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들여다보는
랜선 글쓰기
세 번째 주제 - 어린이
<서성이는 아이>
* 등장인물의 이름은 가명입니다.
3월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 담임교사들이 학생들의 서류를 검토하다 이상한 것을 발견한다. A반 이준호와 B반 홍선아의 주소가 같은 것이다. 게다가 두 아이 모두 한부모가정인데 보호자가 동일 인물이었다. 즉, 아빠는 없고 엄마만 있는 가정에, 성씨가 다르고 나이가 같은 아이 둘이 함께 사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그렇다고 보호자에게 연락해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정사는 워낙 민감한 개인정보이니 말이다.
선아는 나무랄 데 없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준호는 수업 태도가 좋지 않고 친구들과도 잦은 다툼이 있었다. 3월 한 달을 지켜본 결과 담임교사는 준호가 ADHD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필요했기에 교사는 준호의 보호자에게 전화한다.
준호는 보호자를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고 불렀다. 선아의 엄마가 준호를 함께 기르고 있는 것이었다. 준호의 엄마와 선아 엄마가 친자매 사이는 아니었다. 그들은 ‘북한이탈주민’이라는 공통점으로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으나 준호는 신생아일 때부터 아버지가 없었다. 그리고 엄마와도 함께 살지 못했다. 준호 엄마는 아이를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지인에게 준호의 양육을 부탁하고 경제활동을 했다. 준호는 태어나서 세 살이 될 때까지 엄마와 따로 살며, 보호자가 8번이나 바뀌었다고 한다. 핏덩이가 이집 저집으로 오가며 눈칫밥을 먹는 걸 보다 못한 선아 엄마는 자신이 준호를 맡아 키우겠다고 먼저 말했다. 그래서 나이가 같은 선아와 준호가 세 살부터 지금까지 한집에서 사는 것이다. 선아 엄마도 이렇게 오래 준호를 맡게 될 줄은 몰랐다. 곧 나아지리라 생각했던 준호 엄마의 사정은 준호가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좋아지지 않았다. 준호 엄마는 미국에서 살고 있으며 가끔 영상통화로 안부를 전한다고 했다.
선아 엄마는 어려운 가정형편에서도 혼자서 두 아이를 길렀다. 준호가 친자식이 아니라 차별받는다고 생각할까 봐 똑같이 먹이고, 똑같은 곳에서 옷을 사 입혔다. 공부도 똑같이 가르쳤고, 둘이 싸우면 똑같이 혼냈다. 하지만 준호는 선아처럼 말 잘 듣고 순한 아이는 아니었다. 선아 엄마는 준호에게 계속 잔소리를 해야 했고, 준호와 선아는 자주 싸웠으며, 준호의 문제 행동으로 인해 준호와 선아가 함께 혼나는 일이 잦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준호와 선아가 어린이집에 가게 된 이후부터는 선생님께 준호의 문제 행동으로 자주 전화를 받았다. 동네 엄마들에게도 항의 전화를 여러 번 받아 죄송하다며 사과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담임교사는 준호를 도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저소득층 학생의 정서·행동을 지원하는 복지 제도가 있었다. 절차를 밟고 몇 개의 서류가 오간 뒤 준호는 학교의 지원을 받아 병원에서 ADHD 진단을 받고 치료를 시작하게 되었다.
치료를 시작한 후에는 확실히 문제 행동이 줄어들었다. 그런데 약의 부작용인지 밥을 먹기 싫어했다. 식판의 음식을 바라보기만 하는 준호와 마주 앉아서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는 담임의 실랑이가 자주 일어났고, 모두가 떠난 급식실에 단둘이 앉아 있는 일이 흔해졌다. 아이는 좀 축 처진 듯도 보였고 때로는 찡얼거리며 애정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 그는 좀 더 편안해졌고, 교실은 좀 더 평온해졌다. 일상이 흘러갔다. 여름방학이 지났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준호 엄마의 사망 소식이었다.
준호의 문제 행동은 다시 나타났다. 약을 먹기 전보다 훨씬 심해졌다. 그는 5교시 내내 삐딱하게 앉아서 의자를 까딱거리며 깐족댔다. 교과서 빈칸에는 날카로운 선으로 거칠게 낙서를 휘갈기거나 보란 듯이 엑스자를 한가득 그어 놓았다. 선생님이 준 학습지는 풀기는커녕 바닥에 끌고 다녔고 얼굴을 찌푸리는 다른 아이들에게 비아냥대는 말을 쏟아냈다. 그러니 하루 죈 종일 아이들이 준호를 일러댔다. 준호를 달래고 훈육하고 혼내고 화해시키느라 수업을 제대로 진행할 수가 없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고 물건을 던지거나 선아를 때리는 폭력적 행동이 늘었다. 전에는 선아 엄마가 혼을 내면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울던 아이가 이제는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서, 이모 나 버릴 거야?”
