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길은 이 길뿐인지라 집에 돌아가기 위해 매일 이 길을 지난다.
버거킹을 지나 버스 회사의 종점이 보일 때면 늘 신호대기에 걸린다. 멈춰 선 시간이 적막하여 고속도로를 빠져나왔을 맞은편의 자동차를 살펴보기도 하고, 50km의 속도를 준수하라는 표지판의 빨간 동그라미를 따라 눈알을 굴려보기도 한다. 초록 불이 켜지고 다시 출발하면 금세 탁 트인 하늘이 펼쳐진다. 방금까지 일하던 곳이 높은 아파트 단지로 둘러싸인 신도시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전원적인 풍경이다.
낮은 산자락, 넓은 논, 작은 가로수. 비닐하우스, 들꽃, 가는 전봇대.
평온한 풍경을 바라보면서도 알고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숨을 멈췄다. 그것을 위해.
작년 겨울, 새해를 며칠 앞둔 날이었다. 여느 퇴근길과 마찬가지로 버스 회사 종점 앞에서 잠시 멈추었다가 작은 가로수를 스쳐 지날 때, 무언가 도로 가장자리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빠르게 스쳐 지나가서 그것이 새인지, 고양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윽, 죽었나 봐.’
미간이 찌그러졌다. 얼른 눈길을 돌려 다시 하늘을 보았다. 핏빛 노을이 붉어서 불쾌했다.
다음날에도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새나 고양이라고 하기엔 너무 컸다. 아마도 개일 거로 생각했다.
그다음 날에도 그것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날은 개 같이 보이지 않았다. 족제비나 수달일 것 같았다.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퇴근길에 타온 텀블러의 홍차가 비려서 마실 수가 없었다.
그다음 날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 웅크린 그것은 더 크게 보였다. 매일 커지는 것 같았다. 어쩌면 노루나 사슴일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왜 계속 거기 있는 거야? 찝찝하고 무섭고 슬프기도 한 그림자가 목울대까지 가득 찼다.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며 라디오를 크게 틀었다. 그날은 긴 겨울 휴가의 첫날이었으니까.
가족과 여행을 다녀왔다. 생일잔치를 했고, 공연장에서 음악회를 관람했다. 밀린 잠을 자고 읽고 싶던 책도 읽었다. 그것은 잊혔다.
보름 정도의 평온한 나날이 지났다. 그날은 유난히도 맑은 날이었다. 아침의 푸른 상쾌함을 느끼며 출근하다가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맞은편 도로의 나무 아래, 여전히 그것이 거기에 있었다. 참혹함을 오롯이 드러내며, 잊히지 않기 위해 투쟁하는 몸짓으로.
소스라치게 흉측한 것은 그것의 비참한 모습이 아니다. 보름이 넘는 시일 동안 매일 이 길을 출퇴근하는 차가 수백대일 텐데. 그 많은 사람이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불쌍한 존재의 죽음을 그냥 지나쳤다는 사실. 나 또한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 소름 끼쳤다.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몸을 조여와 눈물을 쏟았다. 저 존재의 고통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인데도 견디기 힘들었다. 처음으로 영혼이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고 나서는 그냥 모든 것이 끝인 게 차라리 나았다. 자기 몸이 혐오의 시선으로 매일 새롭게 죽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을 그 영혼이 모르게 하고 싶었다.
어찌할 바를 찾아야 했다. 차에 치여 죽은 동물은 어찌해야 하나요? 검색창에 질문을 치면서 이 나이 먹도록 그것도 모른 채 살았던 무지가, 무관심이 수치스러웠다. 인터넷은 친절하게 ‘도로 이용 불편 척척 해결 서비스’라는 앱을 알려주었다. 국토교통부에 신고하면 민원을 접수한 공무원이 관계기관으로 연계한다. 그 후 업무 담당자가 사체를 수거해간다. 죄 없이 나약한 존재의 죽음이 가해자들에게 ‘도로 이용 불편’이라는 이름으로 치부되는 것 또한 역겨워 몸을 떨었다.
속에서 진득하게 일렁이는 검은 파도를 견디는 느낌으로 한낮을 보냈다. 퇴근길, 시동을 걸며 각오를 다졌다. 버거킹을 지나 버스 회사의 종점이 보일 때면 늘 신호대기에 걸린다. 멈춰 선 시간이 적막하여 고속도로를 빠져나왔을 맞은편의 자동차를 살펴본다. 당신들 같은 차가 쳤을 거야. 아니, 우리 같은 차가 친 것이지. 50km의 속도를 준수하라는 표지판의 빨간 동그라미를 따라 눈알을 굴렸다. 저 속도만 지켰더라도 길 잃은 동물이 두려움에 떨며 지나가는 것을 발견하고 기다릴 수 있었을 텐데.
낮은 산자락, 넓은 논, 작은 가로수. 비닐하우스, 들꽃, 가는 전봇대. 원래 이 땅에 살고 있었을 그들의 터전을 훼손하며 가로지른 왕복 4차로. 그리고 작고 메마른 나무 아래 웅크린 그것.
비상등을 켜고, 차마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찍이서 카메라를 확대하여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또렷이 그 존재를 마주 보았다. 그것이 고양이인지, 개인지, 족제비인지, 노루인지 알 수 없었다. 머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떨리는 손으로 그것의 사진을 올리고, 민원을 적으라는 칸에 눈물을 떨구며 죽음을 알렸다.
묘비명을 쓰는 심정으로.
며칠 뒤 그것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길을 지날 때면 겨울의 작은 가로수가 말라가듯 내 심장도 쪼그라들어가며 죄스러움을 견뎠다. 그날 이후로 도로의 쓰레기만 봐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끝끝내 다 말라 돌이 되면 이 감각이 괜찮으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겨울과 봄을 보냈다. 그리고 5월의 어느 날, 꽃이 피었다.
작고 연약해 어떤 나무인지도 알 수 없었던 그것이 눈부신 하얀 꽃을 피웠다. 이팝나무였다. 내게 소식을 전해주려고, 마른 심장을 흐무러지게 녹이기 위해, 우아한 춤을 추며, 무언의 위로를 건네기 위해 꽃잎 하나하나가 빛나는 눈물로 맺힌 것 같아 눈물이 흘렀다. 결국 나는 엉엉 울며 그제야 곡을 하였다.
고양이인지, 개인지, 노루인지 모를 그것을 이팝이라 이름 지었다.
여전히 평온한 풍경 뒤 알고 있는 나무 아래를 지날 때면 습관적으로 숨을 멈춘다. 이팝을 위해.
네 계절을 보내는 동안, 같은 길에서 5번의 죽음에 묘비명을 썼다. 가끔 다른 길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속도로로 진입하기 위한 길은 이 길뿐인지라, 집에 돌아가기 위해 매일 이 길을 지난다. 매일 저녁, 밥을 지으러 집으로 돌아가며 나무에, 풀에, 바람에 실려 보내는 이팝의 소식을 들으려 애쓴다.
부디 평온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