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사라진 이름들

우리는 언제부터 이름을 잃어버렸을까?

by 배네

『그녀들의 이름은』


우리는 언제부터 이름을 잃어버렸을까?

아이를 낳고, 결혼을 하고, 나이를 먹어가면서 '누군가의 엄마',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간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아무도 나를 내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다는 것을.

카페에서는 "아이 엄마", 학교에서는 "○○ 어머니", 동네에서는 "둘째 엄마". 심지어 남편도 아이들 앞에서 나를 "엄마"라고 부른다.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은주'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된 건?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이런 일이 나만 겪는 건일까? 아니면 모든 여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걸까?


오늘도 동네 카페에서 세 친구와 만났다. 매월 둘째 주 일요일, 우리만의 약속이다. 지영이는 아이를 전남편에게 맡기고, 수현이는 주말 데이트를 미루고, 민아는 남편에게 쌍둥이들을 맡기고. 그리고 나는 두 시간 동안만 '엄마'가 아닌 '은주'가 된다.

"요즘 어때?" 수현이가 아메리카노를 한 모금 마시며 물었다.

"그냥... 똑같지 뭐." 지영이가 대답했다. "이혼하고 나서 오히려 더 바빠진 것 같아."

"나는 회사 복직 준비하느라 정신없어." 민아가 시계를 보며 말했다. "오늘도 사실 2시간만 있다가 가야 해."

나는 그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40대다.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모두 같은 질문을 안고 있다. '나는 누구인가?'


지영이는 이혼 후 새로운 시작을 꿈꾸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망설이고 있다. 수현이는 미혼을 유지하며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때로는 외로움을 느낀다. 민아는 완벽한 엄마, 완벽한 아내가 되려고 애쓰지만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경력단절 이후 '은주'라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 가는 것을 느끼고 있다.


"있잖아, "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희는 언제부터 사람들이 너희 이름으로 안 부르는 것 같아?"

세 친구가 동시에 나를 바라봤다. 그들의 눈에서 같은 질문을 읽을 수 있었다.

"맞아, " 지영이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요즘 그런 생각했어. 이혼하고 나서야 사람들이 다시 내 이름으로 부르더라."

"나는 회사에서만 '수현 씨'야." 수현이가 씁쓸하게 웃었다. "나머지 시간에는 그냥 '언니' 아니면 '이모'지."

"나는..." 민아가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나는 내 이름을 언제 마지막으로 불렀는지도 기억이 안 나."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알았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단순히 이름이 아니라는 걸. 그건 우리 자신이었다.


과연 40대가 되어서도 다시 자신의 이름을 찾을 수 있을까? 엄마, 아내, 며느리 이외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이게 모든 여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일까?

나는 오늘부터 우리의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름을 잃어버린 네 여자의 이야기. 그리고 다시 그 이름을 찾아가는 여정의 이야기를.

혹시 당신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이 이야기가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란다. 우리는 여전히 빛나고 있으니까. 각자의 이름으로.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난 AI 이미지 판매를 안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