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자, 나는 이미 떨어지고 있었다. 허공에 떠 있는 것도 아니고, 매달린 것도 아니었다. 분명히 아래로, 끝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귀를 찢는 바람은 살을 에고, 얼굴은 사정없이 후려쳤다. 몸은 공중에서 뒤틀리며 회전했고, 숨은 목구멍에 걸려 쏟아질 듯했다. 마치 지옥의 문턱에 서 있는 자가 느낄 공포가 한순간에 몰려왔다.
바닥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땅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의심할 수 없었다. 언제 닿을지 모르는 종착지, 언제든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긴장. 공포는 내 심장을 쥐어뜯었고, 온몸의 세포를 차갑게 얼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는 듯했지만, 내 안에서는 오히려 모든 것이 느려졌다. 심장은 한 박자 늦게 뛰었고, 눈앞을 스치는 바람조차 정지한 듯 보였다. 엄청난 스트레스가 몰려올 때, 순간 세상이 멈춘 듯 느껴지는 그 체험. 나는 지금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무의식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너는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끝없이, 영원히.”
공포는 둔해졌지만, 그 자리를 고독과 적막이 메웠다. 나는 나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살아온 삶은 무엇이었는가. 목표를 향해 달려왔다고 믿었지만, 어쩌면 이 추락처럼, 끝도 방향도 없는 낙하만을 반복했을 뿐일지도 모른다.
추락하는 동안 스쳐 지나가는 그림자들이 있었다. 사람의 형체 같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의 파편 같기도 했다. 손을 뻗어도 닿지 않는 그 잔상들. 그것들은 나의 실패, 후회, 놓쳐버린 기회들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모든 것과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어쩌면 이 끝에는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무것도 없는 무(無). 바닥을 향한 두려움은 점차 사라지고, 대신 한 가지 질문만이 남았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정신이 아득해진 순간, 번쩍 눈을 떴다.
눈앞에 놓인 것은 끝없는 어둠도, 지옥의 문도 아니었다. 귀를 찢던 바람 대신 들려온 것은 상사의 고함. 발밑에 없는 바닥 대신 책상 위에 쌓여 있는 보고서 더미. 공허한 적막 대신 전화벨 소리와 키보드 두드림.
야근의 그림자, 실적에 대한 압박, 끝이 보이지 않는 업무의 연속.
나는 깨달았다. 무한한 추락은 꿈이 아니라, 나를 짓누르는 현실 그 자체였다.
나는 여전히 떨어지고 있다.
단지 이곳은 ‘사무실’이라는 이름의 끝없는 낙하일 뿐이었다.