선생님, 준호 친부를 찾았어요. 중국인이더라고요. 준호 엄마랑은 이혼한 상태고, 중국에서 자기 가족이랑 살고 있대요. 준호 엄마가 사망했다고 했더니 준호를 데려가겠다네요. 그러니까 준호는……. 이제 중국으로 가게 되었어요.
선생님, 제가 요 며칠 사이에 준호가 다니는 모든 기관에서 전화를 받았어요. 선생님 말고도 학원 선생님들도 줄줄이 전화하시네요. 준호가 요즘 너무 말을 안 듣는대요. 겨우 초등학교 1학년짜리가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대들고 눈을 치켜뜬다고. 이제 전화벨만 울려도 지뢰를 밟은 것마냥 심장이 덜컹 내려앉고 숨이 쉬어지지 않아요.
선생님, 제가요. 너무 힘들어서요. 어제는 준호한테 막 소리를 질렀어요. 이모는 네가 말썽 피운 거 밖에 기억에 안 남을 것 같다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저도 모르게 그런 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제가 잘못 키워서 ADHD에 걸린 건 아닌지, 제가 칭찬 한번 못 해줘서 밖에 나가 친구들이랑 선생님에게 관심받으려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닌지, 막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게 그렇게 마음에 걸려요. 칭찬 한 번 제대로 못 해준 거.
그런데요, 선생님. 저 우울증이래요. 준호를 위해 막 울며 기도하다가도 그냥 모두 다 놓아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방구석에서 정신을 놓고 멍하니 있는데, 선아가 저한테 와서 뭐라는 줄 아세요? “엄마, 나라도 엄마 말 잘 들을게. 내가 알아서 잘할게.” 이러는 거예요. 선아는요, 준호한테 일방적으로 당해도 같이 혼나는 일이 많았어요. 선아가 얼마나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는지 아세요? 그런데 제가 선아를 제대로 칭찬해주지도 못했어요. 혹시 준호 마음 다칠까 봐요. 저는 선아에게도 참 못된 엄마예요.
선생님, 그런데요……. 정말 준호를 중국에 보내도 괜찮은 걸까요? 준호는 중국말을 하나도 못 하는데 말이죠. ADHD도 계속 치료받아야 하는데 중국에서 괜찮을까요? 말 통하는 애들이랑 한국어로 수업해도 매일 말썽을 피우는 애가 말도 안 통하는 애들이랑 학교를 어찌 다닐 수 있겠어요. 저는 요즘엔 잠도 안 와요. 불 끄고 누워도 올빼미처럼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오만가지를 생각하죠. 준호가 지금 정상일 수가 없잖아요. 아무 일 없을 때도 불안했던 아이인데 엄마는 죽었다고 하고, 아빠는 중국인이라고 하고.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죄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랑, 자기를 좋아할지 안 좋아할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는 기분이 어떻겠어요. 우리나라 안에서도 모르는 동네, 모르는 도시 가면 불안하고 긴장하잖아요. 그런데 이제 일곱 살 먹은 어린 애가……. 땅에 발을 딛는 기분이 아닐 거예요. 산꼭대기에 매달려있는 흔들다리에 혼자 있는 것 같지 않겠어요?
선생님. 준호가 분유 먹던 시절엔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살았어요. 간신히 말 배우고 애교 부리기 시작할 때부터 제가 키운 거거든요. 그러니까 준호는 준호 엄마 자식이기보다 제 자식이에요. 그래서……. 제가 준호를 입양해야 하나 어쩌나… 그런 생각도 해요. 이렇게 준호를 보내면 제가 미쳐버릴 것 같거든요. 가슴에 돌덩이로 앉아서 제 숨을 막을 것 같아요. 준호가 가고 제게 평화가 찾아온들 그게 평화겠어요? 그러다가도 저는 너무 무서워요. 제가 감당할 수 있을지, 저 같은 사람이 제대로 애 둘을 키울 수 있을지……. 선생님, 저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준호는 중국의 친아버지에게 가기 위해 절차를 밟고 있다. 그런데 중국으로 가는 것도 쉽지 않다고 한다. 준호의 엄마가 북한이탈주민이기 때문이다. 친부가 아이를 데려가겠다고 하는데도 정부는(한국 정부인지 중국 정부인지 북한 정부인지는 모르겠으나) 정치적인 문제로 이것저것을 따지느라 몇 달째 확답을 주지 않고 있다.
점심시간에 학교 중정의 감나무 아래서 서성거리고 있는 준호를 보았다.
그는 주황빛으로 곱게 물든 감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감나무 가지 사이로 빠져나가는 고요한 가을바람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가지 사이로 보이는 새파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나는 멀찍이서 그를 바라보며 그저 어디로 가든지 어디에 있든지 저리 평화로운 하늘이 내려다봐 주길, 조용한 바람이 그의 얼굴을 어루만져주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