는 초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버튼 하나로 얍! 하고 되지야 않겠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온 진심이 손끝을 통해 글로 타이핑되는 과정에서 당신을 설득할 수 있길. 나의 문장이 당신의 마음을 건드릴 수 있길. 우리는 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부모니까.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까. 그 진심이 이해로 통하는 초능력을 발휘하지 않겠냐며 답변을 보내는 엔터 키를 눌렀다. 딸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